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氣uP! | 코업레지던스]
온라인 부동산정보 사업에서 `호텔형 오피스텔'로 전환해 성공한 코업레지던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지난 2000년 말께, 석동인 코업자산관리 대표(당시 한국경제부동산서비스 전무)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해 몇몇 동료들과 시작한 온라인 부동산정보제공 사업에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국민기술금융의 출자를 받아 설립한 ‘한국경제부동산서비스’(kedOK.co.kr)를 통해 전국 400만 가구(아파트)의 시세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업은 애초 기대와 달리 변변한 수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위탁 맡길 경우 안정적인 수익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아왔다가 다시 오프라인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인 석 대표 등은 새로이 개척할 사업 분야를 ‘서비스드 레지던스’(Serviced Residence)쪽에 맞췄다. 서비스드 레지던스는 호텔식 운영관리 시스템에 주방시설 등 주거 기능을 갖춘 혼합형 상품으로, ‘호텔형 오피스텔’ 또는 ‘호텔형 콘도’로도 불린다. 이용료가 호텔보다 훨씬 저렴하면서 호텔의 서비스와 주거의 편안함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때문에 고소득 독신자나 외국인 비즈니스맨이 장기 투숙하기에 적합한 시설로 여겨진다.
“온라인 사업을 접으면 뭘 할까 고민하던 끝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서비스드 레지던스로 방향을 잡았다. 아파트 사업은 대규모 자본이 필요했고, 당시 한창이던 오피스텔에 대한 인기는 하강 곡선을 탄 뒤였다. 부동산개발 전문가들의 직감으로 아파트, 오피스텔, 호텔의 기능을 두루 갖춘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틈새시장이 될 걸로 판단했다. 외국에서 레지던스를 경험해본 적이 있고, 국내에 외국 브랜드가 이미 들어와 있던 터라 이 분야를 잘 알고 있었다.”(석동인 대표)
당시 석 대표와 함께 한국경제부동산서비스를 같이 꾸려가고 있던 김영수 코업 총괄 사장, 임근율 코업(주) 대표, 이상엽 코업 이사 등 창업 동지들이 새 사업 구상을 가다듬고 있을 즈음 김영만 코업자산관리 전무가 합류했다. 이때부터 새 사업을 위한 브랜드로 ‘코업’(co-op·협력을 뜻하는 cooperation에서 따왔다)을 정하는 등 사업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해 이듬해인 2001년 1호점인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코업레지던스를 처음으로 분양하기에 이르렀다.
자금조달을 비롯한 사업 초기의 어려움을 뚫고 첫 작품인 휘경동 132실의 분양을 시작한 날은 공교롭게도 ‘9·11 테러’ 당일이었다. 석 대표는 “분양 광고를 할 생각은 못했고, 새로운 사업 영역이다 보니 각 신문에서 분양 기사가 다뤄졌는데, 바로 그날 일(9·11 테러)이 터져 아찔했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분양은 애초 걱정과는 달리 순조로워 2주 만에 100% 완료됐다.
“온라인 사업을 할 때 체인점 역할을 했던 전국 1600개 부동산중개업소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져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온라인 사업에선 재미를 못 봤지만, 새로운 사업의 바탕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또 분양을 받은 사람들이 위탁을 맡길 경우 안정적인 수익(연 10% 수준)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과 이에 따른 자산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석 대표) 휘경동의 코업레지던스는 2003년 1월 정식으로 개관했으며, 본격적인 의미의 국산 서비스드 레지던스 브랜드 1호로 꼽힌다.
외국계에 비해 저렴한 가격
코업레지던스는 휘경동에 이어 을지로(2003년 8월), 삼성역(2004년 3월), 오목교(6월), 서초동(9월) 등 서울 시내 곳곳에 잇따라 문을 연 데서 엿볼 수 있듯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있다. 올 4월에는 서울대 입구, 8월에는 을지로, 12월에는 경기도 수원시, 내년 7월에는 서울 노고산동에서도 코업레지던스가 선을 보일 예정이다. 이미 개관해 운영 중인 1600실에 개관 예정인 것을 합하면 코업레지던스의 객실 규모는 2800실에 이르러 서울 지역에선 가장 촘촘한 네트워크를 갖추게 된다.
코업레지던스의 사업 주체는 디벨로퍼(부동산개발회사)인 코업(주), 자산관리회사인 코업자산관리(주), 시공사인 코업건설(주)로 나뉜다. 코업건설이 지은 건물을 코업(주)을 통해 일반에 분양한 뒤 코업자산관리(주)에서 이를 위탁(임대)받아 재임대하는 방식의 사업이다. 코업레지던스 사업의 핵심인 코업자산관리(주)는 사업 초기인 지난 2003년 한해 매출 9억원에 18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는 데 그쳤다가 2004년(추정)에는 매출이 150억원 수준으로 껑충 뛰었으며, 지난해 10월부터는 월 2억원의 경상이익을 거두고 있다. 회사쪽은 2005년에는 200억원의 매출에 20억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코업보다 앞서 서비스드 레지던스 사업을 시작한 소피텔 레지던스, 오크우드, 프레이저 스위트 등 외국 업체가 여러 곳 있다. 이들 외국계 서비스드 레지던스는 고소득을 올리는 외국인 비즈니스맨들을 주로 상대하고 있으며 이용료가 상당히 비싼 편이다. 미국계인 오크우드 14평형의 월 이용료는 575만원, 프랑스계 소피텔 레지던스는 330만~550만원(11~25평형), 싱가포르계인 프레이저 스위트는 무려 819만원(25평형)으로 알려졌다.
이에 견줘 코업레지던스의 월 이용료는 120만~150만원 수준이다. 하루 4만~5만원인 셈인데, 거주 기간이 1주일일 경우 하루 이용료는 8만원 수준에 이른다고 회사쪽은 밝혔다. 평형대는 외국계보다 작은 8~10평이 주류를 이룬다.
코업레지던스의 주요 고객층은 외국인 관광객이다. 특급 호텔 숙박료가 하루 20만~30만원에 이르는 것을 감안할 때 1주일 이상 오래 머무는 외국인 관광객으로선 서비스드 레지던스를 선호할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비교적 싼 가격대에 호텔에서 제공되는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을지로와 오목교에 있는 코업레지던스의 외국인 점유율이 55%에 이르는 데서 이런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석동인 대표는 국내에도 수요층은 두꺼워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극복 과제, 과열 경쟁
“가족 형태가 소가족 단위로 바뀌면서 주거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엔 시골에서 서울로 일을 보러 오면, 친척집에 머무는 게 당연지사였지만, 이젠 주거 형태 변화로 형제 집에서도 2~3일 이상 지내기 힘들다. 그렇다고 호텔에 묵자니 너무 비싸고 모텔이나 여관은 ‘러브호텔’ 이미지 탓에 선뜻 내키지 않는다. 대입 수험생 등 서울에서 잠깐 지내야 할 이들이 머물 마땅한 곳이 없다. 여기에 바로 서비스드 레지던스의 틈새가 있다.”
싱글족(독신자)이 늘어나고 공적 기금의 부동산 투자가 허용된 것도 코업레지던스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고 있다.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단체로 1년 이상 장기간 이용하는 예도 생겨나 코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내의 한 국책은행은 사택을 리모델링하는 동안 사원들이 머물 수 있도록 코업레지던스 114실(휘경동 74, 을지로 40)을 지난해 5월 장기 임대해 쓰고 있다.
한편, 비슷한 형태의 사업체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데 따른 과열 경쟁은 코업레지던스가 극복해야할 과제로 꼽힌다. 또 서비스드 레지던스 등장으로 영업에 타격을 받고 있는 호텔 업계에서 제기한 불법 시비도 코업레지던스가 풀어야 할 숙제다. 호텔 업계쪽은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숙박업 등록도 하지 않은 채 불법 숙박업을 하고 있다며 지난해 9월 서울시관광협회를 통해 서울 중구청에 고발한 상태다. 김영만 전무는 이와 관련해, “숙박업과 임대업을 구분할 수 있는 체류 기간에 관한 명확한 개념이 없는 데 따른 혼란일 뿐이고, 불법 사항은 없다”며 “관련법을 보완해 임대와 숙박을 명확히 구분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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