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경 작가의 이름을 세상에 먼저 알린 것은 박찬욱 감독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이었지만, 그의 가족이 다 같이 즐겼던 첫 작품은 드라마 <마더>였다. 이전 작품은 연령 제한 때문에 두 아들이 볼 수 없기도 했고, 일주일에 이틀씩 드라마를 함께 보며 “엄마가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시간을 내줘야 한다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정서경 작가에게 드라마 작업은 “우리 모두가 한 사람이라면 꾸게 될 꿈”을 담을 이야기를 찾아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드라마로 무대를 넓히고 좀더 다양한 사람들과 호흡하게 된 정서경 작가를 3월6일 서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얼마 전 열린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도 대본 집필 때문에 영상으로 수상 소감을 대신하셨잖아요. 결국 마감을 정확히 지켰다고 들었습니다.(웃음)“(너스레를 떨며) 요새 제가 마감을 잘 지키는 작가라는 명성이 생겼어요. (웃음) 최근엔 4주에 한 회 대본을 완성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거든요. 1~2주차에 지난 회차 대본을 수정하고 다음 회차 시놉시스를 쓰고, 3~4주차에 대본을 써요. 그렇게 두 달 동안 두 회차 대본을 썼습니다.”
―2022년 <작은 아씨들>을 마치고 짧은 휴식기를 갖다가 새 작품에 들어간 건가요.
“바로 들어갔어요. 저는 평소에도 많이 쉬는 편이니까. 시나리오 쓰는 시간 외에는 그냥 두세 시간씩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거든요. 중간중간 프로모션 때문에 외부 활동을 했고요.”
―쉴 때 푹 쉬는 게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 같아요.“저는 차를 끓일 때도 ‘내가 이 차를 끓였다니! 믿을 수가 없어!’라고 감탄해요. (웃음) 제가 자신에게 굉장히 관대하다는 것을 감안하고 말하자면, 그날그날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쓰려고 해요. 일뿐만 아니라 엄마로서도 그렇습니다. 마감이 급할 때는 일주일 내내 작업실에 오지만, 한 달 중 2주 정도는 아이들과 주말을 보내요. 일 생각을 털고 티브이(TV)도 영화도 보지 않고 수다만 떨죠. 그러다 작업실에 오면 20분 정도 워킹패드 위를 걷고 씻으면서 집안일을 지우고 대본을 쓸 수 있는 머리를 만들어요. 쓰기 이전의 삶과 쓰기의 삶 사이를 구분하기 위해 하는 빗질 같은 거예요.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와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쓰는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는 다르지 않을까요. 저는 여러 가지 비율이 잘 맞아야 균형감이 생긴다고 믿는 쪽입니다.”
“외부에서 받는 압박이 점점 커지기 때문에 오히려 짐을 추가로 얹지 않으려 노력해요. 시나리오 쓰는 일이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든 순간이 많고 다른 사람과 나눌 수도 없어서 어린아이처럼 하고 싶은 대로 둬요. 집중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그게 며칠씩 걸릴 때도 있거든요. 초조해하지 않고 문밖에서 계속 배회해요. 그러다가 성공적으로 문을 열고 길을 찾으면 그때부터는 더 많이 쓸 수 있어요. 글이 안 써질 때는 제가 못 쓰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왜 못 쓰고 있는지, 이 부분이 왜 어려운지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려 해요.”
―<작은 아씨들> 얘기를 해볼까요. 드라마 자체가 1970~1980년대 한국 현대사 다이제스트라고도 불렸죠. 부동산 투기, 사학 비리 등 극 중 등장하는 사건을 뽑은 기준은 무엇이었나요.“아기 낳고 도서관에 출근해서 온종일 책만 봤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 한국 근현대사에 심취했어요. 저는 1975년생이고, 1980~1990년대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모두 지켜봤어요. 당시 어떤 사람은 부를 쌓고 어떤 사람은 기회조차 받지 못했어요. 부동산 때문이죠. 당시 부자가 되는 플롯은 무척 전형적이었습니다. 그런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봤어요.”
―<작은 아씨들>의 ‘정란회’라는 집단은 밑에 있는 사람을 가장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곳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가장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베트남전 영웅 원기선 장군이 아닌 원상아(엄지원 분)였습니다. 전자는 거의 죽어가는 모습만 등장하죠.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전쟁을 거치고 나면 다 비슷하게 시작한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똑같이 가난했지만 어떤 사람은 전쟁에서 자기 능력을 발휘해 사다리를 올라갈 기회를 받는 반면 어떤 사람은 계속 가난해요. 점점 격차가 생기고 세대를 거쳐 부가 세습되고 굴절되면서 달라진 풍경이 있어요. 저에게 6·25전쟁은 너무 옛날이고, 제가 다룰 수 있는 가장 먼 사건은 베트남전쟁이었습니다. 베트남전쟁은 두 세대가 복잡하게 걸쳐 있는 이야기예요. 부모 세대의 생존 패턴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식에게 물려져요. 그렇게 남아 있는 유령들이 부와 권력을 누리면 원상아 같은 인물이 되고, 오인주(김고은 분) 자매는 사다리를 올라가지 못한 부모가 낳은 아이들이죠.”
―마지막 회에서 인혜(박지후 분)와 효린(전채은 분)이 손을 잡고 배에 오르는 모습에서 <아가씨>의 숙희(김태희 분)와 히데코(김민희 분)가 생각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할 수 있는지 자문하던 두 사람이 결국 가족 곁을 떠나죠.“<아가씨> 시나리오를 펼쳐놓고 똑같이 쓴 장면이에요. (웃음) 결정적인 시기, 나는 너밖에 없고 너도 나밖에 없는 관계로 엮인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인혜와 효린은 새로운 세대죠. 부모가 그들을 키우고 언니들이 희생했지만 자기만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돈의 사이클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순수한 관점으로 돈을 다시 분배해야 이전의 유산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요. 저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미래는 아이들이고, 내가 아닌 미래를 위해 선택해야 그게 곧 나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고. 사실 미래를 위해 자식을 낳은 거잖아요.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는 이미 반복적으로 다채롭게 나왔어요. 그에 비해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단순한 선악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았죠. <마더>를 썼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상한 엄마와 그의 딸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마더>의 수진(이보영 분)은 정서경 월드에 나오는 다른 여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유괴를 선택하는 설정에도 불구하고요.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한 여자 중 하나인데, 이보영 배우님과 김철규 감독님이 대본을 그대로 두면서도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잘 만들어줬어요. 셰익스피어나 체호프 희곡을 표현할 때 나타나는 톤처럼 한국 드라마의 결이 있잖아요. 이보영 배우는 한국 드라마에 존재하는 양식을 가장 긍정적이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 같아요.”
“부자들은 자본으로 리스크를 걸지만 가난한 사람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거.” -<작은 아씨들>
―최근 종영한 <작은 아씨들>은 <마더>에 비해 최고 시청률 기준으로 2배 정도 나온, 수치상으로 더 많은 사람이 본 드라마였습니다.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받은 <마더>도 무척 좋은 드라마였지만, <작은 아씨들>은 대중과의 접점을 확실히 찾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마더> 때 이보영 배우가 시청률이 잘 나올 회차와 아닌 회차를 정확히 예상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그런 눈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1~2년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알겠더라고요. <마더>를 쓸 때 제가 도달하려 한 감정과 구조적 완결성을 먼저 생각했는데, 제 방식은 최고 시청률 5% 이상을 갈 수 없는 형태였어요. <마더>는 시청자에게 성취감을 딱 한 번, 마지막 회에서만 줘요. 열다섯 번 넘어지고 한 번 일어서서 가는 힘든 과정을 함께한 소중한 시청자는 그 정도 존재하고, 또 기존 드라마 시청층과도 다른 것 같았어요. ‘평소에는 드라마를 보지 않는데 <마더>는 꼭 봤어요’ 같은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러다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쓴다면 시청률 5~7%대도 노려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쓰는 모든 작품은 인간이 어떻게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담는데, 이번엔 고통만 주는 게 아니라 도파민도 번갈아가며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아씨들>은 고통과 도파민의 연속적인 행렬이에요.(웃음)”
―정말 재미있는 장르물이기도 했고요.“김희원 감독이 합류하면서 초조해지더라고요. 시청률 10% 이상을 찍던 분과 함께하려면 제가 더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장르는 대중이 제가 쓴 이야기를 좀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자 약속이에요. 또 윤리적으로 선을 타는 이야기가 가장 임팩트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이 옳은지 생동감 넘치는 질문을 만들어낼 때 시청자도 몰입할 수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작은 아씨들>의 시청률은 연출과 배우의 힘이 컸습니다. 제가 부족했다고 느꼈던 점들이 마음에 많이 남아서 다음 작품에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잖아요. 대본을 쓰면서 주인공과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제가 처음부터 주인공을 잘 알지는 못해요. 그냥 서먹서먹하게 시작하면서 조금씩 알아나가는 거죠. <작은 아씨들>은 인주의 내레이션을 쓰고 나서 그의 기저에 흐르는 감정을 알게 된 것 같았어요. ‘이십억은…. 뭘로 되어 있을까? 우리 식구,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아파트. 인혜 다달이 학원 보내고 나중엔 대학 보내고, 인경이 새 차도 뽑아주고 싶었어.’ 그다음부터 인주와 친해졌죠. <마더>에서는 수진이 ‘제가 저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엄마가 없는데…. 어떻게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라는 대사였어요. 그 부분을 지나고 나서 수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엄마가 되는 건 중병을 앓는 것과 같아. 모든 사람이 다 그 병을 이겨낼 수는 없겠지. 아주아주 힘든 일이야.” -<마더>
―드라마작가는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모든 과정을 수행합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어떻게 시작되는 편입니까.“지금 쓰는 대본의 시작은 김희원 감독이었어요. 김희원 감독은 자기 목숨을 바쳐서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인데, <작은 아씨들>이 그의 모든 것을 걸 내용이었는지 회의감이 있었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배우와 스태프가 모든 걸 바쳐 찍어줬으니 이번엔 내가 김희원 감독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만들 만한 가치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김희원 감독이 좋아하는 요소를 엮어서 만들고 있어요. 그리고 배우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배우들을 위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초기 단계부터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드라마와 영화, 양쪽 무대를 모두 오가는 작가가 되셨어요. 드라마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은 영화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드라마작가는 거미가 실을 잣는 것처럼 대중이 꾸는 꿈과 함께하는 생각을 만드는 사람 같아요. 우리는 각자 다른 꿈을 꾸지만, 그중 하나가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필요한 삶의 조건을 담을 수 있잖아요. 우리 모두가 한 사람이라면 밤에 꾸는 꿈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두려워하고, 무엇을 꺼내서 보고 싶어 할까? 거기에 맞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드라마처럼 커다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는 것 같아요. 영화는 조금 달라요. 한 사람의 깊은 꿈을 더 많이 생각하게 돼요. 드라마는 밝은 곳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볼 수 있지만, 영화는 사람이 많은 극장에서 봐도 결국 개인적이잖아요.”
―2002년 제5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전기공들>을 연출하셨죠. 당시 <씨네21> 인터뷰에서 “방 벽지에 대한 묘사가 색다르다”며 벽지에 몰두하는 이유에 관한 질문을 받았더라고요. 류성희 미술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의 색깔이라는 요소가 원래 작가님에게도 있었네요.
“그때 <헤어질 결심> 같은 벽지를 도배하고 찍었어요. 처음 볼 땐 갈매기인데 계속 보면 오리로 변하는 무늬예요. 우리는 만나기도 전부터 공통점을 갖고 있었던 거죠. (웃음) 생각해보면 화면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벽지잖아요. 저나 박찬욱 감독님이나 류성희 미술감독님은 정말로 사실적인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는 거예요. 평소에 쓰지 않는 벽지를 바르면서 이 세계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시작하고 싶은 거죠. 환상적인 세계지만 그것을 순간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시각적 요소를 좋아합니다.”
―작가님 특유의 문어체도 벽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요.“예전에는 문체 때문에 배우 캐스팅이 힘들 때도 있었어요. 다행히 <헤어질 결심> 이후에는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어릴 때 번역서와 자막 달린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 건지 멈출 수가 없어요. 긴 시간이 흐르니 제 스타일이 됐나봐요. 매번 문학적으로 쓸 수는 없으니 어쩌면 제가 넘어서야 하는 한계죠. 문어체지만 자연스러울 수 있는 영역이 있지 않을까요. 이야기도 그래요. 이번 작품은 김희원 감독님을 위해 쓰는 글이니까 저한테서 빼야 할 것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현실에 있던 이야기에서 환상적인 무언가가 쓱 올라올 때가 있어요. 사실 그때 무척 신났어요. (웃음) 마치 비행기가 뜨는 순간 느껴지는 부유감처럼.”
―이건 개인적인 고민이기도 합니다만, 챗지피티(ChatGPT) 시대에 글쟁이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걱정한 적은 없나요.“오히려 챗지피티가 우리를 많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요. 원래 인터넷 검색을 많이 안 하는 편이에요. 예전 보조작가가 인터넷 자료를 취합했고 저는 책을 읽는 편이었거든요. 대본을 쓸 때 필요한 자료를 빨리 모아주리라는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술에 적응하며 일할 것 같아요.”
글 임수연 <씨네21> 기자, 사진 오계옥 <씨네21> 기자
정서경 작가는 이야기의 원형을 동화에서 찾는 창작자다. <작은 아씨들>은 <분홍신>과 <푸른 수염>, <마더>는 <헨젤과 그레텔>, <헤어질 결심>은 <인어공주> 모티브로 이해할 수 있다. “제가 쓰는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이 이야기는 분명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이야기든 제가 처음 다루는 것일 리가 없고, 분명 제가 반복하는 모티브가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원형이 되는 동화를 찾으면 겉으로 볼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더 큰 문제를 알 수 있고, 대본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먼저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네 번째 방문이었다. 작업실을 찾을 때마다 정서경 작가는 다양한 차와 음료 중 무엇을 마시겠느냐는 물음을 먼저 건네고, 손님 입맛에 잘 맞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지면에 들어갈 인터뷰보다 더 재미있는 수다가 시작된다. 한번은 겨울 코트의 벨트를 잃어버린 날이 있었다. 내가 갔던 곳을 차례로 재방문하며 분실물을 찾아 헤맸는데, 그중 하나가 정서경 작가의 작업실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정서경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코트 벨트 찾으셨어요? 문득 걱정이 되어 톡해봅니다 ㅎ.” 내 행적을 샅샅이 복기해봐도 결국 찾을 수 없었다는 말을 전하자 “벨트 없이도 예쁜 코트였다”며 위로를 전했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만났을 때도 그는 벨트 얘기를 잊지 않고 꺼냈다.
내가 만난 정서경 작가는 어떤 대화를 해도 재미있는 이야기꾼이면서 섬세하고 배려심 있다. 무엇보다 마음을 준 상대에게 사랑이 넘친다. 남편과 두 아들 얘기가 나올 때마다 눈에서 애정이 뚝뚝 떨어지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 어떤 얘기를 해도 즐겁다고 한다. <작은 아씨들>의 원상아와 박재상(엄기준 분)이 쇼윈도 부부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한 관계라 놀랐다고 하자 돌아온 그의 대답도 예상 밖이었다. “제가 남편을 너무 사랑하나봐요.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부를 상상할 수 없었어요!” 그의 애정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이어질 때도 있다. 김희원 감독을 만났을 때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는 직감을 받았다는 그는 두세 번째 만남에서 대뜸 “감독님은 나를 좋아하게 될 것”(“내가 감독님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가 아니다!)이라고 했단다. “감독님도 어처구니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김희원 감독님이 우리 남편하고 비슷해요. 제가 우리 남편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남편이 저를 필요로 하거든요.” 박찬욱 감독과의 협업은 물론 <마더> <작은 아씨들>에서 묻어나왔던 다정함과 긍정적인 마음, 동화적 상상력의 원천을 발견하고 있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tvN, 2022년)
<마더>(tvN, 2018년)
영화
<헤어질 결심>(2022년)
<독전>(2018년)
<비밀은 없다>(2016년)
<아가씨>(2016년)
<박쥐>(2009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년)
<모두들, 괜찮아요?>(2006년)
<친절한 금자씨>(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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