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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검사해 성격 고친다?

등록 2004-07-22 00:00 수정 2020-05-03 04:23

일상으로 들어오는 유전자 비즈니스… 질병 조기 진단도 어려운데 ‘미래 예측’ 미끼로 일부 사행심 조장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머리카락 다섯 올로 미래를 예측한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인류의 놀라운 업적으로 꼽히는 DNA를 통해 이뤄진다면 섣불리 의심의 눈초리를 내보이기 어려울 것이다. 평소 사주에 관심이 많아 ‘3재’라도 들면 부적 몇개쯤은 장만하던 주부 이정옥(34)씨도 그랬다. 다섯살배기 아들의 앞날은 그의 주요 관심사였다. 서너곳의 운명철학관에서 사주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파트 단지에 ‘머리카락 다섯 올’씩 뽑히는 아이들이 늘면서 과학의 힘으로 아들의 미래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카락을 뽑지 않으면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엄마로 여겨지는 듯했다.

머리카락 검사 “체질 · 인성 알려드려요”

비록 머리카락 다섯 올을 뽑아 보내며 기본 항목만 검사하는 데 13만2천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해야 했지만 아까워할 수 없었다. 2주일 정도만 지나면 아들의 미래를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건강과 타고난 재능을 알면 키우는 데 도움이 되잖아요.” 그가 검사 결과를 완전히 신뢰하는 것도 아니었다. “운세를 보는 것보다야 믿을 게 있지 않겠어요. 사상체질과 인성검사도 있으니 뭔가 도움될 만한 정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유전자가 자기소개서로 통하는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형국이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유전자의 구성요소인 DNA 구조를 밝혀낸 지 50여년 만에 유전자 비즈니스가 일상 속으로 다가오고 있다. 장수와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처럼 신통력을 부리고 있다. (주)대덕유전자기술은 유전자 검사로 미래를 예측하는 대표적인 생명공학 벤처기업이다. 이 회사는 신개념 학습능력 평가프로그램이라는 ‘유체인 검사’(유전자·사상체질·인성 검사)를 널리 보급하고 있다. 현재 유전적 질환에 관한 소정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400여명의 ‘유전자 상담사’가 전국 70여개 지사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자 진단 업체들은 유전자의 염색체 모양을 비교 분석해 검사자의 유전적 질병 소인이나 체질, 성격 등을 파악한다. 유전자는 뉴클레오티드인 A·T·C·G 배열이 길게 이어진 DNA 분자의 일부분으로 생명체마다 고유한 모양이 있다. 이 유전자 정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복제를 거듭하면서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생명의 설계도 구실을 한다. 사람의 차이가 바로 유전자의 차이인 셈이다. 모든 세포에 새겨진 유전자 정보는 머리카락의 모근에도 들어 있다.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을 유전자 진단에 이용하는 것은 채취가 수월하고 정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유전자를 검사하는 과정은 기술적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다. 머리카락 샘플에서 모근 부위를 잘라낸 다음 종합 효소를 첨가한 시약을 투입해 유전자 증폭기에 넣어 연쇄적인 생화학 반응(PCR·Polymerase Chain Reaction)을 일으키면 된다. 증폭기에서 PCR를 40번 반복하면 DNA 양이 무려 1조배로 증가한다. 증폭된 유전자는 정전기적 성질을 이용하는 ‘전기영동’으로 크기별로 분리한다. 유전자를 전기가 통하는 용액에 넣어 아가로스라는 바닷말에서 채취한 젤라틴 성분의 격자 구조를 통과하는 순서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리한 유전자는 3~6개의 유형으로 나뉘는데, 이를 이용해 질병과 성격 등을 예측하게 된다.

현재 유전자 검사 업체에서는 치매 유전자, 우울·폭력 유전자, 비만 유전자, 골다공증 유전자, 알코올 저항성, 당뇨 유전자, 폐암 유발 가능성, 고혈압 등을 검사하고 있다. 만일 아이에 관련된 학습 관련 유전자 검사를 받는다면 체력·중독·호기심·우울·폭력 비만·요통 등(검사비 30여만원)을, 어른의 경우는 골다공증·알코올 저항성·당뇨·폐암·관절염을 포함한 13종(검사비 70여만원)의 각종 질환 위험요소에 관련된 유전자 검사를 받는다. 예컨대 치매 관련 유전자(Apo E Gene) 검사를 하면 3가지(E2·E3·E4) 유형으로 나뉜다. 누군가가 E4 유전형을 지녔다면, 치매 발병이 평균(60살)보다 7~9년 정도 앞당겨지는 것으로 판단하는 식이다.

질병 유전자 3만5천개 중 1500개만 알려져

그렇다면 유전자 검사 결과는 어떻게 쓰이는 것일까. 대덕유전자기술 박정일 책임연구원은 “현재의 유전자 검사는 예방의학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진단 유전자 검사는 전문 병원과 연계해 실시하고 질병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검사를 주로 실시한다”며 의학적인 ‘진단’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밝혀진 과학적 데이터로 질환을 예측할 뿐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질환이 예측된다고 해서 드러누울 이유도 없다. 관절염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 칼슘이 들어간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식으로 관련 질환의 발병을 억제할 수 있다.

사실 유전자 검사가 질병 예측에 쓰이는 것은 의학계의 오랜 바람이었다. 2001년 2월 인간 유전체 지도가 완성되면서 질병 예측에 획기적인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유전자 검사로 암이나 심혈관 질환, 당뇨, 뇌졸중, 치매 등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다인자성 질환의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의학계에서 유전자 검사로 질병을 예측하는 일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3만5천여개로 추정되는 질병 유전자 가운데 규명된 것은 1500여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관련 유전자 하나로 질병을 예측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설령 질병 유전자가 규명되더라도 예측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할 관문이 한둘이 아니다. 하나의 질병은 돌연변이를 일으킨 수개에서 수십개까지의 유전자가 얽혀 있게 마련이다. 이를 규명하려면 질환 유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유전자가 발현되는 단백질 200여만개의 기능까지 밝혀내야 한다. 단백질은 상황에 따라 계속 변형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물론 전체 질병의 5%가량을 차지하는 단일유전성질환(헌팅턴병·루게릭병 등)의 경우 유전자 검진으로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유방암도 원인 유전자가 밝혀졌다. 원인 유전자가 있으면 예방 차원에서 유방을 절개하기도 하지만, 식생활을 바꾸거나 정기 점진을 받으면 발병 위험을 낮출 수 있기에 섣불리 수술할 일은 아니다.

지금으로선 유전자 검사로 장수를 예약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예측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성과가 풍부하지 않다. 특정 질병에 걸리기 쉬운 체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유방암을 비롯한 대장암·당뇨병·신경정신 질환 등에서 잇따라 발견되고 있지만 속내를 따져보면 일반화하기는 이르다. 대부분의 질병 원인 유전자가 서구 사람들에게서 나타났기에 인종과 민족에 따른 차이를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대 의과대학 서정선 교수(분자생물학)는 “앞으로 예방의학에 기초한 유전자 검사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해 미래형 맞춤의학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은 유전적 데이터를 모으는 단계에 있다. 유방암 유전자만 해도 국내 연구 성과를 뒷받침해야 예측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유전자 진단을 통한 예방의학의 효용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 검사를 받은 뒤 어떤 식으로든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질병 저항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검사에서 확인한 질병과 가족 병력을 따져 나름의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확인한 유전자 진단 결과가 수박 겉핥기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전자가 비즈니스로 옮겨가는 기간이 너무 짧았던 데서 비롯된다. 마치 동물 실험에서 효과를 보였다고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신약을 널리 보급하는 형국이다.

정부 규제, 상업주의-연구개발 줄타기

이런 가운데 국내의 유전자 검사 업체들은 검사의 효용성보다 경제적 관점에 골몰하고 있다. 국내의 유전자 검사 시장이 취약한 상황에서 의료 개방을 하면 외국계 회사들이 예방의학 시장을 독차지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1998년부터 생명공학 벤처기업들이 유전자 검사에 뛰어들어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해외 진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 미드리사의 경우 일본의 유전자 검사 서비스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유전자 검사를 통한 예방의학의 수준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함에도, 업체들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까지 유전자를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남녀가 선택하도록 ‘유전자 궁합’을 보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유전자 검사 시장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조짐을 보였다. 유전자 정보를 스타 마케팅에 활용한 데 이어 적성에 따라 학습 능력을 향상시켜 성공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고 선전했다. 유전자 사행심은 성격이나 적성, 외모를 예측하는 데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유전자를 알면 세상을 지배할 듯한 분위기를 형성한 것이다. 유전자 검사 업체들은 유전과 환경(사회)의 조화를 꾀하는 ‘통합적 교육관’이 시대적 요구라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환경적 관점의 교육은 절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반쪽짜리 이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유전자 검사 업체가 장수보다도 성공에 관심을 기울인 데는 유전자 검사와 상담이 의료인의 몫으로 묶여 있는 사정도 작용했다.

언젠가는 유전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것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밝혀진 학습능력, 정서적 반응 등에 관한 내용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뒤의 일이다. 아직은 이들의 정량적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감도 잡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보건복지부는 성격이나 적성, 외모 등에 관련된 유전자 검사를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금의 상황은 무분별한 유전자 상업주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과학적 연구 성과까지 송두리째 거부하는 일방적 규제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자칫 유전자 비즈니스 시장을 송두리째 외국 기업에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머리카락이나 핏방울 등에 새겨진 유전자의 암호를 제대로 풀어내야만 한다.

[유전자 검사 과정]

1. 표본 채취: 검사자의 혈액이나 침, 머리카락 등을 채취해 세포 조직 분리. 미래예측 유전자 검사는 머리카락을 주로 이용.

2. 효소 처리: 제한요소를 이용해 DNA를 잘라내는 과정. DNA를 제한효소로 처리하면 다양한 크기의 유전자 조각들이 나옴.

3. 조각 분리: 효소 처리된 유전자 샘플을 증폭기에 넣어 크기를 확대함. DNA를 아가로스 겔 속에 넣어 전기영동을 실시.

4. 분석 확인: 증폭된 유전자의 길이와 너비 등에 따라 유형 분석. 이미 밝혀진 질병 유전자 유형과 비교해 미래 예측에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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