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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원은 받는만큼 일하나

등록 2005-06-02 00:00 수정 2020-05-03 04:24

사업보고서에 공개된 재벌이사 억대연봉의 허와 실
경영성과와 제대로 연동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기업의 꽃’으로 불리는 임원은 언제나 샐러리맨들의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억대 연봉’을 받기 때문이다. 막대한 규모의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과 판공비까지 감안하면 임원의 자리는 누구나 오르고 싶은 ‘별’이 된다. 게다가 이사로 등재돼 있는 등기임원들은 사실상 재벌총수 부럽지 않은 거액의 보수를 받는다.

이사회의 보수 지급 기준 공개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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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등록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임원보수’가 나온다. 주총 안건으로 흔히 ‘이사보수 한도 승인의 건’이 있는데, 임원보수는 주주총회에서 정한다. 그러나 전체 등기이사의 총액보수 상한을 규정할 뿐 등기이사별로 정확한 보수를 정하는 건 아니다. 사업보고서에도 개별 임원들의 지급 명세는 공개하지 않고, 등기이사들이 연간 받은 총보수와 1인당 평균보수가 공시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사업연도에서 임원보수와 관련해 주총에서 승인 금액은 총 600억원. 이 중 사내이사 6명한테 총 538억원이 지급됐다. 1인당 평균 89억7천만원이다. 사외이사 7명한테는 총 4억5천만원, 1인당 평균 6천만원이 보수로 지급됐다. 현대자동차는 등기임원 7명 중 사내이사(3명)한테 총 34억9천만원(1인당 평균 11억6600만원)을 지급했다. 월간 에 따르면, 국내 100대 상장기업 임원(등기 사내이사 기준)들의 지난해 평균연봉은 4억4천만원, 직원 평균연봉은 4400만원으로 9.98배에 달했다.
LG전자의 경우 주총에서 승인받은 임원 보수한도는 45억원인데, 등기이사 2명한테 총 15억5천만원, 1인당 평균 7억7천만원이 지급됐다. 그러나 누가 얼마를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등기임원 가운데 (주)LG 강유식 부회장의 보수는 주총 승인금액에는 포함돼 있지만, 정작 실제 지급 총액에서는 빠져 있다. ‘비상근’이라는 이유에서다. 주총 승인금액 중 사내·외 이사(6명)들한테 실제 총지급된 17억5천만원을 뺀 나머지 금액 중 얼마를 강 부회장이 받았는지도 알 수 없다.


한국개발연구원 김우찬 교수는 “이사회에서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등기임원의 업적을 평가하고 보수를 지급했는지 전혀 공개돼 있지 않다. 등기임원들이 재벌총수 일가에만 충성하도록 유인 체계가 갖추어져 있는지, 아니면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하도록 만들어져 있는지 주주들이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등기임원들한테 왜 그만큼 지급했는지, 기준·원칙·절차 등 어떤 ‘근거’ 제시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사들이 이사회에서 직접 자신의 보수를 책정하는 식이다. 한편, 금호산업은 개별 등기임원들의 보수 내역을 사업보고서에 공개하고 있다. 금호산업쪽은 “2003년에도 공개했다. 별 이유는 없고 다른 대기업에 비해 임원 보수가 상당히 적은 편이고, 그래서 공개가 편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기업들은 개별 임원 보수 공개는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주장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개별 보수 공개가 임금 인상과 경영성과 배분 요구 같은 갈등을 초래하고 기업 임원의 기업 의욕을 해치게 된다”며 “임원 연봉이 높은 기업일수록 수익성과 주주가치도 높기 때문에 굳이 임원 보수 지급 내역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톡옵션은 비등기 임원들까지 개인별 부여 현황이 낱낱이 공개돼 있다. 김우찬 교수는 “개별 이사들의 보수가 주가 또는 영업성과에 제대로 연동돼 있는지 주주들이 판단할 수 없는 상태다. 우리나라 최고경영자들의 보수는 절대액으로 볼 때 미국·영국 등에 비해 한참 낮은 편인데, 높고 낮고를 떠나서 임원 보수가 성과와 연동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대리인’인 주요 임원은 소유주(주주)를 대신해 기업을 경영하게 되고, 여기서 ‘대리인 비용’이 등장한다. 주요 임원들이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일하도록 유인 동기를 충분히 제공해야 하는데, 임원들의 높은 보수는 이런 비용에 속한다. 임원들이 잘못해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승진을 못하거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임원 보수가 높다면, 일자리를 잃는 데 따른 기회비용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에 임원들은 주주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될 것이다. 또 임원들은 대체로 위험 기피적 행동을 할 공산이 큰데, 보상 패키지에 성과급과 스톡옵션을 잔뜩 부여하면 모험적 투자를 유도해 회사 이익을 증가시킬 수도 있게 된다.

순이익 감소해도 임원 연봉은 오른다?



과연 임원들은 기업 이윤에 어느 정도의 ‘생산성’으로 얼마만큼 기여하는 것일까? 물론 경영자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새로운 시장과 상품을 창출해 수천억원의 돈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이른바 ‘기업가 정신’인데, 이는 “임원들은 수억원대의 보수를 받을 가치가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삼성전자쪽은 “주요 임원들의 의사결정과 판단은 매우 중요하다. 사업판단·기회포착에서 이를 놓쳤다면 큰 수익을 못 냈을 것이다. 삼성전자의 실적이 나쁜 것도 아니고 10조원 이상 이익을 냈는데 주요 임원들의 노력과 역할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직원은 쥐꼬리만 한 월급만 주고 주주들도 이익배당 안 해주면서 임원들만 지나치게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다면 주주들이 주총에서 이사 보수 한도를 승인해줬을 리 없다. 이사회도 사내이사(6명)가 사외이사(7명)보다 적다. 사외이사가 타당하지 않다고 반대하면 안 자체가 통과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등기임원의 1인당 연봉 89억원은 이사회에서 무턱대고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기업가 정신’을 가진 최고경영자들만 무수히 존재하면 어느 기업이든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일까?
ㅆ사는 지난해에 순이익이 56% 감소했는데도 임원 연봉은 2억1천만원에서 2억4천만원으로 올렸다. ㅅ사도 순이익은 41% 감소했는데 임원연봉은 3억4천만원에서 9억원으로 인상했다. 오직 순이익 지표만 갖고 경영 성과와 이사 보수를 결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임원 보수가 성과와 무관하게 정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럴 경우 월급쟁이들은 신세가 더 처량해질 수밖에 없다. 임원의 억대 연봉이 희망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오히려 불만과 좌절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현재 이사 보수를 정하기 위한 ‘보수위원회’를 이사회 안에 설치한 기업은 KT&G, KT, 포스코 등 민영화된 공기업밖에 없다. 김우찬 교수는 “국내 민간기업도 임원 보수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며 “개별 임원 보수 공개는 월급이 빤히 드러나는 것이어서 강제로 하지 않으면 어떤 기업도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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