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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유전 원칙 폐지되나

등록 2008-03-21 00:00 수정 2020-05-03 04:25

기획재정부의 한계농지 소유·거래 제한 완화 논란…투기 우려와 농지보존 필요성 제기돼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1987년 개정 헌법 제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행 농지법은 농지 소유자격을 농업인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농지취득자격증명제도를 둬서 농지 매수인의 농지 소유 자격과 소유 상한을 정하고 있다. 농업 경영의 목적대로 이용하지 않으면 처분 명령이 내려진다.

전체 농지의 21%

그러나 현실적으로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전체 농지의 50% 이상을 부재 지주가 소유하고 있고, 비농업인이 소유하는 휴경지에 대해 강제 처분 명령을 내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노무현 정부도 2005년 7월 농지법 개정을 통해 주식회사 형태인 농업회사 법인의 농지 소유와 도시인들의 주말농장용 농지 소유 등을 허용함으로써 경자유전 원칙을 크게 허문 바 있다. “직접 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기본 이념이 흔들려온 것이다.

지난 3월10일 기획재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경자유전 원칙을 또 한 번 크게 허무는 조처를 발표했다. 재정부는 △한계농지는 아예 경자유전 원칙의 예외로 인정해 각종 소유와 거래 제한을 완화하고 신고만 하면 다른 용도로 전환도 할 수 있도록 하고 △농지은행에 맡긴다는 조건을 붙이되, 현행 3ha인 비농업인의 상속농지 소유 한도를 전면 폐지하고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를 택지나 공장부지로 활용할 경우 같은 면적의 농지를 마련해야 하는 규정(대체농지 지정 의무제)을 폐지하기로 했다. 농지를 직접 경작하지 않더라도 도시인이 농지를 쉽게 소유할 수 있도록 길을 확 터준 셈이다. 이번 농지 규제 완화 조처는 사실상 무력화돼온 경자유전의 원칙을 아예 깨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계농지의 경우, 해방 이후 우리나라 농업 체계의 근간인 경자유전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절대농지(농업진흥지역 내 농지)나 한계농지라는 말은 농지를 규정하는 법적인 용어가 아니다. 한계농지는 △경사도 15% 이상 △도로 개설이 안 돼 기계화 영농이 어려운 농지 등 영농 조건이 불리해 생산성이 낮은 농지를 뜻한다. 지금까지 한계농지는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농수산식품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지정·고시해왔다. 2001년 말 기준으로 ‘한계농지 유형’의 농지는 20만5천ha로, 전체 준농림지의 29%에 달했다. 그런데 산간 오지 등까지 포함할 경우 한계농지는 전체 농지(210만ha)의 21% 정도인 43만2천ha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계농지 규정 애매모호

정부는 “남아 있는 수도권 한계농지는 대부분 접근성이 떨어져 개발 가치가 낮기 때문에 한계농지 규제를 더 완화해도 투기 바람이 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작하기 힘든 농지라 해도 어디까지를 유휴지 혹은 한계농지로 볼 것인지 명확히 선을 긋기 어렵다. 따라서 한계농지 부류에 속하는지 여부가 모호한 땅들에 대해서는 투기 바람이 불 공산이 크다. 즉, 소유 규제가 대폭 완화되고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것도 쉬워졌기 때문에 도회지 투기꾼들이 일단 이런 땅들을 대거 사놓고, 그 뒤 점차 주택을 짓고 주변 산을 깎아 환경을 조성(?)하면 쓸모 있는 땅으로 바뀌어 땅값이 크게 뛸 가능성이 높다. 토지정의시민연대 쪽은 “농지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개발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장치 없이 농지 규제를 풀면 땅값이 폭등하고 농지 투기를 부추기게 될 것”이라며 “전세계적으로 폭등하는 곡물 값을 감안하면 오히려 농지를 보존·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홍상 연구위원은 “농지도 거래를 전면 자유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경자유전 원칙을 유연화할 필요는 있지만, 식량 안보 등을 고려할 때 이 원칙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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