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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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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은 소중하다

등록 2008-05-30 00:00 수정 2020-05-03 04:25

LG텔레콤·롯데마트·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1·2위 독과점 막고 경쟁 촉진해 소비자에게 혜택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어떤 상품의 시장구조가 경쟁적이냐 독과점적이냐를 따지는 대표적인 지표가 집중도(CR·산업집중도 또는 품목집중도)이다.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의 집중도는 CR1, 상위 1∼3위 기업의 매출액을 합친 시장점유율은 CR3, 상위 1∼5위 기업의 매출액을 합친 집중도는 CR5라고 부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시장구조 파악에 사용하는 지표는 ‘CR3’이다. 또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상위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일 때 △3개 이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일 때 이 기업(들)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단, 시장점유율 10% 미만인 기업은 제외)로 추정한다. 즉, 대체로 상위 3개 업체의 시장점유율 집계를 통해 유효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시장인지, 독과점적 시장인지를 판별하는 것이다. 물론 경쟁이 활발한 시장구조일수록 소비자들의 편익이 증가한다는 게 경제학원론의 가르침이다.

3위 업체라서 더 파격적인 서비스

산업이나 품목별로 보면, 미국 자동차산업에서 GM·포드·크라이슬러가 ‘빅3’를 형성하는 등 상위 업체 3개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내 여러 상품시장을 잘 들여다보면, 1위 업체가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거나, 1·2위 두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3위 기업은 1·2위에서 한참 뒤떨어진 채로 추격하는 양상을 많이 볼 수 있다. ‘1강 혹은 2강 체제’ 그리고 ‘3위 업체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과 정유 시장, 할인점 시장이 대표적이다.

이동통신 시장을 보자. 2008년 3월 말 현재 SK텔레콤 가입자는 2237만 명(가입자 기준 시장점유율 50.5%), KTF는 1394만 명(31.5%), LG텔레콤은 795만 명(18%)이다. 상위 2개 사업자의 과점체제 속에 LG텔레콤이 만년 3위를 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동통신 시장은 산업의 특성상 과점시장이 형성되기 쉽고, 이런 시장환경에서 경쟁을 유발하기 위해 정부가 비대칭규제(선발 사업자의 활동을 일부 제한함으로써 후발 사업자들의 시장 진입과 성장을 지원하는 차등 규제) 정책을 펴면서 후발 사업자의 영업기반이 강화되기도 했다.

LG텔레콤의 경우 4월 말 가입자가 800만 명을 돌파했다. LG텔레콤 쪽은 “지난 4월 초 무선인터넷 서비스 ‘오즈’를 출시한 뒤 신규 가입자가 크게 늘고 있다”며 “오즈라는 새로운 승부수를 띄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업계 3위라는 점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무슨 말일까? LG텔레콤 이충환 과장은 “후발 사업자가 경쟁에서 이기려면 선발 사업자가 제공하지 못하는 혁신적 서비스와 저렴한 가격을 제공해야 한다”며 “3위 업체이기 때문에 더 과감하고 파격적인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업계 1·2위 기업들은 덩치가 워낙 크기 때문에 가입자들에게 약간만 가격을 내려주더라도 매출에서 큰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가격인하를 쉽게 단행하기 어렵다. 반면 LG텔레콤은 경쟁기업에 비해 싼 가격에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하면 항공 마일리지·주유할인·가입자 간 20시간 무료통화 요금제 등 파격적인 서비스를 한발 먼저 내놓았다.

3위 업체가 고객 요구를 반영해 어떤 서비스를 출시하면 1·2위 업체가 뒤늦게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모바일 뱅킹 서비스와 가족할인요금제는 LG텔레콤이 출시한 뒤에 1·2위 업체가 뒤따라온 사례에 속한다. 오즈 서비스가 출시되자 SK텔레콤은 그동안의 영상통화 마케팅에서 무선인터넷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정하기도 했다. 이 과장은 “시장에서 3위는 1·2위 업체를 늘 채찍질하는 존재라서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3위 덕에 1·2위 업체 소비자까지 혜택을 보게 된다”며 “1·2위 업체에 견줘 3위 업체일수록 고객 만족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더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3위 업체가 견고한 지위를 유지하면서 1·2위에 도전하는 시장구조일수록 유효 경쟁이 활성화되고 소비자들의 혜택도 늘어나게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현재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은 3개 기업이 분할 지배하고 있는 독과점적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동통신 시장은 전국 규모의 통신망과 유통망 구축이 필수적이고 많은 자본이 소요되는 산업이라서 신규 사업자의 진입장벽이 높다. 따라서 3개 사업자가 서로 눈치보면서 가격 담합과 독과점적 지대(렌트)를 챙기려 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고, 독과점 시장은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킨다. 특히 시장에서 경쟁기업이 2개로 줄어들 경우 담합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결국, 독과점적 시장일수록 3위 업체가 1·2위 기업을 위협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구조가 확립되면 소비자의 혜택도 커지게 된다. 정부가 이동통신 시장에서 비대칭적 규제 정책을 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마트가 다른 할인점보다 쌀까

정유시장의 경우 SK,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4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다. 2008년 1분기 현재 시장점유율로 본 분할구도는 SK 36.2%, GS칼텍스 29.9%, 에쓰오일 13.5%, 현대오일뱅크 13.3%로, 선발 두 기업이 ‘양강체제’을 구축한 가운데 후발 두 업체가 3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1·2위 업체는 주유소에 판매하는 정유 가격에 대한 의사결정이 꽤 느린 편이다. 주유소가 몇천 개나 되고 그 많은 주유소에서 한꺼번에 가격을 바꾸는 작업이 진행돼야 하는데다 가격을 조금이라도 내리면 매출에 큰 타격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기름값이 많이 오르고 있지만, 가격을 내릴 때는 우리가 1·2위 업체에 비해 더 빨리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정유산업의 경우 진입규제는 없으나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규진입 기업이 없고, 기존 경쟁사들끼리의 가격경쟁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때로 서로 눈치보며 가격 담합을 하다가 적발돼 과징금을 부과당하기도 한다.

할인점 시장은 어떨까? 삼성테스코 홈플러스가 최근 이랜드의 홈에버를 인수해 몸집을 키움에 따라 시장 판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외형 면에서 이제 할인점 시장은 1위 이마트(2007년 매출액 10조5천억원), 2위 홈플러스(홈에버 매출액을 합쳐 2007년 7조6천억원), 3위 롯데마트(2007년 4조2천억원, 시장점유율 15.2%)로 재편됐다. 국내 점포 수에서 보면 이마트가 112개, 홈플러스 102개(홈에버 35개 포함), 롯데마트 56개다. 이동통신 시장과 마찬가지로 1·2위가 양강체제를 구축한 가운데 3위 업체가 그 뒤를 따라가고 있는 양상이다.

할인점 시장은 많은 점포를 거느릴수록 규모의 경제가 실현돼 가경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사실 1위 이마트라고 해서 상품가격을 대체로 더 싸게 파는 건 아니다. 예컨대 농심이 5봉지 포장 라면 가격을 2600원에서 3천원으로 인상했을 때 이 가격은 이마트를 포함한 모든 할인점에 똑같이 적용됐다. 이마트가 가장 많은 매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농심라면을 팔아주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른바 이런 ‘바잉파워’(구매량 우위)를 앞세워 이마트가 더 낮은 가격에 농심라면을 구입해서 고객들한테 더 싸게 파는 건 아니다. 물론 공산품이 아닌 신선식품은 바잉 파워에 따라 고객한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할인점 매장은 농심 같은 제조업체로부터 물건을 직접 구매해 판매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대형 제조사가 가격인상 요청공문을 보내면 어느 할인점이든지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브랜드 밸류를 가진 1·2위 업체의 경우 매장이 많아서 소비자들이 더 많이 찾을 뿐, 브랜드 가치가 곧 소비자들한테 어떤 혜택을 보장하는 건 아닌 셈이다.

“인위적 보호 정책은 위험”

이동통신이든 정유산업이든 할인점이든 매출액 상위 업체들은 거의 ‘대자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본부 관계자는 “시장에서 3위 업체를 인위적으로 보호하거나 육성하는 정책을 펴는 건 위험하다. 1∼3위 모두 시장을 서로 분할해 경쟁을 별로 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며 “그러나 3위 기업이 시장에 경쟁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하는 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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