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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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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갈등을 ‘관리’하겠다고?

등록 2005-10-14 00:00 수정 2020-05-03 04:24

갈등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는 ‘공공기관의 갈등관리에 관한 법률’
사회적 다양성을 위한 우리 사회의 일부로 보고 시민 참여를 통해 해결해야

▣ 김동광/ 과학저술가 kwahak@korea.ac.kr

우리 사회는 참으로 많은 변화를 한꺼번에 겪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표출되면서 다양한 사회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정부의 공공정책 입안과 시행 그리고 그 방식을 둘러싸고 격렬한 갈등이 나타나는 것이 최근 우리나라 갈등 양상의 특징이다. 핵폐기물 처리장이나 천성산 논쟁 등 굵직한 사회적 쟁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정부가 원인을 제공하고, 이후 표출된 갈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무원칙한 졸속 대응으로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일련의 과정들이 되풀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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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오염자에게 환경 관리 맡기는 격”

지난 수년 동안 정부의 공공정책, 특히 환경과 연관된 정책 수립과 시행 과정에서 야기된 갈등을 다루는 방식에서 우리 사회는 미숙함을 드러냈다. 근본적인 원인은 오랫동안 개발과 근대화라는 구호에 익숙해왔던 시민사회에 환경, 생태, 숙의, 사회적 합의 등 새로운 가치와 접근 방식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한꺼번에 쏟아져들어왔다는 데 있다. 게다가 독재와 권위주의 속에서 기존 질서나 관의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길들여진 사회적 심상이 갈등이나 분쟁 양상을 견디지 못하고 어떤 식으로든 빨리 갈등을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과 조급증으로 치닫는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지낸 상당수의 기성세대들에게 “갈등은 곧 혼란이며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라는 등식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갈등의 조짐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과거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일종의 심리적 퇴행 현상까지 나타나곤 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참여정부는 2004년 이후 갈등관리 시스템 구축 방안을 논의했고, 그 뒤 지속발전가능위원회를 중심으로 갈등관리 기본법 제정팀을 구성해 시안을 마련해서 지난 5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공공기관의 갈등관리에 관한 법률’을 상정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공공기관이 정책을 결정하기 이전에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고 갈등 구조를 파악하는 갈등영향 분석 실시, 갈등관리 심의위원회 설치 그리고 참여적 의사결정 방법의 활용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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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환경단체인 녹색연합 부설 녹색사회연구소는 ‘환경갈등, 관리의 대상인가?’라는 제목으로 갈등관리법의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이날 발표자와 패널 대다수는 정부가 사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갈등 문제를 다루는 기본적인 접근 방식, 법안의 각 조항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 그리고 충분한 공론화나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채 이번 회기에 법안을 처리하려는 태도 등에 대해 지적했다.

토론회의 발표자로 나선 하승수 변호사는 “그동안 갈등을 유발해온 원인 제공자인 정부가 왜 스스로 갈등을 유발했는지 성찰하지도 않은 채 갈등을 관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환경 오염자에게 환경관리를 맡겨달라는 격”이라고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는 중요한 원인을 “중앙정부 고위 관료에서 지방자치단체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팽배한 관료주의”라고 지적하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를 배제하고 시민을 회유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관료주의에 대한 반성 없이 갈등을 관리하겠다는 것은 또 다른 관료주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법안의 내용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인 갈등영향 분석이나 참여적 의사결정 방법 채택 등이 의무적인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경우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가장 많은 논의가 집중된 부분은 과연 갈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법안으로 표출된 정부의 관점에서 갈등은 해결되거나 처리돼야 할 무엇이며, 정부가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여기에서 갈등은 부정적이고, 일탈적이며, 가급적이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으로 간주된다. 반면 많은 참석자들이 갈등을 사회 민주화와 가치 다양화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과정, 또는 넓은 의미에서 잘못된 권위나 이데올로기를 해체시키는 역동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까지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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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오늘날 빚어지는 갈등의 주된 특징은 그 속에 가치가 깊이 배어 있다는 점이다. 최근 공공정책 입안을 둘러싼 갈등은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 사이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거의 대부분 가치의 문제가 개입된다. 사실 요즈음의 갈등 상황에서 이해관계와 가치를 구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법안은 갈등을 “법령을 개정하거나 집행하는 과정 또는 정책사업 계획을 수립하거나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의 충돌”로 규정함으로써(3조) 가치 문제를 억지로 배제했다. 이것은 갈등을 관리 대상으로 삼기 위한 무리수다. 현실에서 순수한 이해관계로만 빚어지는 갈등이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 사회에서 갈등이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존재하며 피할 수 없다. 피해서도 안 된다. 누군가 중요한 사회적 가치에 대한 정의를 독점하지 않는 한(우리는 그런 사회를 ‘전체주의’라 부른다), 다양한 가치를 주장하는 개인과 집단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갈등은 병리적이거나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박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사회가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끌어안고 가야 할 우리 사회의 일부다.

1960년대 이래 우리 사회는 많은 것들을 압축적으로 진행해왔다. 경제 성장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후발국의 이점을 최대로 살려 시행착오를 줄이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상당한 효과를 거두면서(또는 그렇게 간주되면서) 압축화는 하나의 전형이 된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남의 것을 도입할 수 없는 환경·도덕·윤리와 같은 분야에서도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급증이 발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물론 정부가 나서서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벌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쟁점들이 법을 제정하고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으로만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걸핏하면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고 소수 재판관들의 판단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풍조가 유행하는 것도 거쳐야 할 과정을 생략하고 단시간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급증이 투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론화와 숙의 공간을 만들어라

사회적 갈등에 대해서는 그 갈등을 야기한 쟁점을 충분히 공론화해서 이해당사자들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 숙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숙의란 곰삭을 정도로 논의가 무르익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논의와 사회적 학습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의 공간에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이 유입될 필요가 있으며, 전문가뿐만 아니라 보통 시민들이 참여하는 ‘참여적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지금 사회적 갈등에 대해 정작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공론화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숙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숙의적 관행이 정착되지 않은 성급한 제도화는 참여적 의사결정을 당장의 갈등을 해결하는 기법이나 정당화 수단으로 변질시킬 우려가 있으며, 자칫 여러 갈등 관련 조직들이 만들어져 오히려 갈등에 대한 대응을 독점하려는 경향을 낳을 수 있다.



4천만년에 1초의 오차를 향해

[숨은 1mm의 과학/ 초정밀 시계]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광학 분야 과학자 3명이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 로이 글라우버는 광자가 결에 맞게 움직인다는 ‘빛의 결맞음 이론’을 정립한 공로로,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선임 과학자 존 홀과 독일 막스 플랑크 양자광학연구소 소장 테오도어 헨슈는 레이저 정밀 분광학 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평가받았다. 글라우버의 이론은 홀과 헨슈이 개발한 분광기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기술을 통해 초정밀 시계와 위치확인시스템(GPS)의 첨단화를 이룰 수 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손목시계는 한달에 1, 2초의 오차를 예사로 여긴다. 하지만 세슘이나 루비듐 같은 물질을 이용한 첨단 원자시계는 1천만년에 1초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최근 원자시계는 마이크로칩 크기로 줄어들어 정밀도를 10-16 수준으로 끌어올려 우주 공간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초정밀 시계는 GPS의 오차를 개선하고 정보처리시스템이나 초미세 가공 등 첨단과학을 새로운 단계에 진입시키고 상대성 원리의 증명 등 자연과학에도 이바지한다.
이런 원자시계가 끊임없이 정밀도를 높이는 데 분광기술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광학 눈금자를 만들어 더욱 나은 주파수 센서가 되도록 원자들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해 원자에 기반한 광학 원자시계를 개발한다. 헨슈 박사팀은 1기가 헤르츠의 속도로 펄스를 내는 기준 레이저를 사용해 광학 주파수를 직접 측정하는 방법을 발표했고, 홀 박사는 수은이나 인듐 등의 이온을 활용한 광학 시계장치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모든 시계는 진동자와 계수기를 기본 요소로 한다. 원자시계는 여기에 원자 기준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피드백 시스템을 추가해야 한다. 최첨단 광이온시계는 자외선 탐지 레이저가 진동자 구실을 하고, 적외선 레이저의 펄스가 계수기로 쓰인다. 요즘 NIST는 얽힘 상태의 원자를 이용해 4천만년에 1초의 오류를 보이는 시계를 개발하려고 한다. 기존의 세슘 원자시계보다 100배 이상 정확한 초정밀 시계다. 이를 위해선 펨토초(1펨토초는 10∼15초) 단위에서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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