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화 스트레스 검사’와 항산화제 열풍에 대한 활성산소의 항변
비타민 제제에 돈 쓰지 말고 체내에 적절히 존재하도록 채소 등 섭취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요즘 항산화제 열풍이라고 하더군요. 어디선가 내가 ‘활성산소’라는 사실을 고백했다가 몰매 맞아 죽는 줄 알았습니다. 내가 인체에서 세포를 늙고 병들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내가 노화의 주범이며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더군요. 그뿐만이 아니죠. 내가 미토콘드리아에서 빠져나오면서 세포의 단백질이나 지질 등을 파괴하는 탓에 사람들이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걸린다는 말도 빠지지 않지요. 인체에 몇분이라도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호흡이 멈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 ‘활성’이라는 말이 붙었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것입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인지 알면서 그렇게 구박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면역체계에서 중요한 구실 한다
이제는 내가 멸시받는 게 당황스럽지도 않습니다. 나를 잡는 각종 제품이 시장에서 판치고 있는 게 하루이틀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참을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올해 초에는 신체의 항산화 능력을 파악한다는 ‘바이오포토닉 스캐너’(Biophotonic Scanner)라는 기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지요. 내가 인체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항산화 능력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피부에 분포해 있는 항산화 물질인 카로티노이드 분자를 측정하는 기기였습니다. 이 분자가 푸른색 레이저를 만나면 파장을 변화시켜 녹색으로 바꾸는 성질이 있는 것을 이용해 손바닥 같은 부위에 레이저를 쬐어주는 식으로 검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른바 ‘산화 스트레스 검사’라고 하더군요.
바이오포토닉 스캐너는 국내에 130여대가 들어왔는데 여러분 가운데도 기기를 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기기에 손바닥을 댄 사람이라면 파마넥스의 건강기능식품을 구입했을 것입니다. 인체에 나를 잡는 항산화 물질이 부족하다면서 각종 항산화 물질이 들어 있는 보조식품을 복용할 것을 권했을 테니까요. 아무리 건강염려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한달에 10여만원이 아까워 세포가 늙어가는 것을 방치하지는 않겠지요. 요즘 항산화제로 판매되는 제품은 각종 비타민 제제인데 나를 잡는 게 복용 목적이라면 다시 생각해볼 일입니다.
그나마 공짜로 항산화 능력을 확인했다면 다행스럽겠네요. 늙어가는 것이 두려워 노화방지 클리닉 문을 두드린 사람이라면 수십만원씩 내고 산화 스트레스 검사를 받았을 것입니다.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기 이전에 나로 인한 인체 손상을 막으려고 30대 중·후반부터 노화방지 클리닉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 세계적인 노화 연구소와 제휴했다고 선전하는 노화방지 클리닉에선 혈액과 소변 등으로 검사하지요. 산화 스트레스 정도를 정밀하게 파악하려면 외국에 샘플을 보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면 비타민과 멜라토닌 등을 이용한 항산화 요법과 나를 제거하면서 세포 기능을 회복한다는 태반주사 요법도 권유받았을 것입니다.
혹시 항산화 요법을 통해 세포가 늙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나요. 그렇다면 항산화제로 인한 임상실험을 보고서로 만들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투고해보세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대한 연구보다 탁월한 성과로 노벨상을 예약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은 나를 둘러싼 오해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항산화제가 인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노화에 관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항산화제를 보충하더라도 암을 예방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나를 내세워 잇속을 챙기려는 사람들에겐 안타까운 일이겠지만요.
누구를 위한 항산화제 치료인가
이제라도 나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합니다. 애당초 나는 모계로 이어지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발전소에서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할 때 만들어집니다. 사람이 하루에 들이마시는 산소 가운데 5%가량이 ‘초과산화물’이라는 이름의 나로 변신합니다. 내게 문제가 있다면 반응성이 높아 세포를 산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나는 100만분의 1초가량 인체에 머물지만 뛰어난 반응성으로 연쇄반응을 일으켜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항산화제로 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것이겠지요. 하지만 내가 인체에서 마구잡이로 활동하는 게 아닙니다. 나도 할 말이 있다고요.
만일 내가 인체에 없다면 생명현상을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면역체계에서 중요한 구실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혈구가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박테리아나 곰팡이 같은 병원균을 만나면 내가 만들어집니다. 항암제가 인체에 투입될 때 내가 많이 생성되도록 하는 것도 면역기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미토콘드리아 발전소에서 사고로 생성된다 해도 나름대로 인체에 이로운 작용을 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았습니다. 더구나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는 매로 다스리는 좋은 벗들이 활동을 개시합니다.
지금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나를 파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불편해도 여러분의 돈 낭비를 막으려면 이야기하는 게 낫겠지요. 인체에는 내가 날뛰는 것을 막는 효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초과산화물 불균등화 효소’(SOD)입니다. 항산화 기능을 하는 SOD 효소는 간·심장·위·췌장·혈액·뇌 등 모든 인체 부위에서 내가 날뛰지 못하도록 하지요. 애써 항산화제 처방을 받지 않아도 채소와 과일을 많이 섭취하면 됩니다. 음식을 적게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아예 내가 지나치게 많이 생성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요.
소식하면서 담배 연기 피하라
사정이 이럴진대 항산화제로 노화를 막고 질병을 예방해야 하나요. 최근에는 내가 미토콘드리아에 장애를 일으킨다는 가설이 잘못됐다는 연구결과도 나왔어요. 설령 내가 노화에 관련돼 있다 해도 수많은 원인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자연스러운 노화를 인위적인 방법으로 막으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항산화제의 대표주자인 비타민 제제의 효과도 불명확합니다. 항산화제 대열에 합류한 비타민B와 엽산 등을 함께 복용한다고 심장병이나 뇌졸중이 예방되는 것도 아니고요. 비타민C 역시 감기를 막지 못하고 암이나 심장병을 줄인다는 증거도 부족합니다. 자칫 비타민 제제를 복용하다 골다공증에 걸릴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내가 무죄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인체에서 좋은 기능만 하는 게 아니니까요. 문제는 내가 적절한 만큼 존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내가 많이 생성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예컨대 소식을 하면서 담배 연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면 항산화 기능이 뛰어난 식품을 섭취하세요. 쓸데없는 곳에 돈 쓰지 말라는 말입니다. 비타민 제제를 과신하다 나로 인한 것보다 더한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요. 과유불급이라는 말 알고 있겠지요. 비타민도 체내에 너무 많으면 모자라느니만 못합니다.
* 도움말 주신 분: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교 박진호 교수,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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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30대에 접어들면 활성산소 제거 효소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면서 활성산소가 인체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인체의 노화 과정으로서 고가의 항산화 요법을 실시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항산화 보충제는 특정 종류의 물질만 함유해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여기기 어렵다. 이보다는 항산화 효과가 있는 식품을 섭취해 체내에서 진행되는 화학적 산화 과정을 늦추는 게 낫다.
실제로 과일과 채소는 다양한 항산화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이 물질들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예컨대 비타민E를 보충할 때 비타민 제제를 복용하는 것보다 토마토를 먹는 게 효과적이다. 토마토에는 베타카로틴·라이코펜·플라보노이드 등이 들어 있다. 이들이 비타민E와 상호작용하면 항산화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이처럼 굳이 비타민 제제 처방을 받지 않아도 활성산소를 다스릴 방법이 많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팥을 비롯한 견과류, 향신료 등이 활성산소에 의한 인체 손상을 막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감자와 계피, 피칸 등도 심장질환이나 알츠하이머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항산화 성분을 다량 함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식품마다 체내 흡수와 이용률이 다르기에 항산화 성분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많이 먹는 게 상책은 아니다. 항산화 성분이 있는 식품을 골고루 먹는 게 좋다.
누구나 식탁의 메뉴만 바꿔도 비타민C와 E, 알파리포산, 엽산 등 항산화 성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미국 농무부는 식품별 항산화력을 파악해 권장식품 목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1회에 섭취하는 양으로 항산화 기능이 뛰어난 식품으로는, 콩(반컵) 블루베리(한컵), 붉은 강낭콩(반컵), 얼룩콩(반컵), 크랜베리(반컵), 조리된 아티초크(한컵) 블랙베리(한컵), 자두(한개), 재즈베리(한컵), 딸기(한컵), 사과(한개), 체리(한컵), 감자(한개) 등이 꼽혔다. 국내에서 주로 섭취하는 과일과 채소를 중심으로 항산화력을 살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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