펴낸 송기호 변호사…실험실의 괴물을 내보낼 것인가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가 (녹색평론사)을 펴낸 6월25일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안이 공개된 지 꼭 한 달 된 날이다. 한-미 두 나라 정부 대표가 협정문에 정식 서명할 날짜로 잡아둔 6월30일을 일주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기도 하다.
큰 덩어리의 합의는 이미 정해졌을 것
투자자-국가 소송제, 농업 부문 등 한-미 FTA를 둘러싼 핵심 이슈에 비판적 견해를 줄기차게 제기해온 송 변호사는 이번 책의 부제를 ‘공무원을 위한 한미 FTA 협정문 해설’이라고 달았다. 그는 “국제 중재기관의 해석과 판단은 한글본보다 영문본에 기초할 것이기 때문에 영문본을 기준으로 해설했다”며 “투자 조항을 담은 11장을 중심으로 공공정책 현장의 공무원들이 알아야 할 것을 해설해 이런 새 질서가 과연 수용할 가치가 있는지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6월 말로 예정된 협정문에 대한 정식 서명을 ‘실험실 내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으로 규정한다. “정부 대표의 정식 서명이 이뤄지면 국회의 비준 절차만 남고, 이 조건이 완성되는 순간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협정문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지금까지 협정문은 영어 알파벳 또는 한글 자모의 조합일 뿐이었지만, 곧 살아 움직이며 우리를 구속하게 된다.” 그는 “실험실에서 전류를 흐르게 해 프랑켄슈타인에 생명을 불어넣더라도 쇠사슬을 끊고 밖에 나오지는 못하게 해야 한다”며 정부 대표 간 서명 뒤에도 국회 비준 절차는 여전히 남게 된다는 점을 일깨운다.
송 변호사가 책을 펴내기 직전인 6월21~22일 한-미 두 나라 정부는 FTA에 대한 ‘추가 협상’을 벌였다. 노동, 환경, 의약품, 투자 등 7개 분야에 걸친 미국 쪽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 4월1일 협상 타결 뒤 수차례 “재협상은 없다”고 한 정부의 공언이 이렇게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음에도 해명이나 사과, 하다못해 변명조차 들어보기 어렵다. 추가 협상은 재협상과 다르다는 것일까.
추가 협상인지, 재협상인지가 진행되면서 또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불거져나왔다. 6월 말 정식 서명 뒤에도 재협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방침이 나온 것이다. 추가 협상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른바 ‘협정문 서명과 재협상의 분리’ 방침이 흘러나왔고,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는 6월22일 기자회견에서 “추가 협의 내용에 대해 차분히 시간을 갖고 보는 게 좋겠다는 입장을 미국 쪽에 밝혔다”며 이를 재확인했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 변호사에게 이런 방식의 일처리는 일종의 ‘미스터리’다. 국제계약법에선 서면계약에 절대적 우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정식 서명 뒤 재협상을 한다? 이건 거짓말일 개연성이 높다. 아니면 제2의 협정문 서명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공개된 협정문에 수정을 가한 큰 덩어리의 합의는 벌써 정해졌을 것이다. 이미 공개된 협정문대로 정식 서명을 한다면 별도의 서면 합의가 따로 있다고 봐야 한다.” 그는 따라서 “(협정문 서명 앞뒤의) 재협상은 실질적인 협상이라기보다 이미 상당 부분 정해진 내용을 바탕에 깐 ‘외관상의 협상’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바른 개화’의 기회를 날리다
송 변호사는 ‘책 머리에’서 1895년 출간된 유길준의 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개화하는 데에서는 지나친 자의 폐해가 모자라는 자보다 더 심하다. 바른 개화는 지나친 자를 조절하고, 모자라는 자를 권면해, 남의 장기를 취하고 자기의 훌륭한 것을 지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바른 개화’의 기회를 상실한 것이었고, 그 뒤 10년 동안 개인의 재산이 모든 사회적 가치를 압도하는 문화를 법적으로 제도화한 게 바로 한-미 FTA”라고 규정한다. 24개 장 1171쪽에 이르는 한-미 FTA 협정문이 생명을 얻어 실험실 바깥 세상으로 뛰쳐나올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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