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반을 향해 치닫는 아테네 올림픽에서 스포츠 과학의 현주소를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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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테네올림픽이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다. 메달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심야 응원에 밤잠을 설치는 ‘올빼미족’들도 늘어나고 있다. 태풍 메기가 열대야를 잠재운 게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며 선수들간의 뜨거운 경쟁에 빠지다 보면 놓치는 게 적지 않다. 0.1초 혹은 0.1점으로 승부를 가르는 올림픽 경기는 첨단 스포츠 과학의 향연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거기엔 경기장에 드러나지 않는 과학의 힘도 수두룩하다. 기왕 밤잠을 설쳐야 한다면 올림픽의 또 다른 재미를 스포츠 과학에서 느껴볼 만하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스포츠 과학의 현주소를 확인하도록 하자. - 편집자 |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선수는 과학을 신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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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선수들의 신발에도 첨단이 숨쉬고 있다. 특히 마라톤 선수들의 신발은 과학 이론을 집대성한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선수들이 2시간10분 안팎을 뛰는 동안 신발의 내부 온도가 무려 43~44도까지 올라가고 습도는 95%에 이른다. 마치 한증막을 방불케 하는 조건에서 발은 물집이 생기고 녹초가 되기 십상이다. 공기가 자유롭게 흘러야만 습기를 배출하고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마라톤화가 공기를 머금었다가 곧바로 내보낼 수 있는 ‘숨 쉬는 소재’를 찾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봉주 선수는 아식스사가 제작한 폴리에스테르 소재를 갑피로 사용한 신발을 신는다. 충격열과 마찰열로 인해 발에 물집이 생기는 것을 막고 경기 시간 내내 온도 변화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스피린터용 신발도 추진력을 강화하는 신기술이 적용된다. 남자 육상 100m 연속 우승을 노리는 미국의 모리스 그린은 아디다스의 ‘데몰리셔’라는 스파이크화를 신는다. 이 신발은 공기의 저항을 줄이려고 끈 대신 지퍼를 사용했으며 강화 플라스틱으로 밑창을 만들어 발뒤꿈치를 지지하는 스프링 구실을 한다.
마라톤 선수들이 신는 양말에도 신기술이 적용될 전망이다. 보통의 섬유는 박테리아 성장에 좋은 재질이다. 오래 달리는 선수들의 양말에서 서식하는 박테리아 효모는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스포츠 양말 섬유에 수영장 소독에 이용하는 핼러민(Halamines)이라는 염소함유 분자를 첨가하면 박테리아가 박멸된다. 핼러민을 첨가한 섬유는 양말이나 유니폼 등에 폭넓게 적용돼 선수들의 건강을 지킬 것으로 기대된다. 운동선수들이 쾌적한 기분을 느끼면 신기록에 쉽게 다가설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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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라켓에 지능을 이식

지능형 전자공학 기술이 적용된 영리한 스포츠용품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미 공이 맞은 위치가 표시되는 테니스 라켓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세계 랭킹 1위 로거 페더러(스위스)를 비롯해 시드니올림픽 우승자 마라 사핀(러시아), 5번 시드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스페인) 등 내로라 하는 선수들이 일찌감치 보따리를 챙긴 아테네올림픽에서 테니스 라켓을 유심히 살펴볼 만하다. 테니스 스타 앤드리 애거시가 사용해 관심을 모은 ‘헤드 스포츠 AG’ 라켓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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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 스포츠 AG 라켓은 압전 재료를 맞춤형 아날로그칩과 결합해 볼을 칠 때 가해지는 기계적인 에너지를 전기적 에너지로 바꿔준다. 외부의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고도 작동되는 ‘헤드칩 시스템’이 장착된 것이다. 마이크로칩이 라켓 손잡이에 들어가 힘의 방향을 일정한 곳으로 향하게 하고 강력한 파워를 낼 수 있도록 한다. 이때 손떨림도 제거돼 편안하게 라켓을 쥘 수 있다. 이처럼 스스로 전원을 만들어내는 칩은 ‘활성 광섬유 요소’(AFC)가 라켓의 기계 이음쇠에 장착됐다.
스포츠용품 업체인 헤드사가 개발한 칩 시스템에는 AFC와 함께 구부러진 회로와 마이크로칩 등이 들어 있다. 지능형 광섬유라 불리는 AFC은 압전 재료와 이를 칩과 연결하는 전전회로로 이뤄져 있다. 이로 인해 전압과 전류가 마이크로칩에 송수신되면서 힘을 더하고 떨림을 줄인다. 압전 재료가 볼의 충격으로 발생하는 기계적 떨림을 전기 신호로 바꾸고, 칩이 에너지를 모아서 방출 시점을 결정한다. 이로 인해 테니스 라켓 중간 부위에 적극적인 반발력이 생성돼 떨림을 줄이는 것이다.
승부차기는 도박이 아니라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영국의 과학자들은 축구의 전·후반 경기에서 승부가 판가름나지 않았을 때 펼치는 승부차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골이 결정되는 0.6초 안팎의 숨막히는 순간에 관람객과 시청자들의 심장 발작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실력으로 뒤진 팀에게 행운을 안겨주는 일이 많아 요행수로 승자를 가리며 대중의 건강을 해친다는 비난에도 승부차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연장전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승부차기를 피할 수 없다.
승부차기는 골문의 11m 전방에서 이뤄진다. 선수가 킥을 했을 때 공의 속도는 초속 22m에 이르러 골라인에 이르는 데 약 0.55초가 소요된다. 문지기가 공이 날아오는 방향을 알아차리고 몸을 날리는 데 필요한 ‘반응시간’은 0.66초나 된다. 몸을 날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차는 선수가 골을 넣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차는 선수가 모두 골을 넣는 것은 아니다. 유달리 승부차기에 강한 문지기도 있다. 승부차기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기에도 과학이 통한다고 한다.
영국의 존 무러스 대학 마크 윌리엄스 연구원은 승부차기에 나선 선수들이 공을 발로 차기 직전의 모습을 분석해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았다. 그것은 승부차기에서 문지기가 골을 막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는 것은 민첩한 손과 발이 아니라 좋은 눈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아마추어 문지기보다 상대방 선수의 무릎에 시선을 집중하는 프로구단 문지기가 골을 훨씬 많이 막아낸다고 한다. 공을 차려는 발의 각도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상을 잡는 첨단 기기들

스포츠 선수들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남자 유도 100kg급 이하에서 은메달을 거머쥔 장성호 선수는 왼팔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데다 양쪽 무릎과 발목, 팔꿈치 등 전신이 종합병동이고 배드민턴 남자복식에서 금메달을 딴 하태권 선수도 허리 부상으로 선수 생명에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들의 강인한 정신력에서 승리가 비롯된 것이다. 사실 스포츠 선수가 정신력에만 의존하는 것은 후진적일 수밖에 없다. 첨단 영상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부상 부위를 정밀하게 진단받고 통증을 줄이는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말브르크 행동분석이라는 생체역학 회사에서 개발한 첨단영상 시스템은 운동할 때 골격의 움직임을 3차원 적외선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 영상 시스템은 부상을 당하기 전에 선수의 어깨와 팔꿈치, 엉덩이, 무릎, 발목 등 40여개 부위에 센서를 부착한 뒤 종목에 따른 동작을 취할 때 전위선 카메라로 센서의 빛을 탐지해 3차원 골격 영상을 만든다. 골격 영상은 다양한 각도에서 선수를 살피고 회전까지 가능하다. 만일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같은 동작을 취하도록 해서 정밀하게 진단한다.
이렇게 부상 부위를 진단한 다음에는 미국의 쿨시스템사가 개발한 ‘경기력 회복 시스템’을 이용해볼 만하다. 우주복의 압력과 온도를 제어하는 정교한 튜브형 챔버를 적용한 이 시스템은 차세대 냉각·압축 기술을 이용해 선수들이 부상에서 빠르게 벗어나도록 돕는다. 선수들이 근육통에 시달리거나 쥐가 났을 때 냉각기술로 부상 부위를 치료하고 일시적으로 압력을 가해 붓지 않도록 한다. 아테네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이 부상을 당했을 때 얼음주머니 대신 대형 공구상자 크기의 장치를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유체역학 이용한 전신 수영복

남자 수영복의 삼각팬티 시대는 종말을 고하는가. 이번 아테네올림픽 수영 경기장 출발대의 선수들은 대부분 전신 수영복을 착용하고 있다. 머리에서 발목까지 얼굴과 손을 제외하고 온몸을 감싸는 전신 수영복은 지난 1998년 아디다스사가 처음으로 개발했다. 전신 수영복 착용으로 널리 알려진 선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이안 소프. 그는 물고기처럼 생긴 전신 수영복을 입고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를 획득한 뒤 수영 신동 마이클 펠프스(미국)이 등장하기 전까지 ‘수영의 황제’로 군림했다.
전신 수영복은 마치 상어의 표면처럼 수영복 표면에 돌기 구조가 있다. 이것은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하려는 것으로 비행기 제작에도 활용되고 있다. 아디다스사는 아테네올림픽에서 새로 개발한 전신 수영복 ‘제트컨셉트’(JETCONCEPT)를 선보였다. 이 수영복은 물속에서 선수가 느끼는 물에 대한 저항을 줄일 뿐만 아니라 수영자의 몸 주위에 흐르는 물의 유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수영복 표면에 있는 작은 리블레츠(riblets)로 물의 난류를 증대시키고 수영자의 뒤에서 발생하는 후류를 감소시킨다.
대부분의 전신 수영복은 수영자의 물에 대한 저항의 8%에 해당하는 마찰 저항을 줄이는 데 기술력을 집중한다. 이에 비해 아디다스사의 제트컨셉트는 수영자에게 작용하는 전체 저항의 56%나 되는 수영자의 영법에 의해 발생하는 ‘폼드랙’을 줄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수영복에 리블레츠를 적용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리블레츠는 옷감 표면에 일정한 형태의 틀을 대고 실리콘을 주입해 만들었다. 한편 마이클 펠프스는 상어의 거칠고 부드러운 두 가지 형태의 돌기를 적용한 스피도의 ‘패스트 스킨Ⅱ’를 주로 입고 수영 5관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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