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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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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강산 ‘땅 따먹기’ 열풍!

등록 2004-07-16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아파트 물 빠지자 땅 투기에 돈 몰려… 신도시 등 개발 바람 타고 전국이 들썩들썩 </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이제 집은 없어도 땅은 사둬야 한다? 신행정수도 후보지가 연기·공주로 사실상 확정된 뒤 충청권 땅값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땅 매입 열풍은 태안·당진·홍성·예산 등 주변 지역으로 계속 번지고 있고, 사실상 전 국토에 걸쳐 땅값이 꿈틀거리고 있다. 부동산투자 자문업체인 현도컨설팅 임달호 사장은 “말이 안 될 정도로 땅값이 몇달 새 2∼3배 오른 곳도 많다”며 “90년대 초반 이후 10년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장기간 침체 국면을 보였던 토지 시장이 최근 한꺼번에 오르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충청권 전역이 다 움직이고, 수도권도 신도시 개발에 끼지 않은 지역이 없어서 땅 투자 바람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개별공시지가가 오른 곳은 전국 표본필지(2772만필지) 중 90.6%에 이른다. 개별공시지가 상승률은 평균 18.58%로, 지난해(9.2%)보다 두배가량 높다. 특히 지난해에는 값이 오른 땅이 주로 대도시에 국한됐지만 올해는 대도시(7대 도시 80.3%)보다 기타 도시나 농촌 지역(92.1%)의 상승 필지 비율이 더 높았다. 지난해에 비해 충남 태안의 개별공시지가는 28.4%, 경기도 오산시는 46.81%, 김포시는 43.93%, 성남시는 39.48%가 올랐다. 개별공시지가 상승은 정부가 실거래 가격과 비교한 개별공시지가 현실화율을 높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종 개발 바람을 타면서 실제로 땅값이 폭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투기 지역만 찍어서 대처

그러나 정부는 땅값 오름세를 신행정수도나 신도시 개발 등 호재가 있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재정경제부 부동산안정대책반 관계자는 “지난해 10·29 부동산안정 대책 이후 투기 바람이 아파트에서 땅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고 지난 3월 토지시장 안정 종합대책을 내놓았다”며 “지금은 충청권과 수도권을 빼면 토지 시장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평균 땅값은 2002년 8.98%로 크게 오른 뒤 2003년(3.43%), 올 1분기(1.36%)로 둔화되고 있다. 땅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고 신도시 예정지·신행정수도 후보지·고속철 역세권 등 일부 지역에서만 오르고 있기 때문에 전국적인 토지투기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투기 확산 조짐을 보이는 지역만 찍어서 대처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그러나 토지 시장에는, 이미 땅값이 크게 올랐지만 “한 단계 더 뛸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해 있다. “역시 땅만한 게 없다”거나 “세상에 믿을 만한 것은 역시 땅밖에 없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땅을 보러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미 땅값이 껑충 뛰었기 때문에 끝물에 달했다는 분석보다는 땅값 상승이 지속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도컨설팅 임 사장은 “정부가 발표하는 공시지가 상승률은 믿을 수 없다”며 “훨씬 더 오른 곳도 있고, 정부 발표대로 특정 지역만 두세배 올랐다면 다른 지역은 내리거나 그대로여야 하는데 김포·홍천·강화 등 다른 지역도 땅값이 큰 폭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특히 아파트는 한물갔다는 분위기가 퍼지는 과정에서 신행정수도·신도시개발·뉴타운개발·기업도시·경제특구 등 대형 개발 프로젝트가 잇따르면서 전 국토가 개발 바람을 타고 있다. 서민층 주거 안정을 위한 부동산 대책으로 주택시장이 침체되자,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오르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개발 지역 보상금 받으면 주변 땅 투기

투자 수요가 주택시장 규제 강화를 피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토지에서 물꼬를 찾은 것인데, 여기에다 각종 개발 바람까지 타면서 돈이 자꾸만 토지로 몰리는 양상이다. 그래서 지난 3월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전매 제한(임야 1년· 농지 6개월) 등을 뼈대로 한 토지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음에도 “땅 투자로 한몫 잡았다”거나 “땅으로 재미본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 퍼지면서 투자 열기는 여전히 달아오르고 있다.

신한은행 고준석 부동산 프라이빗뱅킹(PB)팀장은 “부동산은 정가가 따로 없다. 전국에 걸쳐 각종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땅값이 얼마나 더 오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피부로 느끼는, 땅으로 올린 수익률은 몇배가 된다”고 말했다. 주식 시장은 큰손이 한번 훑고 지나간 뒤 개미들이 출현할 때쯤이면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하지만 토지 시장은 다르다. 고 팀장은 “개발 예정지 또는 주요 요지의 땅은 선취매를 노린 외지인들이 이미 다 장악했다”며 “지금은 뒤이어 개미들이 뛰어드는 장세인데, 개발 지역에서 토지를 수용당한 사람들이 보상금을 갖고 대체토지를 사려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주변으로 땅값 상승세가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에 따른 막대한 규모의 토지보상비가 토지 시장을 뒤흔드는 돈줄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이미 땅 거래 열풍이 세게 불고 지나간 곳이라도 2차 상승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판교 신도시(토지보상비 2조4600억원 추정)의 경우 보상금을 받은 외지인들이 경기도 화성 동탄·평택·양평 등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뿐 아니라 충남 당진·태안 등 서해안 일대까지 투자 무대를 넓히고 있다. 대체토지를 사려는 보상금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투기 지역을 옮겨다님에 따라 전국으로 땅 매입 열풍이 확산되는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을 잘 아는 발빠른 투자자들은 보상금의 영향으로 인근 지역 땅값이 덩달아 뛸 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땅을 사두고 있다.

주5일제로 조용한 시골까지…

충남 아산 신도시 역시 최근 토지 보상이 시작되면서 예산군 등 주변 지역 토지 시장이 들썩거리고 있다. 예산군 부동산경제 담당자는 “올해 예산군 내 땅값이 지난해보다 16.1% 올랐는데 앞으로 더 오를 것같다”며 “밭, 과수원 등은 배 이상 오르고 지난 2000년에 평당 5만원이던 것이 지금은 15만원까지 오른 곳도 있다”고 말했다. 아산 신도시는 현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지만 인접한 예산군은 아직 토지투기지역도 토지거래허가구역도 아니다. 예산군 지적담당자는 “아산신도시 개발이 단계적으로 이뤄지면서 수조원이 풀릴 것이고, 이에 따라 대체토지를 구하려는 수요가 예산군으로 몰려들면서 땅값이 더 뛸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쫙 퍼져 있다”며 “그래서 가격만 계속 치솟고 있는데 여기뿐만 아니라 당진, 홍성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부가 나중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봤자 이미 땅값은 오를 대로 오른 뒤라서 결국 뒷북에 그치고 말 공산이 크다.

충남 태안도 땅값 오름세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지역이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뒤 태안 땅값은 올해 평균 28.4% 올랐다. 행정수도 이전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드는 지역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자 투기꾼들이 허가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서해안 지역의 땅을 표적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땅값 상승세는 개발 지역뿐 아니라 풍광이 빼어나고 조용한 시골까지 불어닥치고 있다. 전원주택, 별장, 펜션 등 ‘재료’가 있다기보다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땅도 주5일 근무제와 농지 소유 및 거래 자유화 바람을 타면서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토지정보업체인 오케이시골 김경래 사장은 “평창 흥정계곡과 금당계곡 주변 땅값이 몇년 전 평당 6만∼7만원에서 지금은 30만원대까지 올랐다”며 “전원 주말주택 흐름이 경기도 양평·광주·가평 등지에서 이제는 홍천·횡성·인제까지 확산되면서 땅값이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시골이니까 저런 땅은 싸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가서 물어보면 평당 10만원선 이상까지 올랐다는 것이다.

과거에 토지 투자는 농지를 사둔 뒤 개발을 노리고 ‘묻어두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전 국토가 개발 바람에 휩싸이면서 ‘묻지마 투자’로 바뀌고 있다. 또 그동안 거들떠보지 않던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까지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고, 개발 소문을 타지 않는 지역까지 선취매 투자가 일어나고 있는 양상이다.

양도소득세 주택에 비해 낮아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강력한 중과세 조처로 양도차익 대부분이 국가에 환수되자 투기꾼들이 토지쪽으로 관심을 돌린 것도 땅값 오름세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3년의 경우 공시지가 대비 과표 적용률은 36.1%에 불과한데, 그나마 공시지가와 실거래 가격의 차이가 워낙 커서 땅에 대한 양도세는 아주 낮은 편이다. 현도컨설팅 임 사장은 “등기부등본을 떼보고, 어떤 곳이든 가서 땅값을 물어보면 공시지가가 실제 거래가격에 비해 3분의 1밖에 안 되거나 10%밖에 안 되는 곳도 숱하다”며 “실제 땅값은 매매 당사자와 중개업소만 안다”고 말했다. 토지투기지역(경기도 화성시·충남 공주시 등 31곳) 외에는 양도세를 실거래가격이 아닌 공시지가대로 내기 때문에 토지의 양도소득세는 주택에 비해 훨씬 낮다.

특히 주택은 상품이 표준화돼 있고 투기 수요가 아파트에 국한돼 있기 때문에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중과세가 가능하다. 하지만 땅은 1천평 또는 2천평 이상의 보유자에게 일률적으로 세금을 무겁게 물리기도 어렵고, 결국 당국의 투기 단속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또 “집값이 오르면 서민층에게 직접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땅은 돈 있는 사람이 사든 말든 서민층에게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이 덜하기 때문에 정부 대책도 소극적일 것”이라는 시장의 믿음도 땅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토지 시장은 정부가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그래서 땅값 동향을 여기저기서 들먹이지 않는 게 토지 시장 과열을 해소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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