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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벌떼처럼 일어났는가

등록 2005-12-15 00:00 수정 2020-05-03 04:24

황우석 교수 연구의 성패는 불완전한 의학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보완하는가에 달려…과학과 의학이 자신들의 언어와 논리를 가지고 논쟁에 뛰어들 시간을 제공해야

▣ 강한록/ 옥스퍼드대학교 의학사 박사과정 maggadharma@yahoo.co.kr

서울대 황우석 석좌교수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광적인 논란을 뒤로하고 옥스퍼드의 시골길을 배회하던 중, 월러스 스티븐스의 ‘검정 새를 바라보는 열세 가지 방식’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시인은 내적 심경과 이를 둘러싼 환경을 통해 13가지의 다양한 이미지를 묘사한다. 이 시가 떠오른 것은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생명윤리학을 담당하는 교수에게 소개받은 때문이다. 당시 생명윤리 교수는 의료윤리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으로 “경직된 기준에 빠져 현실적 해석 능력을 상실하는 것”을 꼽으면서 의료윤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자세를 검정새를 바라보는 것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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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개의 눈 덮인 산들 사이에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은 검정새의 눈동자였다. 나는 세 갈래 마음이었다. 제 품에 세 마리 검정새를 안고 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 검정새는 가을 바람 결에 선회하고, 그것은 무언극의 작은 한 부분이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하나다.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한 검정새는 하나다. 나는 어느 쪽을 선호해야 할지 모르겠다. 음조 변화의 아름다움일까? 간접적 관계의 아름다움일까? 검정새의 지저귐일까? 아니면 그 이후일까?…” -'검정새를 바라보는 열세 가지 방식'중

에이즈 치료약제 실험과 헬싱키 선언

이른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규범적인 질문을 근간으로 삼은 윤리학의 틀 안에서 ‘그놈은 나쁘고, 이것은 옳다’라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윤리적인 확실성’이 완결된 순간을 찾기는 어렵다. 윤리학의 시각에서 볼 때 당대는 항상 윤리적 공황 상태로 여겼음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4세기의 철학자 플라톤을 비롯해 많은 지식인들은 자신의 당대를 윤리적 공황에 빠져 있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서 있는 이 시간에 우리 앞에 놓인 사건들에 대해 기존의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 판단하는 것은, 이 세상에 검정새 하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 당연히 받아들인 윤리적 의견들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은 비단 윤리학자의 몫만이 아니다. 하나의 현상에 대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집단의 힘으로 심판을 내리기 전에, 다양한 차원의 해석을 시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대다수의 윤리학 관계자들은 황 교수가 불법으로 제공된 난자를 연구에 사용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의사 윤리와 의료 임상에 관한 기본적인 준칙으로 인정받고 있는 ‘헬싱키 선언’ 가운데, 황 교수가 고용 또는 상하 직급관계 등에 직접 연관된 사람이 임상시험을 할 때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제8조 규정을 어겼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규정을 연구원의 실험용 난자 제공을 금지하는 것이라고까지 포괄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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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황 교수는 윤리적 통찰이 부족했다고 밝히면서도, “내가 여자였다면 내 난자라도 제공했을 것”이라면서 연구원의 열정으로 난자를 제공한 것에 대한 일방적 비판에 의구심을 표시했다. 또한 서울대 수의대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이 조항이 연구원의 난자 제공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연구원 등 연구 특수관계인의 난자 제공 때 신중을 기하라는 것으로 해석했다.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 사회의 보편적 준칙을 따르는 것은 중요하다. 따라서 생명윤리에 대한 포괄적인 지침을 담은 헬싱키 선언이 우리나라의 의학 연구에도 금과옥조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헬싱키 선언의 경직성과 이에 대한 서구의 이중 기준을 따지지 않을 수는 없다.

우선 헬싱키 선언이 1964년에 서구의 특수한 상황에서 형성된 포괄적인 규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2005년의 현실적 상황에 적용될 때에는 조심스럽게 재고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헬싱키 선언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예컨대 에이즈 치료약제의 임상실험에서 헬싱키 선언은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했다. 지난 1987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개발한 에이즈 치료제 ‘지도부딘’(zidovudine)은 임신부에서 신생아로 이어지는 수직 감염을 막을 것으로 기대됐다. 이에 따라 서방 선진국은 1990년대 초반 지도부딘의 단기 처방이 효과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제3세계, 특히 사하라 남부지역에서 임상 연구를 했다.

의학적 물질주의 돌아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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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에이즈 감염 임신부들에게 비교 연구를 하려고 위약 복용 집단을 두었다는 데 있었다. 약물 임상실험에 필수적인 요소지만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대상으로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게 많은데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결국 두 그룹으로 나뉜 임신부들은 자신이 진짜 약을 먹는지 가짜 약을 먹는지 모르고 실험에 참가했다. 가짜 약을 처방받은 산모들은 치료받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끝내 자신들의 신생아가 죽어가는 고통을 목격해야 했다. 서구의 부유한 국가들에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실험이 아프리카에서 이루어졌고, 서구의 연구자들은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음에도 실험을 강행했던 것이다.

헬싱키 선언의 제29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새로운 방법을 채택할 때 얻어질 수 있는 이익과 위험, 부담 그리고 효과 등은 현재 적용하고 있는 가장 좋은 예방, 진단 및 치료법과 잘 비교돼야 한다. 이 사항은 알려진 예방, 진단 및 치료법이 없는 경우에 위약을 사용하거나 아무 처치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불행히도 헬싱키 선언의 제29조는 무엇이 임상그룹에 제공돼야 한다는 점만을 다루었을 뿐, 임상 동안에 아플 수 있는 임상 대상자들의 구체적인 관리와 치료에 대해서는 묵과하고 있다. 헬싱키 선언만으로는 가난하고 힘없는 국가들에서 이루어지는 임상실험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사실 헬싱키 선언은 1946년 제정된 뉘른베르크 강령의 영향을 받았다. 이 강령은 의료 연구 과정에서 지켜야 할 10가지의 윤리적인 지침을 담은 것으로 의료 연구에 관한 최초의 국제 규약이다. 현재의 많은 국제적 규제와 규약은 과거 홀로코스트라는 잔혹한 나치의 죄악을 경험한 서구인들의 역사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많은 의료윤리 기준들은 어떻게 의학적 연구가 규제돼야 하는가의 문제에 역점을 두게 된다. 옥스퍼드대학의 의료윤리학자인 토니 홉 교수는 “현재의 윤리 규약들은 오직 오용을 방지하는 데만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하면 의료연구의 좋은 점을 극대화하는가에 대한 건설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특수한 서구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형성된 헬싱키 선언의 포괄적인 규정만으로는 새롭게 이루어지는 모든 의학 연구들을 구속할 수 없다고 본다. 영국 또한 윤리 규정을 현실적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얼마 전에는 줄기세포 연구에 엄청난 예산을 배정하기도 했다. 이런 시점에서 국내에서 우리의 연구가 모두 비윤리적인 것이다라고 선언한다는 것은 한국의 의학 연구 가능성을 짓밟는 행위라 여길 만하다. 더불어 19세기에 등장해 오직 인간의 몸에 대한 객관적 관찰과 계량적 분석을 통해서만이 인간의 건강과 모든 질병이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던 의학적 물질주의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일이다.

황우석은 선인가 악인가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메리 셜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당대를 풍미하던 의학적 물질주의에 대한 악몽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현대 첨단의학에 대한 논쟁의 저변에는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인문주의자들의 막연한 공포심이 자리잡고 있다. 의학적 지식의 축적과 기술의 발달에 의학적 물질주의가 기여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감성과 영성을 부정한 기계론적 육체 관념들이 남긴 폐해 역시 엄청난 것이었다. 극단적인 의학적 물질주의의 역사적 경험이 현대 의학 연구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과 규제로까지 연결돼서는 안 될 것이다.

언젠가는 첨단의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막연한 전제는 재고돼야 한다. 종교계의 규범적인 대응과 사회적인 많은 윤리적 연구지침과 법률 등 첨단의학의 일탈을 규제할 많은 수단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규제와 감시만으로는 이미 첨단의학 연구의 진행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의학 기술의 발전을 인류의 질병치료와 건강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새로운 의학적 발전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오히려 큰 해를 낳은 사례로 19세기 영국의 반천연두 백신 운동을 꼽을 수 있다. 우두법을 내놓은 에드워드 제너는 실험 대상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다 자신의 신생아를 대상으로 접종했다. 효과는 입증했지만 종교적·사회적으로 엄청난 반대에 부닥쳤다. 1871년 영국 의회가 천연두 백신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반천연두 백신 운동이 극에 이르렀다. 의학적 불확실성에 대한 대중의 경계심과 불법 백신 시술로 인한 어린이들의 사망이 원인이었다. 1880년대에 천연두가 유럽 전역에 몰아쳤을 때 반천연두 백신 운동의 선봉에 섰던 잉글랜드의 글라스터 같은 도시는 초토화됐다.

지금도 의학적 성과는 의학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경제·사회·종교적인 후원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황 교수 연구의 진정한 성패는 우리가 얼마나 의학적인 불완전성을 과학적으로 보완하면서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회가 이끌어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막연한 공포감이나 이에 편승한 협소한 흑백논리만으로는 그의 작업이 성공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과학자나 의학자들의 다양한 전문적인 견해가 침몰해 있다. 황 교수와 그 연구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들은 흑백논리로 갈라져 있다. 마치 ‘민주-반민주’라는 낡은 이분법을 다시 보는 듯하다. 과학자나 의학자의 시선은 증발하고 민주투사와 애국애족의 논리만이 가득하다. ‘황우석은 선이다, 악이다’라는 윤리적인 판단이 이미 연역적으로 머리 속에 각인된 상태다.

과학과 의학이 나설 때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황우석이라는 이름이 대표하는 생명공학을 둘러싼 복잡한 현상에 내포된 자체 논리는 무시될 수밖에 없다. 너무나 쉽게 생명공학 종사자들의 행위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고, 실험실의 열정과 아픔은 온데간데 없다. 주변인들의 논리만이 가득하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과학과 의학이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열등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제라도 과학과 의학이 자신들의 언어와 논리를 가지고 논쟁에 뛰어들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쉬운 저잣거리의 언어로, 대중들과 과학적·의학적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지금 이과와 문과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을 가진다면 선진 과학입국이라는 말은 영원히 슬로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화방송에 시료 넘긴 건 천추의 한”

검증 논란 제2라운드… 황교수 쪽은 공개검증 택하지 않을 듯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서울대 황우석 석좌교수팀이 2005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환자 유래 배아 줄기세포 추출’ 논문이 안팎의 ‘2차 검증’ 요구에 휩싸여 있다. 애당초 논문의 진위 논란은 문화방송
팀의 DNA 지문을 분석한 결과 환자의 체세포와 맞춤형 줄기세포가 서로 일치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여기에 논문의 내용을 설명하는 ‘부록’(supplement) 형식의 지면에 실린 일부 사진이 중복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논문 검증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과학계 내부에서도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12월9일 서울대 생명과학부 등에 속한 20여 명의 젊은 교수들은 “논문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단순한 편집상의 오류라고 보기엔 무리한 부분이 많고, 줄기세포 사진뿐 아니라 DNA 지문 분석 데이터 중 상당수가 석연치 않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사이언스>의 도널드 케네디 편집장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논문이 어떻게 처리돼왔는지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면서 “아직까지 논문의 과학적 결론에 영향을 줄 만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환자 유래 배아 줄기세포에 관련된 과학적 데이터의 유효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서울대 자체 검증’과 ‘제3기관의 검증’ ‘후속 논문으로 입증’ 등의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포항공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산하 과학기술 관련 설문 사이트인 ‘사이온’(SciON)이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벌인 설문조사에서 참가 연구자(44명)의 66%가 ‘국내 과학계 전문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음은 ‘황 교수의 해명으로 끝내야 한다’(18%), ‘문화방송의 잘못이기에 대응할 필요가 없다’(9%) 등의 순이었다. 이대로 논란을 덮을 수 없다는 의견이 대세인 셈이다.
하지만 논문의 진위 논란이 쉽게 가라앉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논문에 제기된 의혹을 해소할 방법은 복잡하지 않지만 그로 인한 파장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황 교수팀의 한 관계자는 “문화방송이 주도한 1차 검증에 대해 해외 학계의 반응이 좋지 않다”면서 “황 교수도 시료를 문화방송에 넘긴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여기엔 논문의 진실성에 한치의 의혹도 없기에 시료를 넘겼는데, 검증기관이 시료를 잘못 사용하는 등 미숙하게 처리하면서 의혹만 부풀려놓았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황 교수팀은 어떻게 논문에 제기된 의혹을 씻어낼 것인가. 일단 황 교수팀은 과학 논문에 관련된 공개 검증 방식을 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험실에서 관리되는 줄기세포’에서 샘플을 떼어내 검증하는 것은 실험 당시의 상황과 차이가 있고, 어떤 식으로든 기밀이 유출될 우려가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공개 검증이 이뤄진다면 앞으로 해외 공동 연구를 하는 데도 걸림돌이 된다는 사정도 있다. “검증 요구가 있을 때마다 ‘시달려야’ 한다면 어떤 해외 과학자가 공동 연구를 하겠냐”는 것이다.
이렇게 논문 검증에 선뜻 나서지 않는 데는 논문 검증 과정에서 이런저런 논란이 불거지면 또다시 몇 개월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다. 의혹에 발목이 잡혀 있기보다는 환자 유래 배아 줄기세포의 후속 연구로 의혹을 한꺼번에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황 교수팀의 이병천 교수와 강성근 교수 등은 후속 논문 집필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황 교수팀의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아노미 상태에 있는 연구팀을 추스르고, 국제 과학계와의 관계를 복원하는 게 의혹 해소보다 급선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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