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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회공헌 현장 ④ KTF 역사지킴이] 청소년이 다시 쓰는 역사

등록 2007-09-21 00:00 수정 2020-05-03 04:25

역사 수호 활동 모임에 지원… ‘미라클걸즈’는 라이따이한을 만나고 ‘택견패송암’은 우토로에서 공연하고

기업 사회공헌 현장 ④ KTF 역사지킴이

▣ 글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아버지가 베트남에 저를 만나러 왔었어요. 근데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거짓 악담을 하는 걸 믿고 나와 인연을 끊었어요. 아버지는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는데….”

스크린에서 한국계 베트남인 2세 김남호씨가 ‘아버지를 찾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다른 한국계 베트남인 2세 김상일씨는 한국말로 더듬더듬 교육 문제를 지적했다. “지금 베트남 한인 2세 중에서 고등학교에 간 사람은 5~10%, 대학교 진학률은 1~2%밖에 안 돼요. 교육을 받아서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해요.”

베트남에서 본 부끄러운 기록

9월12일 오후 5시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3층. 기억에서 지워진 한국계 베트남인 2·3세 문제를 바로 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사용자제작콘텐츠(UCC) ‘라이따이한, 기억과 기록’ 상영회가 열렸다. 상영회 소식을 듣고 온 40여 명의 학생들이 진지하게 영상물을 보고 있었다. ‘라이따이한’은 베트남전쟁 당시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 노동자 혹은 군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베트남인 2세를 일컫는 말이다. 라이따이한이라는 용어 자체가 혼혈아를 비하하는 베트남어 ‘라이’와 한국을 뜻하는 베트남어 ‘따이한’이 결합된 말로 베트남 사회가 이들에 대해 갖고 있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여준다.

이번 상영회는 연세대 사학과 친목 여학생 모임 ‘미라클걸즈’에 의해 기획됐다. 밥도 먹고 같이 공부도 하는 이들은 KTF에서 ‘청소년 역사지킴이’를 모집한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보고 ‘한국계 베트남인 2세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민간사절단으로서 그들과 화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모임의 송은주(22)씨는 “베트남전쟁이 남긴 라이따이한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해의 역사입니다. 위안부 문제나 독도 문제를 말하면서 피해자의 입장만 강조하기 전에, 우리도 ‘책임을 져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손수 제작물를 만들고 관련 활동을 한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지난 8월5~10일 베트남을 방문해 한국계 베트남인 2세들을 직접 만났다. 커피숍 ‘한인 2세 카페’를 운영하는 김상일씨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카페 운영 수익으로 한인 2·3세 교육비를 지원한다. 카페 2층에는 갈 곳 없는 한인 2세 가족들을 위한 거처도 마련해놓고 있다.

“카페에는 한인 2세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걸어놓았어요. 한 여성 한인 2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지옥으로 표현했어요. 세 개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는데, 하나는 미국인이 아이들을 데려가는 거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인이 아이들을 데려가는 그림이에요. 나머지 하나에는 한국인들이 남겨둔 자식들이 헐벗은 채 바닥에 버려져 있어요.” 송씨는 이런 그림들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부끄럽기도 했다. 베트남에 가기 전에는 라이따이한의 현황 등을 책자로 만들어 거리에서 나눠주고, 패널 전시회를 열어 라이따이한의 실상을 알리는 거리홍보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미라클걸즈의 이런 활동은 KTF의 ‘싱크코리아(Think Korea) 청소년 역사지킴이 활동’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이뤄진다. 만 15살부터 24살까지를 대상으로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어낸 역사 수호 활동에 팀당 최대 500만원을 지원한다. KTF 사회공헌팀 오선민씨는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는 역사 발굴 활동의 저변을 넓히고자 한다”고 청소년 역사지킴이 활동의 의미를 말했다. 현재 미라클걸즈를 비롯해 재일동포들에게 태껸을 전수하는 ‘택견패송암’,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전국 고등학교를 순회하며 증언회를 여는 ‘시나브로’, 연해주의 과 함께 강제이주 고려인 1·2세를 찾아 고려인 이주사를 채록하는 ‘미르’ 등 17개 팀 125명의 역사지킴이들이 활동하고 있다.

17개 팀 125명의 역사지킴이들

택견패송암은 대학생 4명과 고등학생 1명이 모인 대한송암체육연구회 산하 태껸 청소년 모임으로, 최근 일본에서 태껸 공연을 가졌다. 박철모(25)씨는 “태껸은 고구려 시대부터 내려온 우리 전통 무술인데 점점 잊혀져가고 있어요. 태껸을 통해 재일동포들과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활동을 기획한 이유를 밝혔다. 9월12일 이들은 오사카에서 30분씩 두 차례 태껸 공연을 했다. “이크, 에크!” 태껸을 하며 나는 소리, 다양한 태껸 자세에 일본 주민, 재일동포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박씨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무술’이라며 보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데 신이 절로 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공연은 고베에 있는 다섯 곳의 조선인학교, 교토의 우토로 마을로 이어진다. 박씨는 “온갖 설움을 겪고 있는 우토로 동포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며 곧 있을 우토로 방문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조선인학교에서는 우리가 더 많이 배웠습니다. 저희는 비속어, 은어들을 경쟁적으로 쓰는데 ‘아름답다’ ‘곱다’ 등 예쁜 우리말만 쓰고 지키려는 이들의 모습에 감동받았어요”라고 말했다.

역사책에는 잊혀졌거나 지워진 페이지들이 수두룩하다. 역사지킴이 활동은 청소년들이 직접 역사를 기록하는 펜대를 잡고 지워지거나 찢겨진 역사책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펜대’를 잡을수록 역사는 제자리를 찾지 않을까.



소년들이여, 스피커가 되어라

‘싱크코리아 요금’을 통해 적립된 기금으로 지원

KTF가 ‘싱크코리아(Think Korea): 한국의 역사와 문화, 미래를 생각합니다’를 슬로건으로 한 사회공헌팀을 꾸린 건 2004년이다. KTF 사회공원팀 오선민씨는 “꼭 필요하면서 그동안 기업들이 발을 많이 담그지 않은 분야의 사회공헌 활동을 고민하다가 ‘청소년들이 역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끔 돕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취지로 싱크코리아 활동을 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KTF 싱크코리아 사회공헌팀은 5월에 출범한 ‘청소년 역사지킴이 활동’ 지원과 함께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와 함께 아시아 친구들에게 우리나라 역사를 알리고 그들과 친구가 되는 ‘아시아 피스메이커’ 지원 △연북소학교 등 중국 재중동포 학교에 우리 역사 문화 멀티미디어 교실 설치 △재외동포 국내 초청을 통한 국내 탐방 활동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에 자리한 발해신소학교와 자매결연 맺기 등을 해왔다.
이들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현재 ‘싱크코리아 요금’을 통해 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KTF 이용 고객이 ‘싱크코리아 요금’을 선택하면 회사가 매달 고객 1명당 500원씩을 적립한다. 현재 9만 명의 가입자가 싱크코리아 요금제를 이용하고 있다. 오선민씨는 “CGV 영화요금제 등 직접적인 할인 서비스가 있는 요금제도 좋지만, 싱크코리아 요금제를 선택하면 역사지킴이 활동에 동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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