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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하다, 최후의 부동산 정책

등록 2005-09-01 00:00 수정 2020-05-03 04:24

세제 강화를 골자로한 ‘8·31 대책’이 ‘세금 폭탄’이란 비판은 어불성설
불로소득 환수장치 미흡한 데다 제한적 대책마저 국회 논의과정에서 후퇴할 듯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또 한번 기를 쓰고 마련한 부동산 대책의 발표 시점은 8월31일.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8월25일)을 넘기고도 엿새를 지나는 때다. 갖가지 부동산 처방은 거의 예외 없이 입법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참여정부는 이제 더는 부동산 정책을 손질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할 터이다. 이번 대책이 사실상 마지막 처방인 셈이다.

‘10·29 대책’(2003년), ‘5·4 대책’(2005년)에 이은 이번 ‘8·31 대책’은 ‘마지막’이란 비장한 수식어에 어울릴 만큼 내실을 갖췄을까?

대책 발표 두달 전부터 시작된 당정회의 등을 통해 조금씩 알려져 어느 정도 예상됐듯이 이번 대책의 중심은 세제 강화다. 대표적인 보유세로 꼽히는 주택 종합부동산세의 과세 기준을 9억원(기준시가)에서 6억원으로 낮춰 적용한다는 게 한 예다. 종부세의 인상 상한폭을 전년도의 50%에서 200%로 높이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여기에 1가구 2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9~36%의 누진적 구조에서 50%의 단일세율로 매기는 내용이 핵심 사항으로 꼽힌다. 정도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불로소득을 환수할 장치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는 투기수요를 억제하는 조처(세제 강화)가 우선 필요하다’는 이전 대책의 맥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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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책에 대한 바깥의 평가는 다양한데,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킬 과도한 세제 강화라는 건 대책의 실상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종부세의 기준을 9억원에서 6억원으로 낮추는 조처를 예로 들어보자.

서민층 세부담과는 전혀 무관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택의 92.9%는 3억원 이하다. 6억원 이하는 98.3%. 결국 기준을 낮추더라도 종부세 과세 대상 주택은 1.7%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가구별로 보면, 세대별 합산 6억원 이상 주택 소유 가구는 18만 안팎으로, 전체의 2% 미만이다. 이를 두고 ‘세금 폭탄’이니 ‘세금 쇼크’ 같은 자극적인 용어를 동원해 서민들까지 잡는다고 핏대를 세우니 참 낯도 두껍다. 2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강화 조처 또한 대상자는 갖가지 예외 조항으로 전체의 3% 안쪽으로 추정되는데다, 그나마 1년 미뤄져 시행될 예정이어서 서민층 세부담과는 전혀 무관하다. 보유세·양도세를 올리는 데 맞춰 서민층에게도 적용되는 부동산 거래세(취득·등록세)는 낮추도록 짜여 있다.

관건은 이번 대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인데, 세제 강화의 긍정적인 측면에도 전반적인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특효약이 될 것이란 기대는 금물일 듯하다. 불로소득 환수 장치가 미흡한데다 후분양제 도입 등 분양 관련 시스템을 고치는 내용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부동산 세제를 정상화, 합리화한 수준이라는 게 적절한 평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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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문제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대단히 제한적인 이런 정도의 세제 강화 또한 국회 통과라는 만만치 않은 험로를 거친 뒤에야 이뤄진다는 현실 정치의 역학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8·31 대책이란 ‘서말(사실은 한말도 안 되는)의 구슬’일 뿐이고, ‘보배’가 되려면 국회에서 ‘실’에 꿰어야 하는데, 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흐물흐물해진 10·29 대책, 이번에도?

정부 방안이 국회 논의를 거치면서 흐물흐물하게 변질된 사례는 이미 10·29 대책의 입법화 과정에서 실감나게 겪었다. 종부세의 경우 애초 정부안에서 제시한 기준선 9억원을 6억원으로 낮추고, 세부담 상한선(전년도의 50%)을 설정한 게 대표적인 예다. 방향을 제법 잘 잡은 것으로 평가됐던 10·29 대책이 별 힘을 쓰지 못하고 그 뒤의 투기 광풍으로 이어진 건 이같은 정책의 후퇴 탓이었다. 참여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만큼은 비교적 일관성을 띠었다는 평이 덩달아 무색해진 게 이런 데서 비롯됐다. 사실 이번 대책의 핵심을 이루는 종부세를 놓고 볼 때 정부·여당이 난리굿을 벌여 마련한 대책이 고작 10·29 대책의 원점으로 돌아간 내용이다. 그나마 다시 국회의 도마에 올라야 할 한심스런 처지다.

10·29 대책의 입법화가 진행된 2004년은 그래도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으로 기세등등하던 때였다. 적어도 의석 분포도로 봐서는 8·31 대책의 앞날이 훨씬 불투명하다고 봐야 한다.

열린우리당쪽은 이에 대해 그렇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투다. 부동산정책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안병엽 의원은 “한나라당도 부동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대충 우리와 비슷한 방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쪽의 주장을 적잖이 수용했기 때문에 국회에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맹형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도 “전반적으로 큰 기준에선 (정부 방안과) 많이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 대책에선 한나라당의 선도적인 주장에 따라 도입된 핵심 내용이 몇 가지 있다. 종부세 세대별 합산과세나 2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는 지난 7월20일 한나라당 부동산대책특위에서 먼저 들고 나왔던 사항이다. 종부세 세대별 합산을 둘러싼 위헌론이나 2주택 중과세에 대한 조세저항 시비는 사실 한나라당쪽에 돌려져야 할 판이다.

이런 형편으로 볼 때 여당과 제1야당의 배짱이 제법 맞는 듯한데,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한나라당쪽의 솔직한 속마음은 “세제 강화를 찬성한다”가 아니라, “반대하지 않는다”에 가깝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몰라도 이건 아주 많이 다르다. 한나라당은 정부·여당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 “세제 강화에 치우친 규제 일변도이고, 공급을 늘리는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적인 태도다. 세제 강화에 대해선 여론의 동향을 의식해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할 뿐이다. 정부·여당보다 앞서 세제 강화책을 제시한 것도 따지고 보면 당내 부동산대책특위의 방안이었을 뿐 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게 아니었다. 당장 국회 재경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기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 대책 발표 뒤 국회에서 논의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여야 사이에 대립각이 날카로워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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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내부 의견 갈라진다면…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불거져나올 반대 기류다. 한나라당의 반대라면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의 협조를 얻어 극복할 수 있겠지만, 열린우리당 내부 의견이 갈라질 경우 정부 대책은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걸 기우라고 볼 수 없는 게 정부 대책 발표 직전 열린우리당쪽의 주장에 따라 2주택자의 양도세율을 60%에서 50%로 떨어뜨리고 적용 대상을 대폭 줄이는 등 애초 안이 하나둘씩 후퇴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세금 폭격’ 따위의 선동적인 언론 매체의 구호에 휘둘린 결과다. <한겨레> <경향신문> 정도를 뺀 거의 모든 언론 매체들이 세제 강화를 중심으로 한 정부 대책을 맹렬하게 물어뜯는 행태는 앞으로도 이어질 게 뻔하다. 10·29 대책 뒤의 전철을 떠올리게 할 뿐 아니라, 국회 논의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이 후퇴할지 아득한 대목이다.

서말은커녕 한말도 못 되는 구슬이 그나마 실에 꿰어지지도 못한 채 국회 뒷마당에 나뒹굴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빗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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