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된 아널드 슈워제네거, ‘불법체류자 사면’ 거론하며 라티노에게 추파
영화배우에서 정치인으로 변신에 성공한 아널드 슈워제네거(56) 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자는 10월8일 첫 기자회견에서 “불법체류자들의 사면을 강구하는 법안을 지지한다”고 언급했다. 이 말은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많은 불법체류자들이 있는 ‘라티노 커뮤니티’(중남미계 사회)를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초년생인 슈워제네거가 라티노에게 추파를 보낸 것이다. 과거 그는 반이민법을 적극 지지하는 인물이었다.
한인 유권자는 민주당 지지
현 주지사를 퇴출시킨 이번 소환선거(불신임 투표)에서 라티노 유권자들 중 공화당의 슈워제네거 후보를 찍은 사람은 31%, 민주당 후보인 라티노계 부스타만테에게는 과반수인 52%가 투표했다. 이미 캘리포니아에서 라티노 파워는 막강하다.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의 라티노 인구는 51%에 이른다. 지난 1월 현재 연방정부 센서스통계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최대 소수민족은 흑인(3600만명)이 아니고 라티노(3700만명)다. 이번 선거유세에서도 슈워제네거 후보를 포함해 상위 득표자들은 한결같이 스페니시 언어를 한두 마디씩 언급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한인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도가 과거에 비해 월등히 높아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정치 성향은 미국 사회 유권자들과 큰 대조를 보였다. 한인봉사단체인 민족학교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등과 공동으로 지난 10월7일 코리아타운 내 5개 투표소에 나온 한인 유권자 300명을 대상으로 출구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 등록한 한인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70%에 달했으며 처음 투표한 사람도 20%나 돼 참여도가 높았음을 보여주었다. 지난해 11월 주지사 선거에서는 한인 투표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주지사 선택에서 한인 유권자들 중 34%만이 슈워제네거를 지지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부스타만테 후보 지지율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평균 37%보다 20% 이상 높은 58%를 기록했다. 그리고 소환 여부에 대해서도 한인 유권자의 30%만이 데이비스 주지사 소환에 찬성했으나,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55%,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유권자들은 51%가 각각 찬성했다. 따라서 한인 유권자들의 소환 반대는 전체 평균 55%보다 20% 정도 큰 차이를 보였다. 정당별 등록에서 49%가 민주당 소속이었으며 공화당과 기타가 22%로 나타나 한인들은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 투표율은 한인 31~64살이 52%로 나타났고, 65살 이상은 37%, 그리고 18~30살은 11%를 보였다. 이는 전체 투표 성향에서 18∼29살이 12%로 나와 젊은 세대는 한인이나 미국인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전체 투표자 중 30∼64살은 70%로 나와 한인들이 약 20% 정도 떨어졌음을 보여주었다.

‘주민발의안 54’ 부결, 인권단체 반색
공화당의 슈워제네거가 새 주지사로 당선되면서 한인 사회의 공화당 지지자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인 공화당 그룹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백악관과 교류를 지속해왔고 공화당 정치인들과도 인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슈워제네거는 정치인이 아니라 영화배우였기에 그동안 한인과는 특별한 인맥이 없었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슈워제네거 한인후원회’ 회장을 맡은 최태호 공화당 대의원이 나름대로 슈워제네거 선거본부와의 교량 구실을 해왔다. 최씨는 과거 캘리포니아 한인공화당협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로스앤젤레스 인근 패사디나시 인간관계위원회의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 밖에 현재 백악관 아태자문위원인 미셸 박 전 한미공화당협회장이 슈워제네거와의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번 주지사 소환운동을 이끈 공화당 그룹의 중진인 숀 스틸 변호사의 부인으로 슈워제네거와도 안면이 있다. 미셸 박 위원은 슈워제네거 당선자에 대해 “백인이라고 하지만 그는 이민자다. 그렇기 때문에 이민 1세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며 “또 소수계에 대한 이해심도 넓어 앞으로 소수계에 대한 기회가 여러 분야에서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번 소환선거와 함께 투표에 붙여진 ‘주민발의안 54’(인종별 정보수집 금지안)는 주지사 소환과는 별도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공화당계 주민들이 발의한 이 안은 현재 각급 정부기관에서 수집하는 주민정보에서 인종·국적을 구별하지 말고 일괄적으로 수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라티노를 포함한 소수민족계와 민권단체들은 이 발의안이 통과되면 소수민족에게 돌아가는 보건·교육·치안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며 반대운동을 펴왔다. 여러 분야에서 인종별 통계가 나오지 않으면 가령 소수인종이 얼마나 고용차별을 당하는지 등의 통계가 불가능해 결과적으로 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민발의안 54가 부결되자 퇴출된 데이비스 주지사도 “나는 소환됐지만 발의안 54의 부결로 소수민권의 승리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 발의안을 반대해온 인권단체들은 “과거 반이민정서로 통과된 주민발의안들을 뒤엎은 쾌거”라며 기뻐했다.
캘리포니아의 소환선거가 미국의 전국적 이슈가 됐으나 다른 주로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주민소환’ 제도가 있는 캘리포니아 이외 17개 주에서는 소환절차가 캘리포니아보다 까다롭기 때문이다. 우선 소환이 성립되기 위해서 지난 선거 투표 수의 25% 서명을 받아야 한다. 캘리포니아 주는 12% 지지를 받으면 된다.
이번 소환선거에서 공화당인 슈워제네거의 당선이 내년 미 대선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어 주목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우세인 캘리포니아주가 공화당으로 움직이는 성향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는 전체 대통령 선거인단(538명)에서 10%가 넘는 55명으로 가장 많은 주다. 재선을 꿈꾸는 부시 대통령도 슈워제네거가 당선되자 “캘리포니아 경제회복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때묻지 않은 리더십’ 성공할까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새로운 바람’과 ‘때묻지 않은 리더십’을 원했다. 그 대안으로 슈워제네거가 등장했다. 선거기간 중 빗자루를 들고 나온 슈워제네거는 “나는 기성 정치인이 아니었기에 어느 이익집단으로부터도 대가성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자적 위치에 있다”며 “내가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부조리를 깨끗이 청소하겠다”고 외쳤다. 그동안 주정부는 주의회의 민주·공화 양당의 싸움 속에서 제대로 행정을 이끌어나가지 못했다. 선거 막판에 가 ‘성추문’을 꼬집고 나왔으나 독자들은 ‘더러운 인신공격’이라며 무더기로 구독취소 운동을 벌였다.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공화당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몰려가는 촉매제로 변했다.
주지사 당선 뒤 연 첫 기자회견에서 슈워제네거는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천명하고 퇴출된 현 주지사가 서명한 ‘자동차등록세 인상법’과 ‘불법체류자 운전면허증 발급법’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막대한 재정적자, 실업문제, 에너지와 환경문제, 그리고 교육개선 등을 단기간에 해결하겠다면서 “영화 출연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았으나 그는 공화당 인사로 슐츠 전 국무장관, 윌슨 전 주지사 그리고 민주당 인사로 뉴욕증권가의 대부로 알려진 워런 버핏 재정고문과 제임스 한 로스앤젤레스 시장 등 초당적인 인수위원회를 출범시켜 새로운 정치실험에 도전하고 있다. 정치경험이 없는 그에게 주의회의 도전과 새로운 정적들로부터의 추가적인 성추문 폭로 등 많은 시련도 예상된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슈워제네거가 영화 속에서처럼 살아남아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공화당 아성인 오렌지 카운티의 는 선거일 헤드라인을 ‘심판의 날’(Judgement Day)로, 다음날 당선 결과가 실린 지면에는 ‘토탈리콜’(Total Recall)로 장식했다. 이는 슈워제네거가 출연해 히트한 영화 제목들이다. 그는 이번 선거에 나서기 전 “나의 마지막 ‘아메리칸 드림’의 목표는 권력”이라고 말했다. 슈워제네거는 지난 7일 밤 당선연설에서 힘차게 말했다. “캘리포니아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었다.”
LA= 김지현 전문위원 lia21c@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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