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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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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의 시대가 다가온다

등록 2007-01-13 00:00 수정 2020-05-03 04:24

재배 쉽고 생산량 많아 바이오에탄올의 새로운 원료로 관심 집중…아밀로오스 함량 높은 형질전환체 개발, 밭에서 에너지 얻을 날 오나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우리는 고구마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멕시코의 유카탄반도와 남미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강 하구 지역이 원산지인 메꽃과 식용식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겠지요. 조선 후기인 18세기 초반 일본 본토에서 쓰시마섬을 통해 국내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고구마에는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풍부해 영양원 노릇을 충실히 하다가 다른 먹을거리에 자리를 내주고 술의 원료인 ‘주정’을 만들거나 ‘추억의 간식’ 노릇을 하는 데 그쳤지요. 그런데 고구마에 베타카로틴과 비타민C가 풍부하고 섬유소와 비타민B-6, 칼륨 등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지방 저칼로리 영양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존 바이오에탄올 생산비용 너무 비싸

이같은 고구마가 놀라운 변신을 준비하고 있어요. 최근 급속히 발달하는 유전체 정보와 형질전환 기술에 힘입어 ‘에너지원’으로 거듭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분자육종으로 전분 함량을 높이거나 전분 조성을 조절해 연료용 바이오에탄올을 만든다고 하네요. 머지않아 밭에서 에너지를 캐는 풍경을 보게 될 듯합니다. 추위와 가뭄에 강한 고구마 신품종을 개발하는 서울시립대학 환경원예학과 김선형 교수는 “고구마는 분자육종을 이용하면 연료용 에탄올을 비롯한 각종 고부가가치 산업소재를 생산하는 21세기 산업용 작물로 개발할 수 있다”고 했어요.

현재 바이오에탄올 생산에 쓰이는 원료는 대부분 곡류 유래의 전분이나 열대작물에서 얻는 당류입니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 옥수수 전분의 가수분해 과정에서 나오는 포도당을, 브라질은 사탕수수에 있는 설탕을 원료로 하고 있어요. 브라질에서는 소형 자동차의 54%가 바이오에탄올을 원료로 사용하는 ‘토털 플렉스’일 정도로 폭넓게 쓰이지요. 문제는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은 특정 지역을 벗어나면 재배할 수 없다는 데 있어요. 미국만 해도 옥수수가 과잉 생산되지만 연료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국가 전체에서 생산하는 옥수수를 모두 에탄올로 만들어도 자동차 소비 연료의 7%를 충당할 뿐입니다.

게다가 기존 작물로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는 비용이 너무 비쌉니다. 사탕수수가 풍부한 브라질만 석유계 연료보다 경쟁력이 있을 뿐이죠. 그래서 유럽에서는 ‘리그노셀룰로직’(Lignocellulosic)이라는 기술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산업 공정처럼 미세한 부분을 이용하지 않고 식물 전체를 활용해 수익성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나무와 식물의 폐기물까지 활용해 농산물 업계와 충돌을 피하고 곡류 종자나 사탕수수 과육 등에서 찌꺼기나 부산물을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제조 공정 마지막 단계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 실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까닭에 바이오에탄올의 새로운 원료 공급원을 찾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고구마가 주목받는 이유는 환경과 기후에 대한 내성이 강해 재배가 비교적 쉽고 생산량이 많기 때문이지요.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의 2003년 통계를 보면 고구마 재배국은 세계적으로 100여 개국이나 되며 재배 면적은 970만ha입니다. 고구마가 주목받는 것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벼의 1.7배, 보리의 3배나 되기 때문이지요. 특히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도 고구마는 무성하게 자랍니다. 포복형 작물이라서 태풍이 불어도 끄덕하지 않고 토양의 수분 증발을 막기도 한답니다.

가열에 들어가는 천연가스, 어떻게 줄이나

요즘 고구마를 이용해 에탄올을 만드는 연구는 전분대사를 조절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생체 고분자 가운데 하나인 전분은 고등식물에서 광합성에 의한 탄소고정의 최종산물로 합성되어 저장조직에 축적됩니다. 대부분의 식물 전분은 직선형인 아밀로오스와 가지를 치고 있는 고분자 아밀로펙틴의 혼합물로 이뤄졌지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환경생명공학연구센터 곽상수 책임연구원은 “에너지로 따졌을 때 전분은 세계 식량 공급량의 80%를 차지한다”며 “전분의 합성 과정이 매우 복잡해 아직까지 제대로 해명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일본의 자동차 회사 도요타가 고구마 유래 바이오에탄올 연구를 주도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고구마를 이용한 생분해성 전분 합성이나 고구마에서 추출한 에탄올을 이용한 연료용 에탄올 생산을 추진한 것이죠. 도요타는 인도네시아 남수마트라에 현지 법인 ‘도요타 바이오’를 설립해 1년에 25만t의 고구마를 생산하며 국제감자고구마연구소와 함께 지역 특성에 맞는 고구마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고구마를 연구한다는 사실이 놀랍지요. 석유 이후에 대비해 산업용 연료를 개발하면서 농작물 시장을 염두에 둔 미래 전략이겠네요.

최근 국내에서도 연료 개발형 고구마 개발의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중심으로 고구마의 전분 조절 시스템을 연구하면서 전분 합성에 관련된 유전자를 분리하는 데 성공해 아밀로오스 함량이 50%나 많은 형질전환체를 개발한 것이지요. 이를 이용하면 당화 과정을 압축해 바이오에탄올 생산 단가를 낮출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환경 스트레스에 강한 고구마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고구마 ‘율미’ 품종을 대상으로 활성산소에 의한 산화 스트레스로 노화나 세포 사멸이 이뤄지지 않도록 한 것이지요. 이 형질전환 고구마는 저온이나 오존·아황산가스 등에도 강해, 생육 조건이 나쁜 지역에서도 잘 자란답니다.

이렇게 바이오에탄올로 가는 길이 넓어지고 있지만 ‘에탄올의 시대’가 다가올 것이라 확신하기는 이릅니다. 에탄올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입니다. 전분을 이용해 연료용 에탄올을 생산하는 과정은 술에서 에탄올이 만들어지는 방식 그대로입니다. 이스트가 당분을 먹고 배출하는 알코올과 이산화탄소에서 알코올을 추출해 증발시킨 뒤 포획해 압축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가열을 통한 공정에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가 투여된다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8만BTU(영국열역학단위)의 에너지를 지닌 1갤런의 에탄올을 생산하는 데 3만6천BTU의 천연가스가 소요됩니다.

셀룰로오스로 에탄올을 만들면?

만일 옥수숫대나 곡물의 짚, 목초 등에서 얻는 ‘셀룰로오스’로 에탄올을 만들면 뜻밖의 효과를 거둘 수 있어요. 섬유질에 뜨거운 김을 쐰 뒤 생물반응장치에 넣어 효소에 의해 당분이 나오도록 합니다. 이때 나오는 리그닌을 태우면 열병합발전으로 증기와 전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섬유소에 붙잡혀 있는 당분이 리그닌에서 빠져나오도록 하는 게 쉽지 않아요. 오지의 덤불이나 흰개미의 내장에 있는 박테리아나 곰팡이를 얻는 게 수월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일부 연구자들이 에탄올을 분해하는 효소를 함유한 생물공학적 옥수수를 개발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브라질처럼 적절한 기후와 값싼 노동력이나 첨단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에탄올이 화석연료의 자리를 꿰차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에탄올의 경제적 분석에 고구마가 포함되지는 않았습니다. 고구마에서 생산한 에탄올이 실용화되지 않은 탓입니다. 우리나라는 단위면적당 고구마 생산량이 22t/ha로 매우 높습니다. 여기에다 환경재해 내성 고구마를 불모지에서 재배한다면 적지 않은 바이오에너지 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바이오에탄올을 남의 나라 일로 여기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에너지를 땅에서 수확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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