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기발한 상상력과 장난기 넘치는 탄츠테아터 … 충격적이기까지 한 독일 표현주의의 진수 </font>
장은수/ 한국외대 독어과 교수 · 연극평론가
여자도 남자처럼 서서 일을 볼 수는 없을까? 옆구리로 쉬하는 건 왜 안 되지? 엉덩이는 왜 심장이라 하지 않고 엉덩이라 할까? 겨드랑이는 왜 가슴이라 할 수 없지? 발가락이 앞을 향하지 않고 뒤를 향해 있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걸을까?
어린애 머릿속처럼 호기심 많은 질문으로 가득 찬 무대, 기발한 상상력과 천진스런 장난기가 넘쳐나는 장면을 들고 독일 ‘사샤 발츠와 친구들’(Sasha Waltz & Guests)이 한국을 방문한다. 독일 탄츠테아터의 새로운 주역이요, 21세기식 독일 표현주의의 진수라는 찬사를 받은 이들의 이번 공연이 초점을 맞춘 것은 인간의 육체. 4월29일부터 5월2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게 될 (Bodies·원제 Korper)는 ‘우리 몸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화두로 삼고 있다.
탄츠테아터를 아십니까
탄츠테아터는 무용극에 드라마의 성격을 강화한 지극히 독일적 성향의 무대로서 이미 여러 차례 내한 공연한 바 있는 피나 바우슈(Pina Bausch) 덕에 우리에게도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장르이다. 그 후속 세대인 사샤 발츠가 등장하면서 현대적 면모가 더욱 강화된 무대는 언어에서 움직임과 이미지쪽으로 공연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넘어갔음을 실감케 한다.
는 발츠가 베를린의 연극 1번지 샤우뷔네로 입성하면서 던진 신세대 폭탄시리즈의 첫 작품. 그 뒤를 이어 섹스를 화두로 내건 (S)와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를 보이는 몸으로 그려낸 (noBody)로 ‘몸의 3부작’을 완성하면서 발츠는 언어극 일변도이던 샤우뷔네를 현대 신체극의 진원지로 탈바꿈시켰다. 발츠의 무대는 1997년 서울국제연극제에서 선보인 보다 훨씬 더 열린 내러티브와 단편적이고 역동적인 장면들을 쉴 새 없이 쏟아붓는다.
도랑에서 개구리를 잡아 구석구석 살펴보고 잡아당기다 패대기까지 서슴지 않는 아이들처럼 우리의 몸을 가감 없이 탐색하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원초적 움직임의 폭력성과 과격성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금속음을 주조로 한 섬뜩한 음향과 한스 페터 쿤(H. P. Kuhn)의 미니멀 음악 역시 때로는 초현실주의적 몽환으로, 때로는 장난기 어린 유희와 유머로 태고와 현대가 만나는 무대의 개성을 덧칠한다.
무용수의 손이 지게차의 집게처럼 상대 무용수의 살가죽을 집어올려 몸뚱어리를 마치 짐짝이나 공사장의 벽돌처럼 이리저리 옮겨놓는가 하면, 팔다리와 몸통이 토막토막 해부되어 해부학 표본실 같은 유리관 속을 부유하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해체된 몸의 전시장은 지극히 열려 있어 많은 해석과 이야기가 가능하지만 독일 역사를 생각할 때 나치 수용소의 유대인 대학살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연상의 힘이다.
무대는 몸의 역사를 통해 과거의 어두운 기억과 인간마저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한 현재를 교차적 시선으로 조명한다. 텅 빈 무대 한가운데 높이 솟은 검은 벽은 때로는 몸에 대한 단상을 긁적이는 낙서판이 되고, 때로는 여러 사람이 키를 겨루는 막대자가, 때로는 스키어가 낙하하는 설산의 슬로프가, 때로는 장기 판매 시장이 되고, 때로는 성형시술소가 되며 지칠 줄 모르는 변신을 거듭한다.
갖가지 이미지들을 쏟아내며 에피소드처럼 나열되는 장면들 중에서도 가장 시니컬한 결정타는 두 무용수가 몸의 각 부위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놓고 장기 판매 가격과 성형수술비 가격을 말해주는 장면이다. 심장값이 5만2천유로, 허파값은 7만5천유로에 매매되고 유방 성형수술비 7만7천유로, 입술 성형 5천유로에 겨드랑이털 제거비 1500유로까지 몸의 보수공사와 리모델링에 투자한 액수를 따져보는 두 여인의 모습은 물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라는 중병을 앓고 있는 이 땅의 공주병, 왕자병 환자들을 향해 따끔한 침 한방을 쏜다.
젠더의 해체로 이어지는 몸의 유희
몸을 해체하고 변이시키며 벌이는 유희는 곧 젠더의 해체와 전환으로 이어진다. 남녀 두 사람이(사실은 둘 다 남자) 옷 한벌을 함께 입고 한몸이 되어 때로는 억센 다리를 가진 남자로, 때로는 치마를 입은 여자로 변신하면서 앞뒤로 구르고 위아래로 뒤집어진다. 민첩하고 노련하게 고난도 기교를 보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인도의 부처상처럼 한몸에 달린 10개의 팔이 접시 돌리기를 하는 장면이나 천장에서 스키복 차림으로 90도 하강하는 동작에서 가히 서커스의 경지를 보인다.
인간 몸의 상품화를 부추기는 성형 풍조, 유전자 조작과 복제, 고정적 성차에 대한 비판이 몸의 실체와 환상 사이를 오가는 변화무쌍한 퍼포먼스 속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운데 우리 몸은 더 이상 고정불변의 완성체이기를 거부하고, 끝없는 해체와 재구성의 변환을 반복한다.
헐벗은 공사장처럼 페인트 자국 하나 없는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노출된 무대공간에서 인간의 몸은 어느새 다양한 건축자재로 탈바꿈하고, 한가운데 우뚝 서 있던 나무벽과 어우러져 다양한 형태의 벽을, 방을, 테라스를 만들어낸다. 반원형 벽을 배경으로 13명의 벌거벗은 몸들이 벽돌처럼 운반되고 각목처럼 포개지면서 한채의 건물이 완성되고 나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그 위에 다시 다른 건물을 짓고 허물면서 육체는 만나고 헤어지기를 거듭한다.
발츠의 무대는 몸의 만남인 동시에 다양한 문화의 만남이기도 하다. 그것은 독일을 비롯해 유럽 각지와 라틴아메리카, 일본, 중국, 홍콩 등지에서 온 13명의 다국적 무용수들이 자유롭게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는 무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공연장에 어린 아들 손을 잡고 나타나 드라마투르그(대본 작업 등을 주도하는 스태프)이자 남편인 오토 잔디히와 단원들과 함께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공동 작업하는 사샤 발츠를 관객들은 그냥 친구처럼 ‘사샤’라고 부른다. 그러기에 그의 무대는 솔로넘버보다는 ‘사샤와 친구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나는 데 훨씬 더 큰 비중이 실려 있다.
의 무대는 말한다. 몸의 존재는 결국 만남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벌거벗은 공간과 벌거벗은 몸이 만나 이미지를 만들고, 몸과 몸이 만나 사랑을 이루고, 무대와 관객이 만나 소통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내 몸은 나를 만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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