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채널을 찾아가는 과학의 소통구조… 이공계-인문사회계 ‘두 문화’ 현상을 깨라
▣ 김동광/ 고려대 강사·과학저술가 kwahak@korea.ac.kr
지난 10월21일 제주도에서 열린 대한화학회의 학술대회는 여느 학회와 다름없이 수십개의 분과가 개설되어 많은 학자들이 연관 분야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유독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화학과 화학자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생경한 주제를 다룬 분과였다. 이 분과에 초청된 발표자들은 화학자가 아니라 사회학·과학사·과학사회학 등을 연구하는 타 분야의 연구자들과 산업계 전문가, 그리고 현장 환경운동가였다.
5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국내 자연과학 분야의 학회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평가받는 학회에서 자발적으로 이러한 주제의 분과를 개설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더군다나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현장 활동가까지 초빙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화학과 화학자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은 우리나라 이학(理學) 학회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로 높이 평가될 것이다.
사회학자·환경운동가의 화학학회 참가
이렇게 과학자와 인문학자, 과학기술학자·산업계 전문가 그리고 환경운동가가 한 자리에 모여 소통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전 화학회장인 진정일 고려대 교수를 비롯해서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높은 관심을 가진 선구적 학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그동안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라는 틀에 갇혀 학자들 사이에서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학계의 현실에 대한 성찰과 급격한 상황 변화로 과학자들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역할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조직 책임자인 도춘호 순천대 화학과 교수는 이 심포지엄을 개최한 목적을 “최근 화학 지식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더 직접적이고 즉시적으로 되고, 그 파급효과도 국지적 수준을 넘어 전지구적으로 확장되면서 과거에는 화학자들이 간과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던 각종 기술사회적 문제에 대한 화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나 책임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화학과 화학자의 사명을 학제적으로 토론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사이의 벽이 훨씬 두껍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40여년 전에 영국의 C. P. 스노가 ‘두 문화’라는 개념으로 제기했다. 처음 이 용어가 등장했던 유럽에서도 아직까지 두 문화의 극복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고등학교 2학년부터 이과, 문과로 나뉘어 양분된 세계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우리의 상황에서는 특히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구분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예를 들어 필자가 개설하는 교양수업에 참가하는 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토론 수업을 하는 경우에도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전공에 따라 큰 편차를 나타낸다. 학년이나 성별과 같은 다른 변수들에 비해서 훨씬 강한 응집력과 충성도를 보인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든, 겨우 1년 남짓 대학 생활을 보낸 학생이든 모두 ‘두 문화’에서 자신이 속한 진영을 뚜렷하게 의식하고 매우 이른 시기에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소속한 집단에 충실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됐고 상당 부분 장려됐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2000년대, 과학자는 달라야 한다
아직까지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두 문화 현상이 두드러진 이유 중에는 압축적인 근대화와 경제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이 지나치게 도구적으로 인식됐고, 그에 따라 다른 학문 분야나 사회 문화와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만 추동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더구나 근대화 과정이 독재 정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다른 사회적 가치나 문화적 관점이 개입할 만한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과학을 둘러싼 상황은 1960년대와는 크게 달라졌다. 2000년에 제정된 과학기술 기본법에도 명시됐듯이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접점과 사회적 의제에 대한 인식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한 과제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과학기술의 개발 방향과 그 영향에 대한 평가에 과거처럼 단일한 목적이나 가치가 일방적으로 통용될 수 없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가치가 유입돼야 한다는 인식인 셈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기술사회적 문제에 대한 과학자들의 참여와 책임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화학회에서 열린 심포지엄은 과학자들 스스로 사회적 역할을 천명하고 의제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개최될 예정인 기술영향평가(TA) 역시 과학자와 인문사회학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중요한 소통구조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해 처음 ‘나노-생명공학-정보기술’(NBIT) 융합기술을 주제로 열렸던 기술영향평가는 중요한 과학기술 분야가 미칠 사회적 영향을 미리 가늠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이다. 올해에는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 지난해의 기술영향평가에 대한 메타 평가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기술영향평가를 우리나라 상황에 제대로 접목할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영향평가는 해당 기술의 사회·윤리·문화·안전 등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과학자와 인문사회학자, 시민단체 관계자, 일반 시민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논의하는 장이기 때문에 영향평가라는 목적 이외에도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월8일 한 시민단체가 주최했던 ‘전력정책의 미래에 대한 시민합의회의’도 새로운 소통구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도로 꼽힌다. 특히 시민합의회의는 이 지면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소개됐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주제를 놓고 과학자와 정책 입안자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폭넓은 토론을 통해 상호 이해를 높이고 숙의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최근 크게 주목받고 있다.
기술영향평가·합의회의… 긍정적인 모색
이처럼 학회·기술영향평가·합의회의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새롭게 열리고 있는 과학자와 인문학자, 과학자와 시민사회 사이의 새로운 소통구조는 서로의 입장에 대한 오해와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비효율적인 논쟁을 넘어 합리적인 비판과 사회적 합의를 통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시도에서 공통적인 요소는 지금까지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과학기술의 가치가 부여되고 그 가치가 일방적으로 과학자 공동체와 시민사회에 통용되던 관행이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과학기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유입돼야 하며, 복수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상대방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공통의 목표를 합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활발하고 격의 없는 의사소통은 이 모든 노력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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