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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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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적의 훙커부대다”

등록 2004-07-22 00:00 수정 2020-05-03 04:23

미국 · 일본 · 대만 · 인도네시아의 정부 사이트를 뒤흔든 중국의 해커전사들은 누구인가

▣ 베이징=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2001년 4월30일 저녁 7시, 중국 ‘훙커(紅客·redhacker)연맹’은 중국 내 모든 ‘붉은 해커’들에게 전시 총동원령을 내렸다. 공격 목표는 미국의 정부 인터넷 사이트. 사흘 전인 4월26일, 훙커연맹은 미국과 일전을 앞두고 긴급 성명까지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중국의 ‘붉은 해커’들은 전쟁의 공격 목표와 원칙을 강조하면서, 패권주의 정부의 악행과 그 악행이 미국 인민들에게 가져다주는 해악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붉은 해커들은 이번 중-미간 전쟁을 ‘5·1절 국방 인터넷 전쟁’이라고 이름붙였다. 그 뒤 중국의 ‘붉은 해커’들과 미국의 ‘검은 해커’(黑客·해커의 중국식 표기)들 사이에 약 일주일간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중국의 붉은 해커들에게 이번 전쟁은 ‘제6차 국방 인터넷 전쟁’이었다. 이들은 이전에도 이미 다섯 차례에 걸쳐 국방 사이버 전쟁을 치른 바 있다.

대사관 오폭 계기로 해커들의 통일전선!

2001년 4월1일, 남중국해에서 미군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가 충돌해 중국 전투기 조종사 왕웨이가 사망하면서 양국간 치열한 정치·외교적 설전이 벌어졌다. 특히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반미 분위기가 고조됐다. 이 와중에 미국의 해커 집단인 포이즌 박스(Poizon Box)가 정찰기 충돌사건 이후 약 한달여 동안 수백개의 중국 인터넷 사이트를 무차별 공격하자, 중국의 인터넷 ‘붉은 전사’들이 드디어 대미 항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2001년 4월에서 5월 초 벌어진 중-미간 사이버 대전은 사실상 중국과 미국 정부를 대신한 화염 없는 전쟁이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의 붉은 악마들이 전세계에 ‘붉은’ 명성을 떨친 것처럼 중국의 붉은 해커들도 이 중-미간 사이버 대전을 계기로 전세계 해커들에게 붉은 악명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해커(Hacker)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용 컴퓨터를 이용해 남의 컴퓨터 전산망에 침입해 헤살을 놓는 사람’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이들을 ‘헤이커’(黑客)라고 부른다. 굳이 번역하면 ‘밤손님 또는 검은 손님’의 뜻이다. 즉, 남보다 더 뛰어난 컴퓨터 기술과 지식을 갖고 가끔 기술적 장난을 치는 컴퓨터 고수를 지칭한다. 중국에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헤이커들이 밤의 무법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9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을 자극하는 몇 가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헤이커들은 애국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붉은 인터넷 전사’들로 다시 태어났다. 이들이 바로 지난 2001년 중-미간 사이버 대전을 이끈 훙커들이다.

중국에서 훙커는 1998년 인도네시아 폭동 사태에서 배태됐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폭도들에 의해 수많은 화교들이 폭행과 살해, 강간 등을 당하는 참극이 발생하자 중국 내 주요 헤이커들이 ‘중국 헤이커 긴급회의중심’을 결성해 인도네시아 정부 기관 주요 사이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량의 스팸메일을 ‘투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당시 중국 헤이커들의 인도네시아 정부 사이트 공격은 중국 사이버 전쟁사에서 ‘제1차 국방 인터넷 전쟁’으로 기록됐다. 중국 사이버 전쟁사에서는 당시를 중국 내 헤이커들이 처음으로 단결된 조직을 바탕으로 애국주의 정신을 발휘한 전쟁이라고 소개한다.

대만 국방성 사이트에서 기밀을 빼내다

중국 훙커들은 1999년 5월, 이른바 ‘제2차 국방 인터넷 전쟁’ 기간 중 탄생했다. 당시 미국이 유고연방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을 일으키자 중국 내 헤이커들이 다시 공동전선을 만들어 미국 내 주요 기관 사이트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네트즌들 사이에서도 미국과 한판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인터넷 민족주의가 절정해 달했던 당시 ‘오폭 사건’은 중국 헤이커들의 운명을 바꿔놓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오폭 사건 발생 이튿날 결성된 중국 훙커 사이트는 ‘중국 훙커의 조국통일 전선’이라고 명명됐다. 이들은 애국주의 훙커 정신을 핵심으로 하여 마오쩌둥이 청년 시절에 한 “국가는 우리들의 국가이며 인민은 우리들의 인민이다. 우리가 외치지 않으면 누가 외치겠는가?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라는 말을 인용하며 본격적으로 중국 헤이커의 민족주의 시대를 열었다. 이들 훙커가 주축이 되어 이끈 ‘제2차 국방 인터넷 전쟁’에 대해 중국 사이버 전쟁사에서는 “이번 위대한 국방 헤이커 전쟁은 전면적인 승리를 획득했다”고 기록했다.

중국 훙커연맹이 결성된 뒤 치러진 ‘제3차 국방 인터넷 전쟁’은 1999년 7월 대만의 리덩후이가 양국론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리덩후이가 중국의 일국양제 정책에 전면적 도전을 하자 중국 훙커들이 다시 벌떼처럼 일어나 대만 정부 기관 사이트와 언론기관을 공격했다. 그 뒤 4차, 5차 전쟁은 일본 우익분자들의 난징대학살 사건 부인과 교과서 왜곡 등에 대항해 2000년과 2001년에 각기 치러졌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치러진 제6차 전쟁이 바로 2001년 정찰기 충돌 사건으로 빚어진 중-미간 사이버 대전이다. 그러나 이러한 총공격 형태인 전면전 외에도 중국 훙커들은 지난해만도 대만 독립파들에 대한 경고성 의미로 대만 내 사이트들을 집단 공격했는가 하면, 대만 국방성 사이트에 침입해 군사기밀을 빼내가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해커의 정의는 매우 많지만 우리 눈에 해커는 인터넷 기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훙커는 이들 해커와는 다르다. 훙커 정신 속에는 더욱더 많은 애국열정이 있다.”(lion, 중국 훙커연맹 창시자)

“중국 해커들은 강렬한 민족주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국가 정세가 만든 것이다. 즉, 중국 해커들이 정치적 색채가 농후한 경향을 보이는 것은 중국이 처해 있는 환경 때문이다. 중국 해커들은 가장 힘있는 민간 애국주의 정서의 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chinaeagle, 중국 매파연맹 창시자)

2001년 중-미간 사이버 대전이 끝난 뒤 중국의 각 언론매체에서 당시 전쟁의 참모장들 격인 양대 훙커 사이트 대표들과 진행한 대담에서 이들이 정의한 훙커와 헤이커의 차이다. 정치적이고 애국적인 사상이 중국 훙커들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중-미간 사이버 대전이 끝난 뒤 중국 내 언론매체들은 이들이야말로 21세기 사이버 전쟁을 이끌어갈 인터넷 전사들이라고 치켜세웠다. 중국 내에서 헤이커라고만 인식되던 컴퓨터 고수들에 대한 인식이 전환된 것도 바로 이 훙커의 등장 이후다. 컴퓨터 기술을 과시하는 애호가 수준이 아니라 이들을 국가 안보 시스템의 일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됐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훙커들의 6차 국방전쟁을 ‘구경’하면서 실제로 21세기 ‘사이버 전쟁계획안’을 마련했을 것이라는 추측들이 나왔다. 미국이 지난 2000년 이미 ‘사이버전 개념이 포함된 작전수행 계획’을 발표하고 이에 따라 대규모 해커부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오면서, 중국 역시 이에 맞서 대규모로 전자부대를 양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국과 주한미군 인터넷망에 침입해 주요 정보들을 훔쳐간 해커가 중국인임이 드러나면서 중국의 전문 해커부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3차대전은 인터넷 전쟁

전문가들은 1차 대전은 화학자들의 전쟁, 2차 대전은 물리학자들의 전쟁, 그리고 미래에 벌어질 3차 대전은 인터넷 전문가들의 전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1998년 3월 당시 장쩌민 국가주석(현 군가위 주석)도 “인류의 전쟁 형태에 지금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정보화는 아마도 미래 전쟁의 기본 특징이 될 것이다. 인류는 지금 정보화 전쟁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며 21세기의 새로운 전쟁인 사이버전을 예견한 바 있다. 애국주의 사상으로 똘똘 뭉친 중국 훙커들은 이런 점에서 가장 적합한 21세기 사이버 전사들인 셈이다. 믿기지 않다면 www.chinaeagle.org에 한번 들어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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