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이 첫 입주계약 체결…다른 기업들도 한국 기업과의 합작투자 모색
▣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외국인 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성공단 진출을 활발하게 타진하고 있다. 물론 이런 분위기는 북한 핵 문제의 긍정적 해결 전망과 무관치 않다. 여전히 관망하는 분위기가 상존해 있기는 하나, 상당수 외국인 기업들은 정보 수집에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국의 유명한 컨설팅 회사들도 외국계 기업들을 대상으로 은밀히 대북 투자 상담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의 몇몇 기업들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계 기업들도 남한 기업 파트너와의 제휴를 통해 개성공단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공단의 국제적 신뢰도에 기여
개성공단 1단계(330만㎡=100만 평) 부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사업 성과와 문제점 등을 자세히 관찰한 뒤 핵 문제 등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좀더 완화되는 징후가 포착되면 즉시 투자를 개시하겠다는 태도다. 한국의 대선도 이들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앞으로 5개월 뒤면 바뀔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특히 개성공단 등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해 어떤 정책을 취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와중에 개성공단 1단계 외국인 기업용지(6필지=1만2천㎡)에 입주를 신청한 중국 기업 천진진희미용실업유한공사의 국내 현지법인인 데싱디바가 8월27일 한국토지공사와 개성공단 입주계약을 체결해 눈길을 끌었다. 이 회사는 개성공단에서 인조손톱을 만들 예정이다. 사실 개성공단에는 이미 화장품 용기 사출성형과 조립 뒤 가공을 전문으로 하는 태성하타라는 기업에 일본계 기업이 지분 참여 형태로 투자를 한 상태다. 하지만 이 기업은 일본계 기업의 투자 비율이 50%를 넘지 못해 첫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개성공단에의 외국인 기업투자는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공단의 국제적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더 많은 외국 기업이 진출한다면 입주 기업의 투자 리스크를 줄여 북핵 문제와 같은 예상치 못한 정치적 위험이 도래해도 개성공단을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치·경제적 위험 분석에 민감한 외국 기업이 개성공단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한다면 획기적인 투자환경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중국계 기업은 경쟁 방식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분양됐다는 점에서 상징성을 낮게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실 정부는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핵 실험 이후 외국인 투자기업의 조기 유치 필요성을 절감한 바 있다. 외국인 투자기업이 몇 개라도 입주해 있었다면 덜 동요됐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금은 1단계 잔여 부지의 분양을 모두 마무리하면서 한숨 돌리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변수와 상관없이 개성공단의 가동이 본격화되고 확대될수록 외국인 투자 유치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중국, 베트남 경제특구 입주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외국인 직접투자를 통해 자금 조달뿐 아니라 경영 노하우와 높은 수준의 기술을 이전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도 이를 잘 인식하고 있다. 개발업자인 현대아산과 애초 협의할 때 남북한 모두 향후 첨단기술을 보유한 외국인 기업을 많이 끌어들여 개성공단을 국제경쟁력 있는 경제특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현대와 북한 쪽이 2000년 8월22일 처음 합의한 ‘공업지구 운영에 관한 합의서’ 제4항에는 세계적인 수출단지로 조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계 기업이 들어간다면?
특히 미국계 기업이 개성공단에 들어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지난 4월 권오규 경제부총리 주재로 2007년 외국인직접투자촉진위원회를 열어 오는 10월쯤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개성공단 투자설명회를 열겠다고 밝힌 바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건강·위생 용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인 킴벌리클라크가 통일부와 현대아산 등의 관계자들을 만나 투자 문제를 협의한 사실은 눈여겨볼 만하다. 다만 이 회사는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 조성될 개성공단 2단계(250만 평) 사업에 참여할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계 회사들은 대체로 단기적 현금 흐름을 중시하는 수익성 추구 경향이 있다. 일부 미국계 다국적 기업은 개성공단에 진출해 있는 남한 기업에 대해 지분 투자를 희망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당분간 미국 기업의 개성공단 투자는 미국의 각종 경제 제재로 어렵다는 전망이 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미국 시장에서 높은 관세를 부과받기 때문에 도저히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미국 시장은 넘볼 수 없고, 남쪽이나 중국 등으로 제품을 수출할 기업이라야 한다. 개성공단은 최대의 소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전체 인구의 과반수가 집중된 수도권 지역이 가까이 있다는 점과,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외국인 투자기업에 가장 큰 매력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어쨌든 일부 외국인 기업들이 단독투자보다는 남쪽 기업과의 합작투자, 지분 참여 방식 등을 통한 개성공단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수도권 과밀억제를 위한 수도권 지역의 공장총량제 규정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예외적으로 외국인 투자가 허용될 수 있는 공간이 인천경제자유구역과 개성공단이다.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들에 개성공단은 늘 주목의 대상인 것이다.
필립스전자 등 국내 외국 투자기업 임직원 110명이 지난해 6월 현대아산과 코트라(KOTRA)의 주선으로 단체로 개성공단을 방문한 바 있다. 이들은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를 비롯해 국내 투자기업 등을 둘러보면서 개성공단의 저렴한 토지비용, 양질의 노동력, 세제 혜택 등 투자환경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다들 값싸면서도 숙련된 기술력과 역동적인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개성공단의 성장잠재력이 충분한 만큼 더 많은 이해와 연구를 통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대 변수는 역시 북핵 문제
앞으로 최대 변수는 북핵 문제 해결의 향방이다. 또한 10월 초에 열릴 2차 남북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개성공단 투자환경이 좋아지면 외국 기업의 개성공단 참여를 이끌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들은 남과 북의 정상이 무엇보다 개성공단이 지속되고 확대 발전될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주문한다. 분쟁 해결과 투자자산 보호 등에 관한 규정을 명확히 하고, 통행·통관이 완전히 자유로워져야 함은 물론이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성공단을 방문해 우선 경제특구 성공을 위한 제도개선을 약속하고 국제사회에 투자유치를 호소할 경우 개혁·개방 의지를 나라 안팎에 과시하는 효과와 더불어 북한의 대외 신인도 제고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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