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에 혼란을 부르고 있는 건교부의 수도권 신도시 건설 발표… 주택수요 급증했던 80년대 말과 달리 지금은 거품 폭발의 위험만 부채질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자빠진 김에 뭐 한다더니…. 동문(東問)에 서답(西答)한 것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인천 검단, 경기 파주에 신도시를 건설(파주는 확장)한다는 정부 방침을 엉뚱한 처방이라고 못박았다.
“최근의 부동산 시장 불안은 ‘고분양가’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공공부문의 ‘저분양가’로 화답해야 하는데 ‘신도시’ 처방전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공급량이 적은 게 아니다. 대도시 권역 안에 신도시를 하나 만들려면 전제가 있어야 한다. 공공부문의 효율이 높아야 하고, 공공택지의 분양가를 낮출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부처와 협의도 없이 발표
김 소장의 진단이 아니어도 추가 신도시 건설 방침은 시장에 상당한 혼란을 부르고 있다. 집값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는 정부 설명이 무색하게 집값을 도리어 부추기는 역효과 징후가 뚜렷하다. 추가 신도시 건설지인 인천 검단 지역에서는 미분양이 단번에 해소되고, 청약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투기 바람으로 볼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공급을 늘린다는 얘기가 도리어 값을 끌어올리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독특한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10월27일 정부의 공식 발표에 앞서 23일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이 다른 부처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불쑥 수도권에 분당 규모의 신도시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혼란을 가중시켰다.
신도시 건설 방침에 따른 시장 불안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예전의 신도시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혼란과 시장불안은 있었다. 정부가 신도시 정책을 처음 들고 나온 1980년대 말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부동산 시장에선 주택 수요가 쌓여 공급을 초과해 만성적인 주택 공급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었다. 노태우 정부는 이에 따른 불안을 해소한다며 1988년 9월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기 시작했고, 그 후속 조처로 이듬해 4월 수도권에 5개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건설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5개 신도시는 총 1516만 평에 29만4천 세대 118만 명을 입주시키는 목표로 추진됐다. 이른바 ‘1기 수도권 신도시’의 출발이었다.
김선덕 소장은 5개 신도시 건설 배경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사회 진출이 깔려 있었다고 분석한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7년부터 63년 사이에 한반도 탄생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다. 전무후무한 무더기 탄생이었다. 그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에 나와 결혼을 하고 집을 구하는 시기가 1980년대 말과 겹친다.” 김 소장은 “주택보급률이 한때 80% 정도에 머물다가 점점 떨어져 1980년대 말쯤에 이르면 60%대 초반으로 떨어진다”며 “도시로, 도시로 몰리던 추세와 맞물려 엄청난 주택 문제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만 호 얘기가 나오고, 5개 신도시를 건설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토지공사가 1997년에 작성한 백서 ‘수도권 신도시 개발 배경 및 효과’는 “서울의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급격히 올라 전국으로 파급될 상황이 전개돼 최악의 경우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인식되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주택을 대량 공급해야 할 처지였음에도 도시 지역의 택지는 바닥난 상태여서 신도시를 건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서민층 집단 거주지 될 가능성 높아
여기서 1980년대 말의 신도시 건설과 지금 제시돼 있는 신도시 건설 정책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동시에 발견된다. 불안해진 집값을 잡는다는 정책 목표는 같아도 집값 상승의 배경이나 수급 상황은 크게 다르다. “1980년대 말에는 주택 공급량이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신도시 건설이 추진된 반면, 지금은 주택보급률이 100%를 웃도는 상황이다. 다만, 자가 비율이 낮을 뿐이다.”(부동산 컨설팅 업체인 J&K의 백준 대표) 집값 상승의 요인이나 부동산 시장의 형편으로 보아 1980년대 말에 견줘 신도시 정책의 필연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백 대표는 “80년대 말의 신도시 정책이 주거시설 확대를 꾀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신도시 정책은 재테크 대상을 넓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집값 문제의 근본 요소인 원가, 투기를 유발하는 분양권 전매에 대한 제어 없이 공급을 확대하는 건 집값 안정에 기여하기보다 집의 양극화와 비강남권의 소외감을 부추기게 된다.”
5개 신도시 건설 계획은 1980년대 말 가파르게 치솟던 주택 가격을 진정세로 돌아서게 하는 효과를 발휘했지만, 신도시 건설에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대두되고 신도시 건설 자체에 대한 회의론마저 제기되면서 다시 주택 가격이 오르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국민은행 조사에서 2003년 9월을 100으로 본 서울 주택가격 지수가 88년 말 53.5에 지나지 않았다가 91년 말 75.8까지 높아져 3년 만에 40% 이상 급등한 것으로 나타난 데서 이런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정부가 당시 신도시 건설 일정을 최대한 당겨 추진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정부는 주택공급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기대됐던 분당 신도시 계획 발표 뒤 6개월 만인 1989년 11월 말 시범단지 아파트를 분양해 1991년 9월 말 첫 입주가 이뤄지게 했을 정도로 긴박하게 진행했다. 그 뒤 순차적으로 5개 신도시에 30만 채 정도가 쏟아져나오면서 집값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신도시 입주가 봇물을 이루던 1993년 서울 집값 지수는 69.9로 떨어졌으며 그 뒤 96년 8월까지 3년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다. 국토연구원은 당시 5개 신도시 입주 물량이 서울의 집값을 4% 정도 떨어뜨린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이번 신도시 건설은 어떤 효과를 발휘하게 될까?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맛있는 ‘쌀밥’ 달라는데, ‘안남미 밥’ 주면 잘 안 먹는다”며 ‘제한적 효과론’을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선호하는 주택 수요는 서울 강남, 용인을 비롯한 한강의 동남쪽에 몰려 있다. 판교, 성남, 용인, 수지, 화성 동탄 지역이 그런 곳이다. 이번에 나온 신도시 건설지(검단, 파주)는 그와 정반대로 북서 지역이다. 금천구, 강서구, 은평구 등 서울 북서 지역의 주택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듯한데, 그 지역의 아파트 단지가 부촌이 되긴 어렵고 서민층의 집단 거주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09~2010년, 곳곳에 물량 쏟아지면…
이와는 좀 다른 차원에서 전반적인 공급 과잉을 통한 거품 붕괴를 앞당기게 될 것이란 걱정 어린 관측도 나온다. 백준 대표는 “주택보급률은 100%를 웃돌 정도로 높고, 자가 비율은 낮은 상태에서 공급 중심으로 집값을 쉽게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신도시 건설이) 집값을 안정시키기보다는 집 소유의 양극화를 부채질하다가 4~5년 뒤 전국적인 공급 폭주와 맞물려 일시에 거품을 폭발시키며 경제 혼란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뉴타운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쏟아지는 물량이 2009~2010년에 몰려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당장 내년에 2기 신도시인 화성 동탄 신도시에 입주가 시작되고 2009년부터 판교를 비롯해 김포 장기, 파주 운정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2009~2012년 서울 뉴타운과 신도시 입주 물량은 50만 가구로 추정되고 있다. 자칫 일본이 겪었던 부동산 거품 붕괴의 홍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씨앗이 뿌려졌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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