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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상반기 인문교양서] 네트워크가 제국을 침몰시키리라

등록 2008-05-30 00:00 수정 2020-05-03 04:25

민중·대중과 달리 서로의 차이를 지우지 않는 새로운 주체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지음, 조정환·정남영 등 옮김, 세종서적 펴냄, 2만5천원

지난 수년 사이 전세계 혁명적 좌파 진영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출간이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자율주의(아우토노미아) 운동 이론가였던 네그리가 미국인 제자 하트를 만나 이뤄낸 협업적 성과가 이었다. 21세기 벽두에 출현한 이 저작은 오늘날의 세계 질서에 대한 하나의 인식 지도를 제시했다. 지도의 윤곽이 선명했던 만큼, 논쟁의 지점도 뚜렷했다. 윤곽의 선명함은 과격한 일반화와 성급한 개념화의 혐의를 안고 있었다. 지지·반대·절충의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출간 4년 뒤 네그리와 하트는 속편이라 할 을 다시 내놓았다. 과 짝을 이루는 이 저작이 우리말로 옮겨져 나왔다.

다중의 존재론적 성격을 명료하게 규정하려면, 다중을 민중·대중·군중·계급 같은 유사 개념들과 비교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네그리와 하트가 다중 개념과 가장 직접적으로 대립시키는 것이 민중(People) 개념이다. 민중은 획일적 통일성·동일성의 집합이다. 민중은 민중을 구성하는 수많은 개별적 존재들의 차이·다름·특성을 평준화한다. “민중은 통일의 관점에서 파악된 것이다. 민중은 저 다양성을 통일성으로 환원하며 인구를 하나의 동일성으로 만든다. 민중은 하나이다.” 반면에 다중은 ‘다수’다. “다중은 하나의 통일성이나 단일한 동일성으로 결코 환원될 수 없는 수많은 내적 차이로 구성돼 있다.” 다중은 집합이되, 차이가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는 집합이다.

지은이들이 보기에 다중은 대중(Mass)과도 다르다. ‘대중’은 통일성이나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다중과 같지만, 차이를 유지하지도 생산하지도 못한다는 점에서 다중과 구별된다. “대중의 본질은 무차별성이다. 모든 차이들은 대중 속에 가라앉아 익사한다. 인구의 모든 색깔들은 회색으로 바랜다.” 대중은 스스로 사유하지 못한다. 그들은 동형의 집합체를 형성해 하나로 움직이며,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폭중’으로 변할 수 있다.

다중의 특성을 보여주는 모델, 인터넷

다중의 특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모델이 인터넷이라고 지은이들은 말한다. 인터넷이라는 ‘분산된 네트워크’는 각각의 사용자가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으면서 서로 드넓게 접속할 수 있으며, 또 언제든 새로운 접속이 추가될 수 있다. 다중이 집합적 지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더욱 중요한 특징이다. 네그리와 하트는 다중의 지성적 성격을 설명하는 방편으로 개미나 벌과 같은 무리에게서 발견되는 ‘떼지성’(무리지성·swarm intelligence)을 끌어들인다. “개체로서의 흰개미들 중 어느 것도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흰개미들의 떼는 어떤 중앙 통제도 없이 지능체계를 형성한다.” 마찬가지로 네트워크 체제로서 다중은 소통과 협력을 통해 집합적 지성을 창출한다. 그 집합적 지성은 노동하고 생산하는 지성이며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안하는 지성이다.

지은이들은 이 책의 앞부분에서 제국 질서가 ‘항구적 전쟁상태’에 놓여 있음을 밝힌다. 과거 로마 제국이 그러했듯이 제국은 끊임없는 지구적 차원의 내전 속에서 그 내전을 통해 질서를 유지해간다. 전쟁 상태는 민주주의의 유예와 축소를 불러온다. 지은이들은 다중이야말로 바로 이 전쟁 상태를 끝장내고 민주주의를 실현할 주체라고 말한다. “다중은 민주주의, 다시 말해 만인에 의한, 만인의 지배라는 법칙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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