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커큐민 등의 향신료들 각종 연구 통해 암·심장질환에 효능 입증…논란 끝내고 신약으로 거듭나려면 치료제로서 안정성을 확보해야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누구나 식생활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길 기대한다. 근래에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식품 위주의 ‘치료식품 피라미드’에 근거해 식단을 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따르면 다채로운 색깔을 띠는 과일과 채소, 도정하지 않은 곡류, 건강에 유익한 지방류와 유제품, 해산물 등이 근간을 이룬다. 마늘, 생강, 고추 같은 향신료도 치료식품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놀랍게도 향신료는 치료약물로 거듭날 조짐을 보이기도 한다. 버드나무 껍질로 아스피린을, 곰팡이에서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스타틴을, 관목에서 항말라리아 물질 아르테미시닌을 얻었던 것처럼 향신료에서 신약 성분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정말로 향신료는 병을 치료하는 약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마늘로 항암제 개발 가능” 주장도
오랫동안 향신료는 영양소로서 가치보다는 맛을 내는 수단으로 쓰였다. 마늘만 해도 수세기 동안 신비의 약물로 여겨지면서도 구체적인 효과가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암 정복을 위한 연구 프로젝트를 총괄정리하면서 마늘이 암 발생을 억제하는 데 특효가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전통적으로 마늘의 향을 혐오한 서구에서 암을 주목한 것은 각종 동물실험에서 마늘만큼 암을 강력하게 다스리는 식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박상철 소장은 “마늘의 성분은 항산화나 항돌연변이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여러 발암물질들이 생체 내에서 대사적으로 활성화되는 메커니즘을 강력히 억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마늘의 효능을 이용한 치료법을 개발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마늘이 고온에서 가열된 육류에서 발견되는 발암성 물질들의 작용을 막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육류와 계란처럼 단백질 함량이 높은 식품을 고온에서 조리할 때 ‘PhIP’라는 발암성 화학물질이 생성된다. 이 물질은 육류 섭취량이 많은 여성들이 유방암에 걸리는 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PhIP가 생물학적으로 활성 상태일 때 DNA를 손상시키거나 체내 물질의 변형을 일으키는 탓이다. 그런데 마늘의 성분 가운데 하나인 ‘다이알릴 설파이드’(Diallyl Sulphide)가 PhIP의 생성을 억제해 유방암을 예방한다는 것이다.
마늘 꺼리는 서구에선 보충제가 인기
그동안 연구자들은 마늘이 유방암이나 전립선암처럼 호르몬이나 생식에 관련된 암에는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늘이 간접적으로나마 유방암 예방에 도움을 준다면 모든 암의 발병 위험도를 낮춘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늘에 들어 있는 유황화합물질은 담배나 자외선, 식품첨가제 등에 함유된 발암물질의 독성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예컨대 S-메틸시스테인만 해도 간장암과 대장암을 억제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마늘에서 미네랄을 흡수·저장하는 셀레늄도 암을 예방한다고 알려진 물질이다. 이런 연구 결과를 근거로 마늘의 특정 성분을 분리하면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마늘이 영향을 끼치는 혈관 확장 메커니즘과 콜레스테롤 강하 작용이 밝혀지기도 했다. 마늘의 활성성분인 ‘알리신’(Allicin)이 세포막에 있는 단백질 이온 채널에 결합되어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호흡을 원활하게 하며 콜레스테롤의 농도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천성 질환의 하나인 ‘낭포성 섬유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치명적인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금까지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은 날마다 두 차례씩 항생제 분무기를 사용해 만성 감염을 치료했다. 그런데 일부 살아남은 균이 항생제 내성을 일으켜 골머리를 앓았다. 만일 마늘이 감염균인 슈도모나스에 특효가 있다면 항생제 내성의 위험을 없앨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효능이 잇따라 밝혀지면서 마늘 보충제 시장이 크게 확대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마늘을 꺼리는 서구인들도 동결건조해 정제한 보충제를 널리 복용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만 1억달러 이상의 마늘 보충제 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아무리 마늘의 유효 성분이 많다 해도 천연화합물을 분리해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영양 보충제의 하나로 취급된다는 데 있다. 지난해 영국 브리스틀대 스티븐 토머스 박사팀은 마늘이나 레티놀 등의 영양보충제를 암이나 전암 조직을 가진 환자들이 복용했을 때 특별한 임상적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에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으로선 마늘이 치료제로 거듭나기는 역부족인 셈이다.
만일 마늘 같은 향신료의 특정 성분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다면 부작용이 거의 없으며 싼값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예비조사에서 향신료의 천연화합물이 인체에 이롭고 독성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더라도 저가의 예방약으로 쓰이기까지는 많은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예컨대 특정 천연화합물이 발암물질을 억제하고 악성세포들의 성장을 더디게 하더라도 잘못된 스위치를 발동시켜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농도 조절을 잘못해 치료약이 순식간에 독약으로 바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다양한 돌연변이의 가능성을 세밀히 파악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단 마늘만 치료제로 거듭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카레의 주요 성분으로 알츠하이머에서 암까지 치료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커큐민’(Curcumin)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로 아시아에 서식하는 식물 ‘울금’에서 나오는 강황의 유효성분인 커큐민은 인도의 탄두리 같은 음식에서 맛을 돋우고 부패를 방지하는 데 쓰였다. 이미 5천여 년 전부터 강황은 부상 치료와 혈액 정화, 위장병 등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스코 다 가마가 강황의 활성성분인 커큐민을 동방항해 뒤 유럽으로 가져가 ‘인도의 순금’으로 묘사했을 정도다. 질병을 치료하는 향신료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항암 vs 발암 논란 중인 커큐민
그러다 1970년대부터 커큐민의 생물학적 작용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인도의 한 연구자는 집쥐의 콜레스테롤 수치에 커큐민이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했다. 그 뒤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주요 면역체 분자 종양괴사인자를 정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암과 다른 질병에 대한 효능을 증명하기 위한 대규모의 임상실험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국내 연구진이 커큐민의 항암기작을 규명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세종대 권호정 교수팀이 지난 2003년 생명과학 저널인 에 “커큐민이 암세포의 성장과 증식에 관여하는 핵심 효소와 비가역적인 결합을 형성해 활성을 억제해 암세포의 혈관신생을 막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이런 커큐민의 놀라운 효과는 다른 연구 결과의 도전을 받았다. 이스라엘 바이츠만연구소 분자유전학분과 요세프 사울 박사팀이 효소 NQO1을 연구하면서 “커큐민이 세포 내에서 유기체의 방어적인 행동을 주도하는 단백질의 생성을 막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즉 커큐민이 효소 NQO1의 생성을 억제해 P53 단백질이 비정상적인 세포를 살해하는 기능을 가로막아 암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커큐민의 효능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은 이와 반대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지만 논란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커큐민이 류머티즘성 관절염이나 알츠하이머병, 대장암에 특효가 있다는 연구 결과에도 신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어쨌든 향신료가 발암물질을 억제하거나 심장질환을 예방하는 등의 효능이 있는 것은 사실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제약회사들이 선호하는 신약 후보물질 목록에 오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고도의 적중률을 보이는 치료법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마늘이나 강황 등의 유효성분이 다양한 효능을 보일지라도 원치 않는 부작용을 일으킨다면 신약 개발에 선뜻 나서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금 향신료는 치료제로서 안정성을 확보하려 발버둥치고 있지만 건강을 챙기는 치료식품으로는 모자람이 없다. 그래서 향신료의 효능을 지지하는 연구자들은 커큐민의 생화학적 이용도를 높이려고 한다. 요리의 레시피에 효능이 밝혀진 향신료를 첨가하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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