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경제]
장기 불황에서 탈출하는 일본… 지난 10년의 고통은 무엇 때문이었나
왕윤종/ SK 경영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
6월22일 일본을 방문한 국제통화기금(IMF)의 라토 총재는 일본 경제가 마침내 디플레이션의 최종 국면에 돌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은행이 최후의 1마일을 향해 노력 중”이라고 언급하고 현재의 제로금리 정책이 디플레이션의 완전 종식을 위해 적절한 것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70% 수준에 이르고 있어 중기적으로 재정 건전화를 위한 정책 마련이 매우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거시경제 정책의 실패

최근 고이즈미 일본 총리도 그동안 부실채권 정리와 재정·규제·세제 개혁 등 일련의 구조개혁이 착실히 추진돼온 결과 일본이 장기 불황에서 서서히 탈출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 경제가 완전한 디플레이션 해소와 새로운 성장 기반 강화를 위해서는 금융완화 정책의 지속과 적극적인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 경제의 현 상황에 대한 평가에서 국제기구와 일본 정부가 대체로 비슷한 입장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제는 2003년도 실질 GDP 성장률이 3년 만에 3%대로 상승했고, 주요 은행의 부실채권 잔액이 2년 동안 13조엔 이상 감소했으며, 점차 소비심리가 개선되는 가운데 실업률도 감소 추세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의 선순환 성장 기조가 서서히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1990년대 일본은 어떤 이유로 장기 침체에 빠졌던 것인가? 세 부류의 학자들이 각기 다양한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첫째 부류는 일본의 경제위기를 거시경제 정책의 실패에서 찾고 있다. 이는 1980년대 일본 정부의 일관성 없는 경제 정책이 거품을 조장했고, 거품 붕괴 이후에도 비효율적인 재정확대 정책과 유동성 함정에 빠진 통화 정책이 일본의 디플레이션 장기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두 번째 부류는 일본경제의 장기 침체가 단순히 거시적 현상이 아니라 낮은 생산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이 근본적으로 재생되지 않고서는 현재의 난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에 직면한 일본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설비를 이전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생산성이 낮은 비교역재 부문, 특히 서비스·건설·농업 부문이 일본 경제를 지배하다 보니 일본 경제는 활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각은 일본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경제의 생동성이 사라지고 생산성의 저하를 가져오게 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개혁안과 신산업 전략 발표
세 번째 부류는 일본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경직적이어서 정책 시행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종합적인 정책 대응이 마련되지 못하고 매우 단편적인 정책들이 일관성 없이 추진되다 보니 정책이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각 행정부처의 정책 수행 의지가 매우 낮아 관료제의 폐해가 드러나게 된 것으로 평가한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에 대한 진단이 다양하지만 2001년 4월 출범한 고이즈미 정부가 마침내 3년 만에 장기 불황 탈출을 선언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일본 정부는 6월3일 향후 2년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지방 재정의 자립, 사회보장제도의 전면 재검토, 우정사업의 민영화 등을 뼈대로 하는 개혁안과 신산업 창조 전략을 발표했다. 특히 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점 시책으로 민간 기업의 자주성과 창의성을 창출하고 연료전지, 정보통신산업 등 신성장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규제개혁, 연구개발, 인재육성, 환경정비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방침에 대해 구체적인 시기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성을 결여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지난 10년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겠다는 의지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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