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받으면 촉매 반응 일으키는 성질 이용해 공기정화와 오염물질 분해…물분자를 분해해 수소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중요한 물질로 주목 받아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미래 기술의 근거는 상상력에서 비롯되게 마련이다. 5년여 전에 만난 나노 과학자는 농담처럼 한마디 던졌다. 앞으로 10여 년 지나면 사무실이나 거실의 벽에 나노 물질을 코팅하는 것만으로 전력을 얻을 수 있고, 실내 환기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그런 공상과학 에세이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현 가능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나노 기술이 일상에 파고든다 해도 열려라 참깨식의 주문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뚱딴지 과학자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어설픈 상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광촉매를 이용한 공기정화기는 난분해성 오염물질까지 잡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활성산소가 유해물질 분해
최근 친환경 마감재로 판매되는 ‘바이오세라믹’의 과장 광고가 법적 규제를 받았다. 평당 7만~8만원 정도의 시공 가격을 지급하면 세균이나 곰팡이의 서식을 근원적으로 막는다는 내용이 허위인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바이오세라믹은 일반적으로 곰팡이가 발생하는 결로(내부의 온도가 이슬점 이하로 떨어져 물체 표면에 공기 중의 수증기가 물방울로 맺히는 현상)나 누수(물이 샘)에서 항곰팡이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광촉매는 포름알데히드 같은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나 각종 냄새를 분해시켜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었다.
도대체 광촉매가 무엇이기에 친환경 기술로 각광받는 것일까. 광촉매는 말 그대로 빛을 받으면 촉매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즉, 광촉매 위에 빛이 닿을 때 발생하는 활성산소가 공기 속의 세균을 없애고 유해물질을 분해하는 구실을 한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바닥재나 벽지 위에 광촉매 코팅을 하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포스텍(포항공대) 환경공학부 최원용 교수는 태양광을 이용한 환경정화 장치와 에너지전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 교수는 “광촉매로 환경오염 물질을 분해하고 살균·항균·자정 등에 응용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면서 “수소 제조와 태양광 발전 등 에너지 분야에도 널리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언젠가는 인류가 만든 화학물질 가운데 가장 독성이 강하다는 다이옥신도 광촉매로 처리할 것으로 기대된다. 광촉매제로 다이옥신을 코팅해 독성을 내뿜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분해가 어려운 산업폐수는 간단한 광촉매 장치로 깨끗하게 처리할 수도 있다. 만일 실내에서 활용도가 높은 가시광선을 활성화하는 고효율의 광촉매를 개발하면 응용 분야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실제로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이 개발한 ‘가시광에 감응하는 고효율 이산화티타늄(TiO₂) 광촉매 제조’ 기술은 항균·소취(消臭·나쁜 냄새를 없앰) 기능이 있는 섬유 제품을 생산하는 데 적용될 예정이다.
이렇듯 전방위 환경 해결사로 활용되는 광촉매에 나노 기술이 접목되면서 놀라운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광촉매로 수소를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녹색식물들이 빛을 화학에너지로 변환하는 것을 모방한 광촉매로 물분자를 분해해서 수소를 발생시키려는 것이다. 프론티어 수소에너지사업단 김종원 단장은 “광촉매 이용 수소 생산 기술은 반도체 개념을 응용한다. 반도체가 고온에 이르면 전기 전도도가 증가하는 것처럼 빛을 쐬면 정공과 전자가 생기면서 광반응이 일어난다. 이를 외부 회로에 연결해 전기를 얻으면 태양전지가 되고, 환원과 산화 반응을 일으켜 화학에너지로 바꾸면 광촉매가 된다”고 밝혔다.
현재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는 기술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대표적인 방법은 태양전지를 이용하는 것인데 물분해 효율이 높은 반면 가격이 비싼 편이다. 실리콘 소재의 박막 태양전지의 경우 1980년대 초반에 비해 7분의 1로 떨어졌다 해도 W당 생산단가가 3~4달러나 된다. 이는 다른 에너지 생산 기술에 비해 3~10배나 비싼 가격이다. 미국의 유나이티드 솔라사는 3중 접합 실리콘 박막 태양전지로 에너지 효율을 15%로 끌어올렸지만 가격 문제를 크게 개선하지는 못했다. 요즘 개발되는 비정질 규소, 카드뮴텔러라이드(CdTe)·카퍼인디움다이셀레나이드CIS) 화합물 반도체 등의 박막 태양전지는 2010년 무렵에 효율을 15%대로 높여 W당 1.2달러 수준에서 거래될 것으로 예측된다.
가시광에 반응하는 촉매를 만들어라
또 미생물 같은 생물체 내부의 시스템을 공학적으로 활용해 수소를 얻을 수도 있다. 애당초 20세기 초반에 냇가에서 자라는 미세조류(이끼)에서 수소 가스가 생성되는 것을 생물학자들이 발견하면서 미생물로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였다. 미생물을 이용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수소를 얻을 수 있지만 대량생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한국과학기술원 이상엽 교수는 “미생물학자들은 수소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법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공학적 연구 성과가 제대로 결합되지 않으면서 효율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경제성을 거론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햇빛을 이용해 수소를 경제적으로 대량생산할 수는 없을까. 현재로선 광촉매법이 유력한 대안으로 꼽힌다. 물에 촉매를 넣어 빛을 조사한 뒤 수소를 모으기만 하면 되는 광촉매법은 태양전지보다 저렴하고 미생물보다 많은 수소를 얻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올해로 4회째를 맞아 지난 6월15일부터 이틀 동안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수소에너지 심포지엄’의 주요 테마도 광촉매를 이용한 광변환 기술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태양광에 많이 포함돼 있는 가시광선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기술을 비롯해 전산모사를 이용한 광촉매 재료 설계, 광바이오 촉매 복합 수소제조 시스템 등의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사실 광촉매를 이용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문제는 물속에서 물 분자가 햇빛에 약 4%밖에 들어 있지 않은 자외선에 의해서만 분해된다는 데 있다. 물 분해 효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연구자들은 넓은 흡수 파장을 가진 높은 활성의 광촉매를 개발하려고 한다. 예컨대 질화칼륨이나 산화아연을 섞은 노란색의 분말에 특정 보조 촉매를 첨가해 햇빛의 46%를 차지하는 가시광에도 반응하는 광촉매를 만드는 것이다. 가시광으로 물을 분해하면 자외선으로 했을 때보다 효율이 10배 이상 높아진다. 이산화티타늄을 나노튜브로 만들어 전자들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오래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에는 광촉매와 생물학적 방법을 융합하는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 햇빛을 흡수하고 전자쌍을 생성하는 것은 광촉매가 맡고 수소이온 환경은 바이오 촉매가 맡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물 분해 효율이 27% 수준까지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아직까지는 실험실 수준으로서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수두룩하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전환연구부 주현규 박사는 “광바이오 촉매 연구는 초보적 단계이지만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광바이오에 관련된 연구자들이 공학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면 생산 효율을 높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물이 연료로 사용될 그날
그동안 탈취나 항균 작용 등 유기물 분해 작용으로 관심을 모았던 광촉매. 태양광 에너지의 수소연료 변환 효율이 높아지면서 가격 경쟁력도 극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소에너지 연구에서 광촉매가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이 공상과학 소설 에서 “언젠가 물이 연료로 이용될 것이다. 물을 이루고 있는 수소와 산소는 각자 단독으로 혹은 둘이 함께 사용되어, 석탄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고갈되지 않는 열과 빛을 내게 될 것”이라며 130여 년 전에 예언한 수소시대. 여전히 수소시대에 들어가는 길은 좁기만 하다. 광촉매는 수소시대로 가는 고속도로를 뚫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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