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기대에 쩔쩔매는 ‘못난 여성’들을 위한 페미니즘, 씩씩하게 가슴 두드리며 살자
▣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삼순이는 예쁘지도 온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빵을 잘 만들었다. 자부심도 있었다. 짝도 만났다. 예쁘지도 온순하지도 않지만, 재능도 자부심도 없는 ‘그저 그런 삼순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근 케이블 방송에서 화제를 모은 다큐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가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막 살라”는 것이다. 어차피 세상이 막돼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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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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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하고 못생기고 재능도 없고 나이까지 꽉 찬 ‘영애씨’는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급기야 자기보다 더 뚱뚱하고 못생긴 남자와의 미팅에서 “배고프다고 아무 거나 먹을 수 있나요?”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우리의 ‘영애씨’에게는 배짱이 있다. 열 받으면 욕한다. 다이어트는 하지 않는다(아니 못한다). 지하철 성추행범을 때려눕힌다. 구박받아도 밥벌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배짱마저 없는 절대다수의 ‘막돼먹지 않은 영애씨들’은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잘 나가는 여자, 허울 좋은 영광
2007년 9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0대, 30대 여성들은 ‘영애씨’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 일, 사랑, 외모, 행동거지까지 요구되는 ‘세상의 기준’은 너무 높다. 잘난 여자든, 못난 여자든 자칫 삐끗하면 ‘멀쩡한’ 인생의 트랙에서 내려오거나 굴러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30대 중반의 현정씨. 잘나가는 ‘골드 미스’였다. 승진도 빨랐다. 때론 곰처럼 때론 여우처럼 최선을 다해 일했다. 어느 날 몸에 이상이 왔다. 유방암이었다. 자궁도 상태가 나빴다. 병가 뒤 회사에 복귀해보니, 유방암은 가슴 확대 수술의 후유증으로, 자궁질환은 문란한 성생활의 결과로 소문이 나 있었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평소 “능력 있으면 성형해도 되지” “연애만 하고 살래” 곧잘 떠들었던 게 원인이 아닐까 짐작해봤다. “내가 지나치게 나댔나?” “누구한테 밉보였나?” “혹시 결혼을 안 해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왜 내가 뭘 잘못했는지만 따지고 앉아 있지?” 수소문을 해봤다. 멍청한 팀장이 술자리에서 한 막말이 와전된 것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팀장에게 항의를 하고 사과를 받아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평소처럼 ‘팀당님~’ 하는 애교로? ‘당신 대체 뭐야?’ 하는 위협으로? 어떻게 해야 공격적인 인상을 주지 않을지, 다른 부서원들이 불편하지 않을지, 온갖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심리 카운슬러는 현정씨에게 “왜 피해를 입고도 상대를 ‘배려’할 궁리에 몰두하죠?”라고 질문해왔다. 배려가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서였다. 정글 같은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공격적이어선 안 되고, 여성성을 잃어서도 안 된다. 그게 현정씨가 배우고 터득한 생존의 기술이었다. 한마디로 현정씨는 ‘막돼먹지’ 않은 여자였던 것이다. 그녀를 향했던 ‘잘나가는 여자’라는 꼬리표는 ‘막돼먹지’ 않게 굴었기 때문에 획득할수 있었던 ‘허울 좋은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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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맘, 이혼, 남편의 바람, 실직’같은 나쁜 상황들은 ‘결혼, 출산, 승진’같은 행복한 상황 못지않게 누구에게나 불어닥칠 수 있다. 온순한 미녀로 산다고 해도 그 바람을 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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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게, 세상을 즐기며 살고 있을 것만 같은 20~30대 여성들이 사실은 세상의 기대에 맞추느라 ‘헉헉대며’ 살고 있다. 강박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옷차림과 말투, 행동을 조심하고 남자들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댄다. 그 기대의 핵심은 ‘여성성’이다.
정아무개(28·대학부설연구소 연구원)씨는 대학원 다닐 때 ‘농부’ 콘셉트로 살았다. 2년간 헐렁한 박스 티셔츠에 청바지만 고수했다. “큰 귀고리, 미니스커트, 민소매 티셔츠를 입으면 ‘학생’이 아니라 ‘여자’로 볼 것 같아 불편했다.” 졸업하자마자 그녀의 패션은 확 바뀌었다. 시도 때도 없이 ‘샬랄라 공주’ 같은 핑크빛 블라우스에 치마를 입고 다녔다. ‘농부 콘셉트’의 심각한 역효과였다.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중·고등학교 중국어 강사인 손아무개(32)씨. 다이어트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160cm 키에 50kg 후반 몸무게로 “통통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66 사이즈 옷을 입던 그녀는 지난 3월 몸이 아파 5kg가량 빠졌다. 학부모, 동료 교사, 아이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내 능력을 굉장히 신뢰하는 눈빛이었다. 서른 평생 겪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 뒤 손씨는 매일 아침 체중계에 오른다. ‘빠진 몸무게’를 고수하느라 서른 평생 해보지 않은 다이어트에 매달리고 있다.
거짓 여성성을 거부하다
지난 8월 국내에 번역 소개된 프랑스 책 <킹콩걸>(원제 킹콩이론, 마고북스 펴냄)은 세상이 부여한 ‘거짓 여성성’을 꼬집는다. “매혹적이되 천박하지 않고, 사회적인 일을 하되 남자를 누를 만큼 성공해서도 안 되고, 다이어트에 전혀 신경쓰지 않으면서도 날씬해야 하며, 집안일을 훌륭하게 돌보되 하녀 같아서도 안 되는, 내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이 ‘행복한 여성’이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수많은 여성들은 이런 여성이 되기 위해 속아도 침묵하고, 우롱당해도 참고, 남성의 지배에 적당히 타협하며 ‘우아하고 고상하게’ 살고 있다는 게 지은이 비르지니 데팡트의 지적이다. 그녀들에게 데팡트는 이렇게 질문한다. 부드럽고 온화한 게 진짜 너야? 답답하지 않니? 힘들지 않니?
‘못난 여자들을 위한 페미니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잘 안 팔리는 삐딱한 여자들”과 “겁 많고 상처 잘 받는 남자들” 편이다. 세상에서 요구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갖추지 못한 ‘못난이들’이다. 그들 중 ‘미녀’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여자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못난아,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우리는 결코 ‘미녀’가 될 수 없단다. 대신 너의 본성인, 킹콩을 살려내렴.
영화 <킹콩>을 보면, 야생의 적들로부터 금발 미녀를 보호하는 ‘킹콩’은 암컷도 수컷도 아닌 무성적 존재다. 사실 킹콩과 미녀 사이에는 어떤 에로틱한 행위도 없다. 돌봄의 몸짓만이 있다. 킹콩은 제복을 입은 군인, 그들이 세운 빌딩과 건물, 비행기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가슴을 두드리며 자기 힘을 내보일 줄도 안다. 그런 ‘힘센’ 킹콩이 그의 손바닥에 있는 미녀를 구하려는 남성들과 남성의 제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죽어버린 ‘킹콩스러움’이 여성 안의 중요한 본성이라는 게 데팡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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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에는 판타지를 배제한 ‘쌩얼’그대로의 여성 캐릭터가 나온다. 영애씨는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당당하고 배짱 있게 본성대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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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어떻게 됐을까? 킹콩과 잘 놀던 미녀는 자신을 구출하러 온 남자를 따라간다. 도시에서의 삶을 선택했다는 건 내부에 잠재된 거칠고 강한 본성을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그녀는 킹콩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일에 가담하기를 거부하고, 킹콩이 학살당하는 건물 옥상까지도 함께 갔다. 그러나 남자들이 킹콩을 죽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대신 남성들의 세상이라는 ‘더 적절한’ 보호 아래 놓이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근원적인 힘을 잃게 된다.
‘여성성’에 대한 회의와 공포를 떨치지 못하는 여성들은 매순간 킹콩이냐 미녀냐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보호와 존중’으로 포장된 ‘억압과 무시’일지라도 그 속에서 안전하게 미녀로 살아갈까, 내가 짓밟히든 내가 짓밟든 킹콩으로 살아갈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그리 많지 않은 ‘미녀들’마저 ‘킹콩’으로 내몬다. 미녀일지라도 온순하게 굴지 않으면, 바로 제압당한다.
540여 일간 거리에서 투쟁을 지속해오고 있는 KTX 승무원들은 원래 ‘미녀’였다. 민세원(35) 지부장도 그랬다. 철도노조가 갑자기 해고하기 전까지는 세상이 두렵지 않았다. 그는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로 5년을 근무했다. 연행, 출입금지, 손해배상, 가압류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혼을 했고, 원하는 것을 얻는 일이 힘든 적도, 내가 요구하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지금 단지 ‘해고하지 말라’고 요구했을 뿐인데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나를 끌어내고 수배령을 내렸다.”
과격해지는 여성들, 다정해지는 책들
결혼한 여성은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킹콩할지’ ‘미녀할지’를 고민한다. 그런 여성들을 향한 여성들의 조언은 하나같이 “킹콩이 되라”는 것이다. 여성주의 커뮤니티 ‘언니네’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올라와 있다.
“결혼 5개월차 주부. 체중 조절하는 남편이 아이스크림 먹는 걸 말렸더니 계속 투덜댔다. 한마디 했다. ‘먹고 싶으면 먹어, 안 먹으면 입에 쑤셔넣어버린다.’ 조금 심하게 말했다 싶었는데, 남편이 내 뺨을 두 대 때렸다. 내가 짐승인가. 수치스러웠다. 다음날 ‘남편 뺨 20대 때리기’로 합의를 봤다. 한 대 때렸다. 남편이 눈물을 글썽였다. 두 대째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마음이 약해져 때리기를 그만뒀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약하게 대응했나? 남은 뺨 18대를 마저 때려야 하나?”
사연을 읽은 여성 네티즌들은 저마다 방안을 내놓았다. “지랄발광을 하세요. 우는 것도 그냥 흑흑 울면 안 되고 목놓아 대성통곡을 하면서 방바닥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세요. 분노를 표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흐느끼거나, 참거나, 상대방이 스스로 반성하기를 기다리면 안 됩니다.” “무방비 상태일 때 습격이라도 하셔야 합니다. 과일 깎아먹다가 포크 같은 걸로 손등을 콱 찍어버리세요. 다음에는 칼로 찍을 테니까 각오하라고 한마디 하시고요. 아님 뭐 넥타이 매주는 척하면서 목을 확 조르셔도 되고요. 절대 그냥 넘어가지 마세요.” “내 친구는 다음에 다시 홧김에 안 그런다는 보장이 없어서 같이 각서를 썼다고 하네요. 한 번이라도 폭력을 행사하면 재산은 전부 상대방이 갖기로. 공증도 받았대요. 그 뒤로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 민세원 KTX 열차승무지부장은 지난해 9월 삭발 뒤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미녀’였던 그가 해고하지 말 것을 요구하자 국가는 연행, 수배령 등으로 대응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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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여성들은 이렇듯 점점 ‘과격’해지고 있지만, 이들을 멘토링하는 책들은 점점 ‘다정’해지고 있다. 못난 여자들의 고통과 비명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너도 그렇구나’가 메가 트렌드다.
20대, 30대 여성 타깃의 ‘처세서’는 일주일에 열두 권 이상 쏟아져나온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여성들을 위한 ‘멘토링’ 책들 대부분이 인물 중심의 성공 스토리거나 남성들이 꽉 잡은 세계에서 성공과 성취를 강조한 책이었다. 변곡점이 된 책은 2004년에 나온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이다. 이 책이 기획되고 출판될 때만 해도 출판사 내부에서조차 아무도 주목을 하지 않았다. 마케팅과 광고도 안 붙었다. 작가가 내로라하는 성공을 하거나 유명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소문만으로도 서점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4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이 책은 외모부터 재테크, 인간관계를 시시콜콜 아우르며 한마디로 ‘손해보지 말고 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본격 페미니즘 서적들도 흐름이 바뀌었다. ‘선동’과 ‘가르침’에서 ‘상담’과 ‘위로’로 넘어갔다. 지난 6월에 나란히 나온 <김신명숙의 선택> <천만번 괜찮아>는 여성주의 저널 <이프> 출신의 두 사람이 내놓은 책이다. 각각 ‘여성경험총서 시리즈’ ‘감정치유에세이’라는 설명을 붙이고 있다. 세상의 부당한 대우에 속이 문드러지지만 끙끙대고 주눅든 20대, 30대 여성들의 마음을 쓰다듬는다. 책의 내용도 실제 상담 사례를 담았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을 펴낸 랜덤하우스코리아 탁윤희 편집자는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행복 스토리가 대세”라고 설명했다.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누구나 일하고 노동해야 하지만,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며 “지난해 여성주의 사이트의 글들을 엮은 <언니네 방>이 나오면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공유랄까, 집단 치유 추세가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
알파걸도 알파우먼으로 살진 못 해
김신명숙씨는 “다수의 젊은 여성들이 가부장제에 순응하기는 억울하지만 지금의 삶도 버거운데 더 골치 아플까봐, 찍힐까봐, 너무 가르치고 닦달하는 것 같아서 여성주의로 고개를 잘 돌리지 않으려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고 집필 계기를 밝혔다.
여성은 항상 나눠지고 분류됐다. 가장 최근의 분류가 ‘알파걸’이다. 국·영·수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체육도, 정치도, 아니 경제도 잘하다니. 사람들은 감탄하며, 혹은 시샘하며 1등 소녀들을 ‘알파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알파걸들이 떠받들어지는 동안 2등, 30등, 꼴등 여성은 잊혀져갔다. 소수의 알파걸들도 학교와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서는 ‘알파우먼’으로 살지 못한다. ‘미녀’들이 온순함을 포기하는 대가로 투사로 내몰리고, 한 마리 킹콩이 가슴팍을 두들겨대자 온 동네 남자들이 떼로 달려들어 포획한 것과 같은 이치다.
나임윤경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오늘을 사는 20대, 30대 여성의 ‘처세’로 “삶의 최고의 조건을 상상하면서 현재를 살지 말고 최악의 조건을 상상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의 바람은 ‘미녀’에게만 부는 것도, ‘킹콩’에게만 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태풍 앞에서 예쁜 척 하이힐을 고쳐 신어봤자 발목만 부러진다. 하이힐 대신, 어느 정글에나 한두 마리는 있게 마련인 킹콩과 같이 소리 지르며 가슴을 두들겨보는 건 어떨까. 미녀가 될 수 없을 바에야 속이라도 시원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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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 있는 욕망을 위하여
20~30대 일하는 여자들을 위한 조언, 당신은 집단의 개성을 존중하는가
▣ 임경선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 지은이 askcatwoman@empal.com
20대, 30대의 일하는 여자들이 트림이 날 정도로 들어온 처세 조언은 아마도 “비 유어셀프”(Be Yourself)와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일 것이다. 그간의 억압 구조와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서 해방시켜주는 마법의 문구라고 치면 이해는 간다. 하지만 당당하다 못해 개성과 무개념 이기주의를 혼동하고 아직 여물지도 않은 자신을 사랑하다 못해 주변에 민폐를 끼친다면? 대체 누가 그녀들을 구제해줄까?
옛 직장의 ㄱ은 전직한 지 얼마 안 돼 모든 이를 경악시켰다. 보통은 업무 스케줄이나 거래처 리스트를 끼워놓는 사무용 책상 유리 프레임에 무려 얼짱 각도로 찍은 15장의 자기 독사진을 끼워놓은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기꺼운 일이다. 하지만 공적인 오프라인 공간 말고 사적인 온라인 공간에서 사랑해주면 안 되겠니? 남의 입김이 ‘내 작품’에 반영되는 게 싫어 늘 문서의 중간보고를 노골적으로 건너뛰는 ㄴ도 있었다. 일이 어긋나면 그의 상사가 뒷감당을 해야 한다는 현실마저 간과할 만큼 자기 실력을 어지간히 사랑했나 보다. 화려한 차림새로 선배한테 주의를 받자 개성을 무시한다고 반발하던 ㄷ은 개인의 이미지가 집단 이미지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출근복은 ‘차림새’의 문제지 ‘패션’의 문제가 아니다.
매너 없는 욕망은 높은 직장 연차에서도 이어진다. ㄹ은 유능한 실무자로서 칭찬받으며 일했던 기억이 남아서인지 상사 입장에서 일을 떠나 보내는 상황이 불안하고 어색했다. 그래서 부하가 조금만 어설프게 일을 하면 “답답한 너에게 맡기느니 차라리 내가 후딱 해버리겠다”며 일을 도로 빼앗아간다. 자기와 닮은 일 욕심 많은 부하직원이 들어오면? 잔업무만 주고 적당히 밟아준다. 아직도 중역들의 칭찬은 본인이 독차지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어리광 탓에 그녀 밑에는 온순한 무능력자들만 양산되고 있다.
그녀들은 머리가 나쁜 것일까? 설마.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나름 열심히 해서 그 자리에 선 여자들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지난날 노력을 해온 만큼 싫은 소리 듣는 것에 대한 면역이 턱없이 부족하다. 실질적인 멘토(mentor)도 없다. 남자 선배는 직접 ‘내 라인’으로 키우기보다는 ‘굿가이’로서 즐겁게 지내고 싶을 뿐이고, 여자 선배는 여자끼리 부딪혀봤자 본전도 못 찾는다고 껄끄러워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내 최고 권력자의 눈에 들기라도 한다면? 때마침 그녀가 손에 집은 처세서에서 근거 없이 ‘자신을 믿고 당당하라’고 부추긴다면? 사태 더욱 악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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