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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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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스핀’하며 김연아를 꿈꾸다

피겨스케이팅 시작 1년 만에 전국대회 1위 오른 이시형군

어려운 형편 딛고 베이징올림픽 출전 위해 돌고 또 돌고
등록 2017-12-28 01:43 수정 2020-05-03 04:28
피겨스케이팅 선수 이시형군이 2017년 12월12일 서울 태릉 실내 빙상장에서 빙판을 가르고 있다. 정용일 기자

피겨스케이팅 선수 이시형군이 2017년 12월12일 서울 태릉 실내 빙상장에서 빙판을 가르고 있다. 정용일 기자

“초등학교 4학년 때 미끌미끌한 학교 복도에서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을 따라 했어요. 그걸 보고 담임선생님이 엄마를 불러 ‘미친놈처럼 춤을 춘다’면서 피겨를 시켜보라고 하셨죠.”

183cm 키에 길고 곧게 뻗은 팔다리. 2017년 12월12일 서울 태릉 실내 빙상장에서 마주한 이시형(17·판곡고 2학년)군의 피겨스케이팅은 그의 타고난 체형 덕분에 한층 부드럽게 느껴졌다. 이군은 피겨를 시작한 지 1년 만인 2011년 10월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꿈나무대회에서 1위를 기록해 모두를 놀라게 한 ‘피겨 영재’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 형편과 부상 등으로 운동을 몇 개월씩 쉬는 등 짧은 선수생활 기간에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지원을 받아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로 뛰는 이군을 태릉 실내 빙상장에서 만났다.

탈의실에서 자며 연습

시작은 ‘김연아’였다. 그는 2009년 ‘피겨 퀸’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이후 2010년 밴쿠버겨울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보고 “저걸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말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을 생각할 때 큰돈이 드는 스케이팅을 시작하는 것은 힘든 결정이었다. 그때부터 이군은 학교 복도를 아이스링크장 삼았다. 쉬는 시간마다 김연아 선수를 따라 ‘미친놈처럼’ 돌고 또 돌았다. 학교에서는 이군에게 심리상담까지 권했다. 보다 못한 담임선생님이 어머니를 불러 “힘들면 포기하더라도 일단 한번 시켜보라”고 권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2010년 4월15일이었어요.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같이 집으로 가던 엄마가 물어보더라고요. ‘스케이트 할래?’ 그날 바로 목동 아이스링크장으로 갔어요.”

얼음판 위에서의 첫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스케이트화 끈을 묶을 줄 몰라 쩔쩔매다 겨우 링크장에 올라섰다. 미끌거렸던 학교 복도와 느낌이 비슷했다. 들어가자마자 스핀(한자리에서 빠르게 도는 동작)을 했다. “많이 혼났죠. 처음엔 기초인 걸음마를 해야 하는데.” 그다음는 잠실 스케이트장으로 갔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얘기하니 담당 코치가 일단 한번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했다. “코치 선생님이 테스트를 하자마자 ‘1년 안에 김연아처럼 만들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군의 어머니 이승희(55)씨가 말했다.

그렇게 피겨를 시작했지만 이군의 선수생활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가장 큰 벽은 가정 형편이었다. 피겨는 레슨비, 아이스링크 대관료, 의상, 부츠, 발레 강습, 좋은 안무와 작품 제작 등에 드는 비용이 1년에 최소 5천만원이 드는 ‘비싼’ 운동이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분30초짜리 프로그램을 짜는 데 100만원이 필요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군이 피겨를 하는 줄 몰랐던 아버지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아버지는 코치에게 전화해 ‘가정에서 도와줄 수 없으니 이군을 내보내라’고 했다. 첫 시련이었다.

피겨를 포기하지 못한 이군과 어머니는 집을 나왔다. 고시원을 전전하며 날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어머니는 김밥을 말고 이군은 피겨를 했다. “아침 대관은 오전 6시부터고 밤 대관은 새벽 2시까지였어요. 링크장에서 고시원이 꽤 멀었는데 밤 연습을 하면, 차도 없고 지하철도 끊기는 시간이었죠. 버스 타고 고시원 가서 1시간 자고 나와 다시 연습하고, 그렇게 하는 게 힘들 때는 새벽 2시에 끝나 그냥 남자 탈의실에서 잤어요.”

‘가난’이라는 걸림돌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국 이혼했다. 날마다 김밥을 말던 어머니는 2013년 오른쪽 어깨 인대가 파열돼 일할 수 없게 됐다. 갑상샘암 수술도 받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책정돼 수급비를 받고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 이군은 지방자치단체와 각종 단체, 기업 등의 지원을 받았지만 생활은 여전히 빠듯하다. 어머니는 어려운 피겨 선수의 길로 접어든 이군의 뒷바라지 말고도 친정어머니와 이군의 쌍둥이 여동생까지 돌봐야 한다.

이군은 피겨를 시작한 뒤 1년 동안 목동과 잠실 등의 아이스링크장을 떠돌았다. 처음 제대로 코치를 받은 것은 2011년 4월 경기도 과천에서였다. 이군은 그해 10월 처음 참가한 대회인 꿈나무대회에서 D조 최고 기록(전체 4위)을 냈다. 어머니는 “그때를 지금도 못 잊는다”고 말했다. “D조가 끝나고 다음 조가 준비하는데 사람들이 ‘얘 하늘에서 떨어졌어, 땅에서 솟았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피겨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대회에서 최고 성적을 내기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또 시련이 이어졌다. 2013년 10월 대회를 열흘 앞두고 왼쪽 발목 복숭아뼈 주위 인대가 파열된 것이다. 돈이 없어 전문 검사도 받지 못했다. “집 앞 사거리에 침을 놔주는 곳이 있었어요. 거기서 침을 맞았어요. 걷기 힘들어서 우산을 짚고 혼자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걸음이 느려 중간에 신호가 끊겼어요. 도로 한복판에 서서 지나쳐가는 차들을 바라보는데 제 인생이 너무 힘든 거예요.” 침만 맞고 대회 출전을 강행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대회에 나가서 잘하지도 못하고 더 아파지기만 했죠.” 이후 6~7개월 동안 훈련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몇 개월 만에 스케이트를 다시 시작했지만 그사이 키가 훌쩍 커졌다. “막상 다시 시작하려고 보니 몸이 제 몸이 아닌 거예요. 몸도 무겁고 다리 회복도 안 됐고요.” 훈련은 힘들었지만 대회 성적은 꾸준히 올랐다. 2015년 3월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별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처음으로 미국 전지훈련도 갔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냈다. 2015년 10월 국제빙상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시리즈 대회에서 8위를 했다.

그러나 또다시 부상이 왔다. 대회에 출전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성적을 올리지 않으면 모든 수당과 지원이 끊긴다. 진통제를 맞은 채 이를 악물고 대회에 나갔지만 1점 차이로 국가대표에 떨어졌다. 더 이상 스케이팅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로 내몰렸다. 잠시 스케이팅을 중단한 사이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이군이 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이군을 아끼는 개인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다시 힘을 얻은 이군은 2016년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2017년 국가대표가 됐다. 2018년에도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2017년 12월 열린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회장배 랭킹대회에서는 3위를 했다.

올림픽 출전 꿈 향해

그의 유일한 걸림돌은 어려운 가정 형편이다. 현재 그가 받는 각종 지원은 언제 끊길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군은 밝고 명랑했다.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피겨스케이팅만 할 수 있으면 모든 걸 견뎌낼 수 있다”고 했다.

“2022년 베이징겨울올림픽 출전이 제일 큰 목표예요. 부상을 입지 않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엄마가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엄마 성격이 정말 쿨하셔서 저를 믿고 여기까지 뒷바라지해주신 거예요. 엄마는 정말, 대단해요.”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장애인 겨울스포츠 유망주 이지안·장지음 선수


거침없이 빙상 가르다


이지안 선수(왼쪽)와 장지음 선수가 서울 중계동 동천 빙상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이지안 선수(왼쪽)와 장지음 선수가 서울 중계동 동천 빙상장에서 연습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스케이팅보다 아이돌이 더 좋은 나이, ‘운동하기 싫은 때’를 묻자 동천스포츠단 소속 이지안(13) 선수가 불쑥 “없다”며 활짝 웃는다. “달리는 것”이 “그냥” 좋단다. 그 말을 들은 같은 스포츠단 소속 장지음(17) 선수는 “(나는) 바람이 좋다”고 했다. 얼음 지칠 때의 시원함 때문이라고 했다. 지적장애가 있는 두 선수의 답은 짧았지만 시어(詩語)처럼 명료했다. 운동할 이유로 그만하면 충분해 보였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지원을 받으며 훈련 중인 두 선수를 2017년 12월6일 오후 서울 노원구에 있는 지적장애인 재활시설 ‘동천의 집’에서 만났다. 장 선수는 장애인 피겨스케이팅 종목 국가대표이고, 이 선수는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분야의 유망주다. 어려서부터 가족 없이 ‘동천의 집’에서 지내온 이들에게 스케이트는 큰 위안이자 더 없는 즐거움이다.
첫 출전 경험은 언제일까. 2016년부터 스케이트를 신기 시작한 이지안 선수는 바로 그해 4월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스페셜올림픽코리아가 첫 대회였다. 시합 직전 연습하다 자세가 무너져 굴렀다. 물려받아 낡은 스케이트복에 큰 구멍이 났다. 여벌 옷이 없어 코치 선생님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이 선수가 먼저 “어때요!”라며 출발선 위에 섰고 4위를 기록했다. 이 선수는 “(결과보다) 그때 완주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첫 출전의 우여곡절로 치면 장지음 선수도 만만치 않다. 2009년 처음 피겨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그때 연기를 했던 곡이 였어요. 음악이 흘러나왔지만 아예 발이 움직여지지 않더라고요.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있었고…. 음악이 끝날 때까지 반 발짝도 못 나가고 끝났죠.” 코치가 달려왔고, 장 선수는 안겨 울었다. 그 뒤 장 선수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2013년 평창겨울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레벨2에서 금메달을 땄고, 2016년 스페셜올림픽코리아에서는 결승에 올라 2위를 기록했다.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동천스포츠단 빙상장으로 갔다. 이들에게 스케이팅은 방과 후 개별적성교육이다. 원래 일주일에 한 번이었지만 선수들이 적극적이어서 시간과 횟수를 늘리고 있다. 스케이팅이 두 선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이들이 훈련장에서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된다. 두 선수는 더딘 인터뷰와 달리 훈련장에서는 거침없었다.
장난기 가득하던 이 선수의 얼굴이 진지하게 변했다. 이 선수는 333m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이 주 종목이다. 스타트 신호와 함께 ‘두다다…’ 소리를 내며 달려나간다. 곧바로 코너 구간에서 궤도를 살짝 벗어났다. 이 선수의 강점은 직선주로(직선 코스)다. 직선 구간에서 앞선 이를 어렵지 않게 따라잡을 만큼 직선 스퍼트가 무섭다. 한 바퀴 돌자 얼굴이 환해진다.
장 선수의 훈련도 같은 곳에서 이뤄졌다. 장 선수가 앞으로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1년이다. 교육적 차원에서 학령기에만 장비, 훈련, 대회 출전 등이 지원된다. 선배들이 그렇듯 학교를 졸업하면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다. 장 선수가 우아하게 원을 그리다가 기자 쪽으로 슬쩍 눈길을 돌렸다. 얼굴에 여유 있는 웃음이 가득하다. 바람을 느꼈나보다. 훈련 시간까지 아깝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듯했다.
올해 2월 평창겨울올림픽을 맞는 두 선수는 아쉽다. 3월 열리는 패럴림픽에 스케이팅 종목이 없어서다. 하지만 최고의 실력을 뽐내는 선수들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벌써 들떠 있었다. 두 선수에게 꿈을 물었다. 이 선수는 “계속 운동하는 것”이라며 “유명해지면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장 선수는 스포츠단 맏언니답게 의젓했다. “남은 동안 후회 없이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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