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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사의 상생

등록 2004-07-29 00:00 수정 2020-05-03 04:23

[지구촌경제]

고용안정과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하는 일본에서 배워야 할 것들

▣ 왕윤종/ SK경영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근로계약의 불평등성을 해결하려는 단결권은 헌법상의 기본권이다. 임금과 근로조건을 둘러싼 단체교섭이 실패할 경우 노조는 파업이라는 단체행동을 통해 최종적인 합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임금과 근로조건은 어느 한쪽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노사관계는 합의를 도출해내기 위한 과정에서 일견 대립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기업이 문을 닫지 않는 한 어떤 형태로든 합의를 이루게 마련이다. 노사관계가 투쟁이 아니라 협력과 상생을 모색하려면 노사 양쪽의 신뢰가 구축돼야 한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협력적 노사관계가 어떻게 형성돼왔는지 살펴보자.

경영에 대해 서로 책임지는 관계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춘투(春鬪)가 사라졌다. 세계 2위의 자동차 생산업체인 도요타에서 올해 초 노조는 기본급 동결과 보너스 2만엔 삭감안을 제시했다. 대신 정기승급분(조합원 평균 6500엔)만을 회사쪽에 요구했다. 2003년 무려 1조엔의 순이익을 기록한 기업에서 노조의 이와 같은 파격적 제안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상상하기 힘든 사건임에 틀림없다. 회사쪽이 이러한 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물론이다. 도이 하지메 노조위원장은 아직 일본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가지 못했고,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러한 선택을 했다고 설명했다.

1차 오일쇼크 당시만 해도 일본의 임금상승률은 연 30%대에 육박했다. 이후 1980년대 거품경제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1990년대 초 거품경제의 붕괴 이후 10년의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감량경영과 능력주의 강화로 종신고용의 관행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산별노조 대신 기업별 노조를 정착시킨 일본의 노조는 기업과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되었다. 도요타뿐만 아니라 히타치, 소니 등 대다수 일본 기업에서 노사는 경영에 대해 서로 책임을 지는 일체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임금상승률은 물가상승률과 사실상 연동되어 있다. 그 결과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기간 동안 노조는 임금 삭감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대기업의 노동자들은 경기 침체 기간 동안 거의 대부분 고용 불안정을 경험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의 노동시장은 이중 구조화되고 있다. 고용안정을 선호하는 관행으로 인해 대기업은 신규 채용을 사실상 중단하고 있다. 그 결과 청년층(15~29살)의 실업률이 중년층(30~59살)의 실업률보다 매우 높다. 청년층의 상당 부분이 임시직과 파견근로자 같은 비정규직으로 고용되고 있다. 최근 일본의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전체 근로자의 30% 수준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파트타임 성격의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즉, 일본의 경우 비정규직은 우리에 비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지 않은데, 이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그리 차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 증가 현상을 탈산업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다양한 고용 형태의 하나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일본후생노동성의 한 조사에 따르면 정규직을 희망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8.5%에 불과하다.

일자리 나누기 합의 성공

이런 일본의 상생적 노사관계를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2002년 12월 일본노총과 일본경단련,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주요 합의 내용은 “정부는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고용안정에 최대한 기여한다. 기업은 경쟁력을 높이고 구조조정, 업무축소 등을 이유로 한 노동자 해고를 최대한 억제한다. 노조는 무파업을 선언하며, 노동자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이런 합의가 선언적 의미 이상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합의된 것을 중요시 하는 일본인들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은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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