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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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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호텔, 너는 찍혔다

등록 2004-10-22 00:00 수정 2020-05-03 04:23

불황 깊어지면서 은행 여신중점관리대상으로… 대출 퍼주던 과거와 정반대로 연체율과의 전쟁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러브호텔은 불황을 모르는 업종으로 불린다. 그러나 ‘사랑산업’이라는 러브호텔도 불패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장사해서 번 돈으로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운 모텔이 늘고, 이에 따라 돈을 빌려준 은행권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것이다.

‘2차전문’모텔들 성매매 처벌로 된서리

북한강을 끼고 러브호텔이 즐비하게 들어선 경기도 양평만 봐도 러브호텔 업종의 불황이 그대로 감지된다. 양평에 있는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사랑산업도 소득과 여유가 있어야 번창하는 것인데 지금은 장사가 잘 안 돼 대출금 이자를 연체하는 업소가 늘어나고 있다”며 “여신 담당자들이 대출금 상환 능력을 치밀하게 따져보는 등 여신 중점관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담보만 있으면 러브호텔에 쉽게 대출해줬지만 지금은 대출기한 연장은 거의 막혔다”며 “비록 이자를 꼬박꼬박 잘 내온 업소라도 상환 연장을 요청하면 대출금의 일부를 갚아야만 승인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은행들은 러브호텔을 여신특별관리업종으로 분류하고 신규 여신은 아예 묶다시피 하고 있다. 양평의 또 다른 금융기관 여신담당자는 “이쪽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전체 여신 가운데 러브호텔 대출 비중이 더 큰 편”이라며 “지금은 5억원 이상 러브호텔 대출은 올 스톱이고, 대환대출(빚을 못 갚은 고객한테 대출을 새로 일으켜주고 기존 대출금을 상환받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러브호텔 대출금은 대부분 10억원짜리 이하인데, 최근 들어 장사가 안 돼 이자를 연체하다가 한참 뒤에 갚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러브호텔쪽 업황이 나빠서 그런지 이쪽 사업에 새로 진출하려는 사람도 없고, 따라서 대출받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모텔업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양평뿐 아니라 경기도 가평 등 유원지 주변의 러브호텔마다 불황을 견디지 못해 곧 문을 닫아야 할 처지라고 한다. 특히 양평·파주·양주·장흥 등 러브호텔이 우후죽순 들어섰던 지역의 업소마다 금융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출이 뚝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모텔 중개업자인 오아무개씨는 “2년 전 호황기 때는 젊은 연인들이 러브호텔에 찾아와 카드로 긁었지만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신용카드 사용액이 축소되면서 러브호텔이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충청권 개발로 아파트값이 급등한 대전과 공주 지역의 경우 주택시장과 대조적으로 러브호텔 시장은 깊은 불황에 빠져 있다. 오씨는 “대전·공주 지역은 내수 부진 탓도 있지만, 그동안 인구 규모에 견줘볼 때 러브호텔 허가가 지나치게 많이 이뤄져 신축 모텔이 난립했는데 결국 공급 과잉에 따라 영업 매출이 크게 줄었다”며 “출장마사지 영업을 많이 해온 러브호텔일수록 성매매금지법 시행으로 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유흥업계의 속칭 ‘2차’(음주 뒤 성매매)가 사라지게 되면서 눈 위에 서리까지 내린 셈이다. 오씨는 “서울 시내를 보면 신촌이나 송파구 신천동 등 주로 젊은 연인들을 상대로 영업해온 지역의 모텔이야 큰 타격이 없겠지만 신림동 지역 모텔 등 ‘2차’를 부업으로 많이 해온 모텔은 장사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브호텔 등 숙박업소에 대한 은행권의 대출액은 얼마나 될까? 국회 전병헌 의원(열린우리당)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에 따르면, 전국 18개 시중은행(우리은행 제외)이 2002년부터 지난 6월까지 숙박업소(호텔·모텔·여관 업종)에 대출한 금액은 총 8조2755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상환받은 금액은 4조2358억원, 대출잔액은 4조397억원에 달한다. 시중은행에 비해 규모가 훨씬 적은 상호저축은행도 경쟁적으로 러브호텔 대출에 나섰다.

숙박업 대출액 총 4조397억

한솔저축은행은 2002년 115억원, 2003년 153억원에 이어 올해도 6월까지 53억원을 신규 대출해줬다. 부산상호저축은행도 2002년 57억원, 2003년 75억원에 이어 올해 6월까지 77억원을 새로 대출해줬다. 한국은행 은행국 김인구 조사역은 “주로 상호저축은행들이 러브호텔에 대한 대출 드라이브를 걸어 수익을 내려고 했다”며 “일부 상호저축은행들은 러브호텔이 장사가 잘된다고 보고 프로젝트 파이낸싱 형태로 러브호텔에 투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러브호텔을 호황업종으로 분류해 무분별하게 대출해줬는데 이제는 거꾸로 연체율과의 전쟁에 나서야 할 판이 된 셈이다. 지난 5월 말 기준 러브호텔 대출 연체율은 소호(개인사업자) 대출 평균 연체율(3.3%)보다 높은 5∼6%대로 추정되고 있다.

러브호텔이 은행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등장한 것은 지난 1998년부터다. 그 전까지만 해도 여관·모텔 등 숙박업체는 여신금지업종에 속했다. 그러나 98년부터 여신금지업종에서 풀리면서 은행들은 돈이 된다는 이유로 앞다퉈 러브호텔 대출에 나섰다. 실제로 러브호텔은 사업 경험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몇년 안에 투자금액을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업종이었고, 따라서 은행들은 빌려준 돈을 떼일 염려가 없다고 믿었다. 대출해주겠다는 은행들이 줄을 서면서 담보인정비율이 감정가의 80%까지 이르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모텔 중개업자인 오씨는 “모텔을 네다섯개씩 거느린 기업형 사업가도 많았는데 이들은 러브호텔 장사가 잘되면서 모텔 가격도 치솟아 수십억원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며 “모텔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지난해까지 은행 지점장들까지 직접 나서서 경쟁적으로 대출을 해줄 정도였다”고 말했다.

러브호텔, 공급과잉으로 포화상태

게다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숙박업소 설립을 유도하면서 러브호텔 개업도 크게 늘었다. 당시 은행들은 저마다 전담팀을 꾸려 러브호텔·룸살롱까지 ‘소호’(개인사업자) 딱지를 붙여 대출세일에 들어갔다. 한국은행 은행분석팀 김용선 과장은 “대기업의 여신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은행들이 마땅히 돈을 굴릴 데가 없어지자 망할 것 같지 않고 리스크도 적다고 보고 모텔·숙박업쪽 대출에 너도 나도 나섰다”고 말했다. 대출이 쉬워지자 러브호텔 사업자들도 돈을 더 빌려 사업을 확장했고, 결국 러브호텔 시장은 과잉 공급에 따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불황에 끄떡없을 것 같던 러브호텔도 올 들어 내수 부진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 하나둘씩 대출금을 연체하기 시작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숙박 및 음식점업의 (생산)활동지수 증가율은 지난해 2분기(-3.1%), 3분기(-1.0%), 11월(-3.8%)에 이어 올 1분기(-3.8%), 2분기(-0.9%)까지 계속 추락하고 있다. 펜션·찜질방 등 다른 업종이 우후죽순 등장해 러브호텔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도 러브호텔의 불황을 부른 한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 안종식 경영지도팀장은 “러브호텔 대출은 대부분 건물이라는 담보물이 있긴 하지만, 아파트와 달리 러브호텔은 손님이 오고 장사가 될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곧 문 닫을 러브호텔은 땅값만 빼고 거의 남는 게 없다”며 “연체율도 올라가고 동시에 부동산 가격마저 떨어지는 상황이 닥친다면 대출금 회수에 비상이 걸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브호텔 주차장 자동차를 세어보면…

러브호텔 대출금이 부실채권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은행들은 상환능력을 사전에 파악하는 등 정보수집 작업에 들어갔다. 러브호텔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 수를 세어보는 건 가장 흔한 방법이다. 농협 양평군지부쪽은 “러브호텔은 재무제표 같은 자료도 따로 없고 업주가 내놓는 매출장부도 믿기 어렵다”며 “그래서 업주를 직접 면담해 장사가 잘되는지 들어보기도 하고, 대낮에 출장 나가서 주차장에 차가 몇대나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브호텔 주변의 세탁소도 중요한 정보원이다. 침대 시트를 갈기 위해 세탁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를 살펴보면 특정 러브호텔의 영업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자체 세탁시설을 갖춘 러브호텔이 많아져 이것도 쉽지 않다. 러브호텔에서 말리는 수건의 개수를 세어보는 것도 여신 관리의 노하우 가운데 하나다. 고객 수와 걸려 있는 수건의 수가 비례하기 때문이다. 러브호텔을 방문해 세무조사하듯이 객실 회전율을 따져보고 손님이 없어 객실에 곰팡이가 슬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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