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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연금 받게, 이름 돌려다오

등록 2007-11-23 00:00 수정 2020-05-03 04:25

노인 이름 빌려 ‘바지 사장’‘가짜 직원’ 만드는 관행 바로잡는 계기 되나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기초노령연금이) 지금까지 광범위하게 행해졌던 노인 명의를 이용하는 차명 관행들이 바로잡히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내년 1월부터 노인들한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 접수 현황을 발표하면서 보건복지부가 덧붙인 말이다. ‘차명 관행’을 바꾸고 있다? 무슨 말일까. 그동안 자녀·친인척들의 사업 또는 재테크에 이름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동원됐던 노인들이 정작 노령연금을 신청하면서 큰 곤란을 겪고 있다. 조회 결과 뜻밖의(?) 소득 또는 재산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영문 모르는 근로소득 조회되기도

65살 이상 노인의 명의를 빌리는 차명 관행은 △노인 명의를 빌린 사업자등록 △월급을 타가는 ‘가짜 직원’으로 등재 △절세형 비과세저축상품 가입 등이 대표적이다. 노인을 친인척 등이 운영하는 사업장의 명목상 사장(‘바지 사장’)으로 올려놓는 관행은 고전적인 세무조사 회피 수법이다. 이런 차명 사업자등록을 이용하는 쪽은 주로 룸살롱 등 개인사업자들인데, 2∼3년마다 한 번씩 사업자 명의를 바꾸는 식으로 세무조사를 피해왔다. 세무당국은 해마다 5월 종합소득신고를 기초로 기획세무조사 대상 법인을 선정한다. 무자료 거래 등을 통해 탈세 의혹이 몇 년간 누적된 법인은 세무조사 0순위가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업자등록증의 명의를 중간에 바꿔버리면 완전히 새로운, 깨끗한 법인으로 다시 출발하는 형태가 되어 세무조사를 비켜갈 수 있게 된다. 이때 미취업자인 노인들의 명의를 빌려다 쓰는 것이다. 김경률 공인회계사는 “기존 사업자 명의를 없애고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하면 폐업하고 새로 사업을 하는 것처럼 된다”며 “따라서 그동안 누적된 탈세 의혹 데이터들은 뒤로 빠지거나 덮이게 된다”고 말했다.

노인을 회사의 ‘가짜 직원’으로 올려놓는 수법은 이익 규모를 줄여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다. 노인들이 타가는 월급(인건비)이 손금(비용)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7년 전국의 417만 노인가구(65살 이상) 중 각종 연금을 빼고 근로소득·사업소득·임대소득·이자소득 등 순수한 소득이 있는 사람은 6.8%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기초노령연금 접수 과정에서 살펴보니, 국세청에 보고된 통계상 노인 근로활동 인구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소득 있는 취업자로 나타났다”며 “70살 이상 노인 중 소득이 있는 사람이 30%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절반은 농·어민으로 볼 수 있고, 나머지 절반은 임시·일용직이거나 가짜 취업자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령연금 접수 때 동사무소에서 재산내역을 조회해보니 근로소득이 있는 것으로 나온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한다. 본인조차 “영문을 모르겠다”고 의아해하는 사례도 많았다.

과거에 기업의 비자금 조성 방법 중 가장 흔한 것이 인건비 과다계상이었다. 전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등이 애용한 방식이다. 사실 인건비를 통한 비자금 조성은 세금도 줄이고 비자금도 만드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국민연금 등 4대보험이 보편화되면서 인건비 과다계상을 활용한 비자금 조성은 어렵게 됐다. 가짜 직원을 만들거나 인건비를 부풀릴 경우 회사가 부담해야 할 국민연금만 해도 상당액에 이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65살 이상 노인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등을 안 내도 되기 때문이다.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 노인들만 고용하는 배경에도 이런 이유가 있다고 한다. 물론 65살 이상이라도 건강보험료는 내야 한다.

금융실명제 위반에 해당

자녀가 노인 명의의 ‘비과세저축’을 들어 세금 혜택을 받는 사례도 흔하다. 65살 이상은 3천만원까지 이른바 ‘생계형비과세저축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데, 실제 돈 주인인 자녀가 65살 이상 부모의 이름을 빌려 이 절세 상품에 가입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노령연금 신청자 중에서 비과세저축 가입을 어찌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며 “남들 다 받는 기초노령연금을 비과세저축 재산 때문에 부모님이 못 받게 되자 이번에 실명으로 전환하는 자녀들도 많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편법은 금융실명제 위반에 해당한다. 복지부 쪽은 “65살 이상 비과세저축상품을 실명인지 차명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따라서 아무리 ‘자식이 실제 주인이다’라고 주장해도 노인 본인의 재산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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