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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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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식품의 ‘미묘한’ 위험

등록 2008-07-04 00:00 수정 2020-05-03 04:25

변형 유전자가 알레르기 등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위해 판별이 까다로워…위해성 심사를 더 엄격히 해야

▣ 김명진 성공회대 강사·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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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전체를 들썩이게 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가려지긴 했지만, 지난 5월에는 그에 못지않은 중요성을 지닌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국내 전분당 업체들이 유전자변형(GM) 옥수수를 대량으로 수입한 것이다. 5만7천여t에 달하는 이번 수입 물량은 전분과 전분당으로 가공돼 빵, 과자, 빙과류 등의 재료로 사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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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저한 악영향은 아니지만

사실 GM 작물이 국내에 들어온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두부나 콩나물에 쓰이는 콩은 비GM 품종만 수입했지만, 가공 뒤에 변형 단백질이나 DNA가 남지 않는 간장과 식용유 등으로 가공될 콩이나 옥수수는 계속 GM 작물을 수입해 써왔다. 또한 비GM 식품이라고 해도 현행 표시제에 따르면 3% 미만의 GM 식품 성분 함유는 ‘비의도적 혼입치’라는 명목으로 용인해주기 때문에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동안 알게 모르게 GM 식품을 먹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GM 옥수수 수입은 관련 업체들이 국제 곡물가 상승을 이유로 GM 작물 수입을 공공연히 천명했고, 소비자·시민단체들의 불매운동 경고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 수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 GM 식품의 수입·유통과 관련해 중대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변화한 상황은 ‘GM 식품은 과연 사람이 먹어도 안전한가?’라는 해묵은 질문에 대한 관심을 새삼스레 높이고 있다. 이를 둘러싼 논란은 GM 식품이 의도하지 않은 독소의 발현 등으로 인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과 GM 식품은 철저한 위해성 심사를 거치므로 안전하다는 입장으로 나뉘어 계속되고 있으며, 동물실험에서 나온 몇몇 논쟁 사례들은 논란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증폭시키는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일견 보이는 극단적인 대립 양상에도 불구하고, GM 식품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쟁 양쪽이 암암리에 공유하는 가정이 하나 있다. 만약 GM 식품이 인체에 해를 끼친다면, 이는 사람이 GM 식품을 먹은 뒤 죽거나 쓰러지는 식의 ‘현저한’ 악영향일 거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흔히 들을 수 있는 ‘GM 식품 먹고 죽었다는 사람은 아직 없지 않냐’는 식의 주장이 여기 속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식적인’ 가정과는 달리, GM 식품이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위해는 훨씬 더 미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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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낭콩에서는 안전했던 유전자가…

일례로 GM 식품의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을 생각해보자. 독성에 대한 평가에 비해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에 대한 평가는 매우 까다로운데, 이는 식품 알레르기에 관여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과학적 이해가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현재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을 검사하는 방법으로는 △GM 작물에서 만들어지는 변형 단백질을 이미 알려져 있는 알레르겐(알레르기 유발물질)과 비교하는 구조적 상동성 평가 △특정 알레르기 환자의 혈청을 이용하는 면역반응 검사 △변형 단백질이 인공 소화액 속에서 얼마나 빨리 소화되는지를 알아보는 안정성 검사 등 여러 가지가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 중 어느 것도 GM 식품의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는 못 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식품규격위원회(이른바 ‘Codex’ 위원회) 등 여러 국제기구들이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 평가를 위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지만, 여기 담긴 권고안 역시 때때로 서로 엇갈리고 각국의 규제기구들이 채택하고 있는 검사 방법도 제각각이다.

2005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표된 GM 완두의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 검사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완두를 대규모로 재배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매년 완두바구미의 창궐로 수확량의 30% 가까이를 잃고 있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 중반부터 완두바구미에 저항성을 갖는 GM 완두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GM 완두는 강낭콩에서 알파아밀라아제 저해물질(α-amylase inhibitor)을 발현시키는 유전자를 이식해 만든 것으로, 완두바구미가 GM 완두의 떡잎을 갉아먹으면 그 속에 있는 녹말을 소화시키지 못해 사실상 굶어죽게 된다. 그런데 이 GM 완두의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연구팀은 쥐에 GM 완두, 비GM 완두, 강낭콩을 각각 먹인 뒤 일련의 검사를 실시했는데, 이 중 GM 완두를 먹인 쥐에서만 GM 단백질에 대한 면역반응이 나타났다. 아울러 GM 완두를 먹인 쥐들은 계란 알부민과 같은 다른 물질들에 대해서도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원인을 분석해본 결과 강낭콩에 들어 있을 때는 안전하던 단백질이 유전자 변형을 거쳐 완두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미묘한 구조상의 변화를 일으켜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을 갖게 되었음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관련 연구개발을 진행해온 오스트레일리아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는 200만달러 이상이 투입된 GM 완두 프로젝트의 중단을 선언했다.

문제는 이 GM 완두가 추가적인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고 통상적인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 검사만 받았다면 위해성 심사를 통과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는 데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안전성 검사 기준이 느슨했던 1990년대 후반에 심사를 통과해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상당수 GM 작물들에도 적용되는 얘기다. GM 식품에 대한 안전성 검사는 이를 둘러싼 논쟁이 전세계로 확산된 2000년 이후에 상당히 강화됐지만, 그 이전에 출시된 GM 작물들은 이런 기준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만약 GM 식품이 알레르기 환자를 증가시키는 등 공중보건 문제를 일으켰다면 진작에 보고되지 않았겠느냐고 반론을 펼지 모른다(GM 식품의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주장에는 대부분 이런 식의 논리가 깔려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를 알아내기란 어렵다. GM 식품이 희귀한 질병을 일으킨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인구집단 속에서 특정 질병이 증가한다 해도 다른 수많은 사회적·환경적 요인들 중에서 GM 식품을 그 원인으로 정확히 짚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이는 광우병 논란이 GM 식품에 대한 논란과 갈라지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일부 전문가들이 GM 식품을 구분 유통해 문제가 생겼을 때 추적이 가능하도록 하고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특정 질병의 증가 여부를 예의 주시하는 등 시판 후 모니터링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드는 엄청난 비용과 실행상의 난점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2000년대 초까지 개발된 작물 재평가해야

그렇다면 GM 식품의 안전성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우선 GM 식품의 위해성 심사를 더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안전성 규제가 강화된 2000년대 초 이전에 개발되어 느슨한 심사를 통과한 GM 작물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안전성을 일방적으로 홍보할 것이 아니라) GM 식품의 위해 가능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널리 알리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좀더 철저히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가령 어른보다는 어린이가, 그중에서도 특히 1살 이내의 영아가 알레르기를 나타낼 가능성이 큰 만큼 주의가 요구된다). 국내의 경우 간장, 식용유 등 변형 단백질이나 DNA가 남지 않는 가공물에 대해서도 표시제를 확대하고 비의도적 혼입치 기준을 낮추는 등 제도 개선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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