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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이중대표소송 많이 받으세요

등록 2006-01-12 00:00 수정 2020-05-03 04:24

2006년 재벌개혁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이중대표소송과 회사기회편취 금지…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 제기해 지배구조 규율 장치 만들자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2006년 재벌개혁의 새로운 깃발은 ‘이중대표소송’이 될 전망이다.

시민사회의 재벌개혁 운동을 이끌고 있는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은 1월5일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소액주주운동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재벌개혁은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라며 “앞으론 계열사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문제를 규율하는 장치를 만드는 쪽에 치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와 관련한 두 가지 주요 과제로 이중대표소송 도입과 회사기회편취 금지를 꼽고, 올해 이를 위한 상법 개정 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업집단에 관한 공정거래법상의 규율은 출자총액 제한, 의결권 제한 같은 사전적 규제인데다 갖가지 예외 조항 탓에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며 “사전적으로 의무를 부여해놓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사후적으로 책임을 묻는 회사법(상법)적 규율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비상장사 ‘주식 장만’막을 방법 없나

재벌개혁 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김 소장이 새해 제1과제로 꼽은 이중대표소송은 재벌개혁의 전체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중대표소송은 자회사(또는 종속회사)가 이사의 책임을 제대로 추궁하지 않을 경우 모회사(또는 지배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주주가 해당 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하는 주주대표소송과 달리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한다는 뜻에서 이중대표소송이라고 하며, 손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할 경우 삼중대표소송이 된다. 현행 상법에는 주주대표소송만 도입돼 있을 뿐 이중대표소송에 대해선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이중대표소송의 필요성은 삼성과 SK그룹의 예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우선, 삼성그룹의 사례를 보자.

이미 숱하게 거론됐듯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이건희 회장에서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로 옮기는 과정의 핵심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이었다. 주당 10만원에 이르는 CB를 1만원에도 못 미치는 값에 발행함으로써 이재용 상무 남매에게 막대한 이득을 얻게 하고, 결과적으로 이 상무가 삼성그룹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것에 대해선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이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1996년 125만4천여 주의 CB 발행 당시 삼성에버랜드 이사진이었던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사장이 각각 징역 3년, 2년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경영권 편법 승계 과정에서 누가 가장 큰 손실을 입었는가 하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삼성에버랜드라는 회사다. 쉽게 말해 삼성에버랜드라는 회사의 자금이 이재용씨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는 사적 용도로 쓰인 셈이다. 이렇게 발생한 손실을 원상복귀시키는 방법은 현행 법규에서 딱 한 가지뿐이다. 현 경영진이 옛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이재용씨 남매에 대한 CB 매각을 원인무효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회사의 손실은 사후적으로나마 메워질 수 있겠지만, 이런 소송은 기대할 수 없다. 삼성에버랜드의 전·현직 경영진이 모두 이건희 회장 일가에 장악당해 있기 때문이다.

삼성에버랜드의 주주가 전직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내는 것도 원천봉쇄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에버랜드가 비상장 회사여서 주주대표소송을 내기 위해선 1%의 지분을 모아야 하는데, 거의 모든 지분이 총수 일가의 손에 쥐어져 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가 올해 들어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 부자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삼성에버랜드에 끼친 손실을 메워넣도록 하는 일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상법에 명시하는 내용 넣어야

만약 이중대표소송이 도입돼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삼성에버랜드의 지배회사인 삼성물산이나 제일모직의 주주가 삼성에버랜드의 전직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이나 제일모직은 삼성에버랜드와 달리 상장회사여서 0.01%의 지분으로 대표소송(삼성에버랜드 이사진을 상대로 하는 이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참여연대같은 외부 세력이 우호 지분을 모아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삼성에버랜드에 끼친 손실을 회복시키는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이중대표소송이 제기된 적이 딱 한 번 있기는 했다. 염전개발회사인 ㅎ사 주주 정아무개씨가 이 회사의 종속회사인 ㅅ사 대표 김아무개씨의 회삿돈 횡령을 문제 삼아 손해배상 청구소송(이중대표소송)을 제기한 사안이었다. 이것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03년 9월 대표소송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상법(제403조)에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로 정의한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의 범위에 모회사의 주주까지 포함시킨 전향적인 판결이었다. 그렇지만 이 판결은 이듬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2004년 9월 대법원은 “상법상 대표소송은 반드시 대상 회사의 주주들만 제기할 수 있고, 대상 회사를 지배하는 회사의 주주는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판결해 이중대표소송 제기를 원천봉쇄해버렸다. 참여연대가 그해 4월 SK(주)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모아 SK해운의 최대주주인 SK(주)의 이사회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뜻을 밝혔다가 끝내 소송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여기에서 영향을 받은 바 컸다. 당시 이중대표소송 제기 움직임은 SK(주)의 손길승, 김창근 전 이사의 배임 행위로 SK해운이 1조원의 손실을 입었으며, SK해운의 지분 48.7%를 보유한 SK(주)도 지분법 적용에 따라 48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이 또한 이중대표소송을 통하지 않고는 손실을 보전할 법적 방법이 없다.

따라서 참여연대는 상법에 이중대표소송을 인정하도록 명시하는 내용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계 쪽에선 반대할 게 뻔하지만, 미국·유럽에선 이중대표소송을 인정하는 데서 볼 수 있듯 법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참여연대는 밝힌다. 이중대표소송 법제화의 실무를 맡고 있는 송호창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부소장)는 “상법상 주주대표소송 규정을 일부 개정하는 것으로 법제화할 수 있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법제화하더라도 이미 저질러진 행위에 소급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불법의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라면 법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이중대표소송 도입을 위한 입법 청원을 준비 중이며, 의원 입법을 통한 법제화를 위해 박영선 열린우리당,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별 기업에서 재벌 체제로

이중대표소송과 함께 올해 재벌개혁의 양대 과제로 꼽힌 회사기회편취 금지는 주로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움직임과 관련돼 불거졌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외아들인 정의선 사장은 자동차 운반 등 물류 전문기업인 글로비스를 설립해 상장하는 과정에서 조 단위에 이르는 막대한 평가차익을 거둬 회사의 사업기회를 가로챘다(편취)는 시비에 휘말려 있다. 회사의 유망한 사업기회가 있을 때 이를 회사에 귀속시켜야 함에도 대주주 등 특정인의 이익으로 돌린 것은 상법 정신에 어긋나며, ‘사업 몰아주기’를 통한 ‘세금 없는 신종 대물림 수법’이란 것이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사장의 광주신세계 유상증자 참여를 통한 지분 인수 △최태원 SK 회장의 SKC&C를 통한 그룹 핵심 사업기회의 독점도 이런 사례로 꼽힌다. 현행 세법이나 상법으로는 이런 행태를 막을 수 없는 실정이다.

한누리법무법인의 이지수 변호사(참여연대 실행위원)는 “회사기회편취 금지가 미국에선 확고하게 성립돼 있는 법리인데, 우리나라 법원에선 인정한 적이 없다”며 “이 때문에 불법·탈법적인 성격의 상속이 이뤄져도 법적 제한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세법에 상속·증여세 포괄주의가 도입돼 있어도 비상장사를 이용할 경우 주식을 넘겨줄 당시의 평가 금액에만 세금 징수를 할 수 있을 뿐”이라며 “이러다간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주식 뻥튀기 행태로 세법이 무용지물이 될 지경”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상법 개정을 통해 회사기회편취를 금지할 명시적인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국내 변호사, 법학자들과 상의해 법 체계에 맞는 방향으로 입법 청원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조 소장은 “이중대표소송이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회사기회편취 금지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것이어서 목표는 조금 다르지만, 둘 다 기업과 기업 사이의 관계(기업집단)에서 발생하는 행태를 대상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밝혔다. 재벌개혁 운동의 초점이 삼성전자 같은 개별 기업에서 그룹 형태의 재벌 체제로 옮아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발 물러나는 ‘김상조 깃발’

올해 하반기부터 일선 퇴진 의사 밝힌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김상조(44)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이 올해 중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앉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소장은 “올해 9월이면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맡은 지 5년이 된다”며 “하반기부터는 직접 전면에 나서 센터의 스피커(대변인) 노릇 하는 일을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장직 타이틀을 계속 유지할지 다른 분한테 넘길지는 모르겠지만, 올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시점부터는 다른 사람들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천년만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도 했다.
김 소장의 경제개혁센터는 참여연대 재벌개혁 운동의 중심이며, 재벌의 불법·편법적인 행태와 이론적 싸움을 벌여나가는 전초기지다. 참여연대 초창기를 이끌었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던 경제민주화위원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김 소장은 1999년 재벌개혁감시단장을 맡으면서 참여연대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이듬해 장 교수에게서 바통을 이어받았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총무국장(1995~97년) 시절부터 진보 진영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해왔다.
김 소장이 일선에서 후퇴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눈길을 끄는 그룹은 김우찬(39)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송호창(39)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김경율(37) 회계사 등 3명의 부소장이다.




대표소송이란 무엇인가

주주가 회사를 대표해 손실 끼친 경영진에 소송 제기, 97년부터 요건 완화

일정 지분을 가진 주주가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대표소송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62년 상법 제정 때였는데, 과다한 소송 비용과 엄격한 요건 탓에 유명무실한 제도로 여겨져왔다.
소수 주주의 권리 의식이 높아진 1997년 4월 증권거래법 개정으로 대표소송에 관한 상법상의 특례 규정이 도입됨에 따라 소송 요건이 완화됐다. 6개월 이상 1%(자본금 1천억원 이상의 경우는 0.5%) 지분을 보유하면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998년 2월 증권거래법 개정 때 대표소송 요건 중 보유지분 기준이 상장회사의 경우 0.05%로 완화됐고, 같은 해 5월 또다시 0.01%로 풀렸다. 비상장 회사의 지분 요건은 상법 규정에 따라 1%로 돼 있다.
지난 1997년 제일은행 전·현직 이사들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과 2001년 12월 삼성전자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소액주주 쪽이 승소했다.
주주대표소송은 경영진의 결정이 주주의 이익과 어긋난 데 대해 주주가 회사를 대표해 손실을 끼친 경영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어서, 판결의 효력은 회사에 돌려진다. 증권집단소송 제도를 비롯한 집단소송제에 따른 판결의 효력이 피해자(투자자) 쪽에 돌아가는 것과 차이를 띠는 대목이다.
이중대표소송은 자회사 임원 등의 부정행위로 손해를 입었을 때 모회사의 주주가 모회사 주주 자격으로 자회사를 대신해 대표소송을 내는 것을 말한다. 종속회사의 부정행위 등으로 손해를 입은 경우 지배회사 주주가 종속회사 이사를 상대로 직접 대표소송을 내는 것으로, 현행 상법에는 이를 허용하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지난 2003년 이를 인정한 고등법원의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가 이듬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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