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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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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구조조정 해야 하나

등록 2005-01-19 00:00 수정 2020-05-03 04:24

경쟁력 없으면 워크아웃 해야한다는 주장은 옳은가…인위적 ‘퇴출’보다는 생산성 혁신 도와야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국 경제에서 중소기업 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까지 이른 수많은 중소기업이 우수수 쓰러질 것이라는 ‘중소기업 대란설’은 지난해에 끊임없이 나돌았다. 중소기업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중소기업 구조조정론’이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구조조정 지연됐다는 주장은 무리

중소기업 구조조정을 가장 앞장서 외치고 있는 쪽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다. 한국개발연구원 김중수 원장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중소기업 구조조정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며 “회생 가능한 중소기업은 적극적인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을 실시하고, 부실화된 중소기업은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의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이뤄졌으나 부실 중소기업은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면서 구조조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는 논리다. 정부 일각에서도 부실 중소기업에 대한 채무 재조정을 통해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살리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신속하게 청산하기 위한 ‘중소기업 배드 뱅크’를 설립하자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중소기업 배드뱅크를 ‘워크아웃을 통한 기업 회생 도모’로 볼 수도 있지만,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의 워크아웃은 사실상 부실기업 ‘퇴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산업연구원 조영삼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은 채권자 논리가 지배한다. 대기업에 대한 워크아웃이 기업을 살리는 지원이었다면, 반대로 중소기업은 대출액이 상대적으로 적고 퇴출시켜도 시장의 충격이 작기 때문에 죽이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중소기업 채무 재조정은 지원이 아닌 정리 절차가 될 것이다. 중소기업은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순간 망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채권금융기관이 그동안 중견기업과 대기업에 대해서는 막대한 공적 자금과 국민 세금을 투입해 살려준 반면,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은 ‘퇴출’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중소기업 구조조정은 정확한 진단이자 처방일까?

우선,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주장은 맞는가? 사실 중소기업 수(5인 이상 중소기업 10만9천개)는 외환위기 이전이나 이후나 별다른 변동이 없다. 그 이유는 구조조정이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수많은 중소기업이 쓰러진 반면 명예퇴직·정리해고 등에 따라 창업 또한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홍정호 과장(경제정책팀)은 “중소기업 부문에서 진입과 퇴출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1개 기업이 부도가 났을 때 다른 쪽에서 새로운 10개 기업이 창업되고 있다”며 “‘다산다사(多産多死)형’ 구조가 상시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조영삼 연구위원도 “정부 지원으로 중소기업들이 연명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가장 심하게 퇴출된 기업이 중소기업”이라며 외환위기 이후 도산한 2만개 이상의 법인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신용보증 확대, 금융대출 끊겼기 때문

한국개발연구원은 정부의 신용보증 확대가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보의 신용보증 공급 규모는 외환위기 이전 10조원대에서 2003년 50조원까지 급증했다. 한국개발연구원 김준경 연구위원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신용보증 지원금액을 보면, 2004년 한국은 6.2%인데 미국 0.1%, 프랑스 0.4%로 선진국에 비해 보증 지원이 훨씬 크다”며 “그러나 우리나라의 2004년 보증 지원 규모(44조원 추정) 중 창업기업 지원에 쓰인 돈은 0.2%에 불과한데 미국은 26%, 프랑스는 52%였다”고 말했다. 부실징후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이 확대되자 은행들이 보증을 믿고 중소기업의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고 있는데, 이처럼 부실 중소기업들이 연명됨에 따라 거꾸로 창업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은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준경 연구위원은 “이미 죽었거나 부실화된 중소기업들을 신용보증을 통해 붙들고 끌어안고 있기 때문에 기술은 있지만 돈 빌릴 데가 없는 창업형 중소기업에 흘러가야 할 돈이 줄어들고 있다”며 “정부 지원이 창업형 우량 중소기업들을 간접적으로 죽이고 있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에 여전히 살아 있는 부실 중소기업들이 매출을 올리려고 덤핑으로 재고를 처리하는데, 이에 따라 우량 중소기업들도 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고 자연히 수익성이 떨어지는 물귀신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연구원 조영삼 연구위원은 “신용보증 공급이 늘어난 건 주로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 대한 생계형 보증이지 중소 제조업에 대한 보증은 적을 것”이라며 “또 외환위기 이후 중소기업 금융대출이 완전히 끊겨 은행이 안 움직이니까 어쩔 수 없이 보증을 작동시킬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신용보증 확대로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또한 중소기업 신용보증 규모는 지난해부터 이미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개발연구원쪽은 중소기업을 ‘보호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빨리 탈피해 중소기업도 구조조정이라는 ‘건전한’ 시장 압력을 수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준경 연구위원은 “구조적으로 인건비 비중이 매우 높고 기술 수준은 중국이 이미 좇아와 웬만한 국내 중소기업들을 다 제쳤는데, 정부가 도와준다면서 자금 지원한다고 중소기업들이 살아날 수 있는가? 쓸데없이 돈만 쓰는 건 아닌가?”라며 “진짜 기술집약형 창업기업 외에 전통적 부문의 중소기업이나 이름뿐인 벤처기업은 구조조정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실업자들은 직업훈련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 시스템 정상화·하청 관계 개선을

이에 대해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홍정호 과장은 “정보기술 거품이나 신용카드, 가계 부채 등 정부 정책 실패가 내수 부진을 가져왔는데, 중소기업은 어떤 의미에서 ‘억울하게’ 내수 부진으로 자금난에 봉착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는 형편”이라며 “그런데도 정부쪽이 지금 중소기업 구조조정이 덜 됐다는 논리로 접근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기업도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수출기업은 괜찮은 편인데 내수기업들이 유독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중소기업청 최수규 정책총괄과장은 “국내에서 사업하기 어려운 한계기업은 죽이기보다는 해외로 내보내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며 “섬유·신발 등 전통적 사양산업으로 불리는 업종도 기술 개발과 혁신을 통해 고부가가치쪽으로 얼마든지 사업을 전환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 노동집약형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죽이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엔진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부품을 선풍기, 자동차, 송풍기 등 여러 판로로 내보낼 수 있다. 따라서 선풍기가 막히면 대신 자동차쪽으로 판로를 뚫어줘 기업을 살리는 정책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중소기업 문제의 해법은 무엇인가? 우선,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대출 시스템부터 정상화해야 한다. 현재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시스템은 완전히 망가진 상태다. 기술로 승부하는 알짜배기 창업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은행쪽은 제대로 대출심사를 하지 않은 채 보증 없이는 한푼도 대출해주지 않고 있다. 시중은행의 전체 중소기업 대출을 보면 담보대출 50%, 신용보증대출 30%, 제3자 개인보증대출 10%이고 순수한 신용대출은 10%에 불과하다. 부실 대기업은 청산시키면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게 뻔하니까 은행이 알아서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지만 중소기업은 부실 징후가 조금만 나타나도 대출금을 서둘러 회수해버리고 만다.

특히 중소기업이 ‘성장 원천’을 확보할 수 있도록 대기업과의 불공정 하청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사업을 해봤자 쌓이는 내부 유보가 없다 보니 아예 성장을 위한 투자를 할 수 없다. 내부 유보가 적립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로 불평등 하도급에서 비롯된다. 산업연구원 조영삼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대다수 중소기업은 정상 기업이라도 2∼3년간 경기가 하강하면 한계 위협에 노출되는 구조”라며 “대기업·중소기업간 분업 구조가 잘되면 동반 성장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모순이 힘없는 중소기업으로 전가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 전략과 직접 연결되어 대기업의 부정적 파급 효과를 흡수하는 버퍼 역할을 하고 있는데, 대기업의 신규 투자 축소·단기 성과주의·임금 인상의 부담을 중소기업이 모두 떠안기 때문에 내부 유보가 아예 생길 여지조차 없다는 얘기다.

서구에 비해 내성 강하지 못한 편

물론 모든 중소기업을 다 끌어안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매우 역동적이라서 망해가는 기업도 판로 하나만 제대로 뚫리면 흥하고, 잘나가던 중소기업도 탄탄한 판로가 끊어지면 금방 망하고 만다. 따라서 구조조정을 통한 ‘퇴출’만이 올바른 처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조영삼 연구위원은 “사양업종이라고 해도 아직 살아남은 중소기업들을 보면 혁신을 통해 성장성을 갖춰가고 있다”며 “중소기업의 경쟁 토양을 만드는 건 좋지만 인위적으로 구조조정을 촉발해 중소기업을 솎아내는 건 부작용을 더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서구에 비해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연륜이 짧고 내성도 아직 강하지 못한 편”이라며 “중소기업에 당장 필요한 것은 잠재적 씨앗에 ‘생산성 혁신’을 장착해 시장 위쪽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내부 양극화도 심각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 문제가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지만, 양극화는 중소기업 내부에서도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외부 감사 대상(자산 규모 70억원 이상) 중소기업 8800여개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를 보자(표 참조). 영업이익률의 경우 정상적이라면 영업이익률 4∼6%인 중간층 중소기업이 넓게 분포해야 마땅한데, 2003년의 경우 중간층은 얇은 반면 영업이익률 10%가 넘는 고성장 중소기업과 영업이익률 0% 미만인 부실 중소기업으로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특히 흥미롭게도 노동집약적 저기술 산업군(섬유·가죽·가방·목재 등)보다 고기술 산업군(전자·영상·음향·통신장비 등)에 속하는 중소기업에서 오히려 부실징후 기업이 훨씬 더 많다. 2003년에 고기술 산업군 중소기업 중에서 이자보상배율 1배 미만인 업체는 무려 38%에 이르고,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인 부실징후 기업은 전체 고기술 중소기업의 11.2%(85개)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 김준경 연구위원은 “벤처 거품이 붕괴되면서 중소기업에서 고기술 산업군에 속하는 기업의 채무상환능력, 영업이익률, 이자보상배율이 저기술 및 중저기술 산업군에 속하는 중소기업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중소기업 내부의 고기술 산업군에서도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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