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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가 휴대전화에 들어간 까닭은

등록 2007-09-06 00:00 수정 2020-05-03 04:25

특별한 도구에서 필수품이 된 디지털 카메라,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기술 궤적을 따라가네

▣ 김동광 과학저술가

디지털 카메라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일반적으로 1975년에 코닥에서 처음 디지털 스틸 카메라의 원형이 탄생하고, 1981년 일본의 소니사가 일부 보도 분야 사용을 위해 스틸 비디오 카메라(SVC) 방식으로 영상을 기록하면서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가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지털 카메라가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84년 일본 언론이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대회 중계에 사용하면서부터였다. 그 뒤 불과 20년 만에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식 카메라를 밀어내고 카메라계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일본의 ‘카메라 및 영상제품 연합’의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카메라가 일반 필름 카메라 판매를 능가한 것은 2002년이었다.

1981년 디카 등장, 2006년 필카 사업 중단

지난 2006년에는 카메라 생산업체 중에서 선두 그룹에 속하는 캐논이 필름 카메라 사업을 접겠다고 발표해서 이제 디지털 카메라가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게 됐음을 실감하게 했다. 그렇다고 필름 카메라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말은 아니다. 아직도 디지털 카메라는 색 재현 능력에서 전통적인 필름 카메라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따라서 전문적인 사진작가나 마니아층에서는 여전히 필름 카메라가 애용되고 있으며, 디지털 카메라가 발전을 거듭해도 앞으로 상당 기간 이러한 경향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디지털 카메라가 이렇듯 빠른 속도로 보급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거추장스러운 필름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부피와 무게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현상과 인화 없이 곧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파일로 간편하게 저장해서 웹상으로 얼마든지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등등.

그렇지만 이런 효율성과 기능상의 이유들만으로는 최근 디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풍경을 충분히 설명하기에 버겁다는 느낌이 든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디카는 누구든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할 필수품 목록의 1, 2위를 다투게 됐다. 과거에 사진기는 특별한 도구였다. 소풍을 가거나 회갑연과 같은 잔치가 벌어지거나 또는 졸업식·입학식과 같은 의식이 있을 때면 사진 찍기는 중요한 행사였고, 사진기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늘상 사진사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요즈음 많은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가방 속에 카메라를 넣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디를 가든 챙겨가야 직성이 풀리고, 처음 가보는 곳이나 신기한 광경을 접하면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카메라에 담아야 마음이 편한 것이다. 이제 디카는 휴대전화와 아울러 가방 속의 필수품 목록에서 한자리를 톡톡히 차지하게 된 셈이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인의 필수품 1호인 휴대전화에 디카가 결합하는 양상과 웬만큼 부합한다. 휴대전화에 카메라를 처음 넣은 것은 삼성전자의 애니콜 V200이었다. 2000년 7월에 등장한 이 카메라폰은 35만 화소에 불과했지만, 그 발상은 소비자들의 심리를 꿰뚫은 것이었다. 이후 카메라폰은 휴대전화의 표준으로 정착했고, 요즈음에는 700만 화소에 줌 기능을 갖춘 기기까지 시장에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기술사회학에서는 ‘기술의 궤적’이라고 부른다. 가령 메모리칩에 고도 집적(IC)이라는 하나의 전형이 마련되면 256메가, 512메가 하는 식으로 계속 그 길을 따라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책임이 사라진 현실 관여

그렇다면 이런 기술 궤적이 만들어진 사회·문화적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사진을 둘러싼 사회적 소통 환경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블로그와 미니 홈피로 대표되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우세화를 들 수 있다. 여기에 자기표현의 비주얼화가 수반됐다. 광케이블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전용선이 빠른 전송을 가능하게 해주면서 과거처럼 용량에 구애받지 않게 된 점도 비주얼화를 가능하게 해준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비주얼화는 과거 텍스트 중심의 서술이나 관여, 설명 양식에서 벗어나 자신이 촬영한 사진들로 기술(記述)을 대체하거나, 또는 비주얼을 중심에 놓고 텍스트를 보조로(사진 캡션처럼) 놓는 식의 서술 양식의 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비디오와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디카가 폭발적으로 수용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관여(engagement)라는 측면에서 비주얼한 관여는 좀더 쉽고 경쾌하지만 가벼운 만큼 부담과 책임이 사라진다. 즉, 어디든 쉽게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자신은 카메라 뒤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름 카메라에는 현상과 인화라는 부담이 따르지만, 디카에는 그마저도 없다. 수백 장을 찍었어도 마음이 들지 않으면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필름카메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사진 찍기와 디카의 그것은 크게 다르다.

그로 인한 관찰 양식의 변화도 간과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서 사물을 관찰하는 편을 선택한다. 심한 경우에는 눈으로 보는 시간보다 앵글을 통해 보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도 한다.

기술품은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특히 휴대전화나 디카처럼 우리의 삶과 사유, 소통양식 속으로 깊이 들어온 기술품은 우리의 한 부분이자 우리의 연장(延長)이라고 할 수 있다. 휴대전화가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소통이 와해되고 사적 소통이 주를 이루는 과정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듯, 디카도 우리 사회에 들끓는 욕구와 욕망들을 내화한다.

자신만의 시각과 시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카메라나 캠코더가 가져다준 시각의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고정된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재구성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전문가들만 쓰는 것으로 알았던 렌즈교환식 DSLR 카메라 가격이 떨어져서 일반인들 사이에 많이 보급된 것도 이런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그런 면에서 디카는 자기표현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반면 디카가 열어준 새로운 시야에는 비틀린 욕망도 묻어 들어온다. 최근 해수욕장에서 고성능 디카로 비키니 여성들의 사진만 수백 장이 넘게 찍다가 적발된 사람이나 지하철에서 카메라폰으로 여성들의 노출 부위를 촬영해서 문제가 된 이야기는 너무 많은 지경이다.

사유의 전유의 욕망, ‘내’ 사진을 원하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디카를 이용해서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대상을 갖고 싶다는 소유욕의 대리만족이다. 많은 이성을 사진기에 담아서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은 휴대전화를 가지면 상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유(私有), 또는 전유(專有)의 욕망과 일맥상통한다. 인터넷에도 비슷한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떠돌아다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사진을 원하는 까닭은 그것들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매력은 조작 가능성과 셀카 기능이다. 포토숍으로 대표되는 사진 손질과 조작은 대상을 내 마음대로 가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표현의 새로운 영역이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소유의 또 다른 표현에 해당한다. 또한 셀카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은 디지털 카메라가 가져온 또 하나의 작은 혁명이다. 사진 찍는 행위는 전통적으로 집단적 행위였지만, 디카의 등장과 셀카의 유행은 ‘혼자서도 잘해요’가 사진의 영역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크게 본다면 음악 듣는 행위를 집단에서 개인으로 전환시킨 워크맨, 집단적 소통을 사적 소통으로 분절시킨 휴대전화로 면면히 이어지는 가전 기술의 자기 궤적이다. 이는 공동체가 날로 파편화되면서 혼자 여행 가고, 혼자 사진 찍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경향과 결부시켜 판매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기획이다.

우리는 무심코 가방 속에 디카를 넣고 집을 나서지만, 그 속에는 많은 것들이 스며들어 있다. 디카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한 번쯤 이런 물음을 품어보라. “이번에는 어떤 욕망이 내장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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