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쌍둥이 적자로 달러 가치 하락하며 세계 경제에 그늘 드리워
▣ 최배근/ 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고유가와 더불어 달러 약세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심화하고 있다. 최근 월평균 환율을 기준으로 유로화와 엔화에 대한 달러가치가 각각 8개월과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경신하는 등 달러 약세가 가속도를 내자 안전자산인 금으로 자본이 유입되며 뉴욕 시장의 금선물이나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금 지수가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달러가 주요 통화에 대해 약세를 나타내자 대안투자 수단인 금에 매수세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소비마저 위축된다면
최근의 달러 약세는 미국의 경상 및 재정수지의 쌍둥이 적자와 더불어 미국 경기 회복세에 대한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4125억5300만달러에 달하는 2004 회계연도(2003년 10월~2004년 9월)의 재정 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3.6%, 지난해보다 19%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올해의 무역 적자(5900억달러)는 GDP의 5.15%에 해당한다. 여기에 최근 고공행진 중인 유가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를 더욱 확대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미국의 주식·채권이 전세계 투자가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외국 정부와 개인은 미국 국채 총 발행량(3조7천억달러)의 절반가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빚을 갚는 데 필요한 자금(하루 약 10억달러) 대부분을 해외 투자가에 채권을 팔아 조달하고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외국인들이 미국 자산을 일제히 팔려고 나서거나 외국의 중앙은행이 미국 투자자산을 사들이지 않을 경우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 등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막대한 달러를 갖고 있는 중국·일본 등이 아직까지는 달러의 급격한 하락을 원치 않고 유사시에 대비한 방어용으로 당분간 달러를 보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전세계적인 ‘셀 USA’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문제는 미국의 재정 적자가 향후에도 계속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2005~2014 회계연도 기간의 예상 누적 적자가 2조290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 경제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경상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간 소비의 조정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현재 개인 저축률이 지난 1, 2분기 각각 1%와 1.2%로 사상 최저인 1%대에 머물고 있다. 저축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를 많이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동안의 초저금리에 따른 부동산 호황과 부시 행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미국 가계가 풍부한 유동성을 누렸던 것이다. 미국의 민간 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 수준이다. 미국의 경상 및 재정 적자는 이처럼 높은 민간 소비 수준과 감세 정책에서 비롯한다. 문제는 민간 소비의 위축이 급격한 경기하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은 이중고에 시달릴 것
미국의 소비자 신뢰지수는 3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지속적인 호황을 누린 주택 경기가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과 더불어 붕괴된다면 미국의 소비 경기는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는 현재 세계 경제의 3분의 2가 주택 가격의 거품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들 역시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GDP 대비 기업 보유현금 비율(11%)은 195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자산가격 거품, 고용 부진, 재정 및 경상 적자 등 미국 경제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어 달러화는 평가절하 압력을 계속 받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달러화 가치가 추가적으로 하락할 경우 유럽과 일본 등이 크게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달러화 추가 하락을 둘러싸고 향후 힘겨루기가 진행될 것이다. 고유가와 유로화 강세 등으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내년 EU의 경제성장률을 당초 예상했던 2.3%에서 2%로 낮췄다. 특히 금리 인상 등 중국의 경기조절 정책도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대선 이후 원화가치의 평가절상 등 통상 압력이 증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내 수출 기업들은 이중고에 시달릴 전망이다. 한국의 내수 회복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양대 교역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마저 둔화된다면 한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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