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철들기 시작하며 내 나름대로 정립한 소신 가운데 하나가 ‘공장에서 만든 약은 웬만해선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기 걸렸을 때처럼 의사가 내 이름으로 된 처방전을 써줘 약사가 조제한 약은 제외하고 일반의약품 따윈 안 먹는다. 인공적으로 각종 성분을 조합해 만든 공장 약에 과연 내 몸에 좋은 성분만 들었을지 믿음이 가지 않는 탓이다. 언론에서 본 내가 아는 믿을 만한 전문가들은 죄다 어지간하면 약을 먹는 대신 음식을 통한 고른 영양 섭취가 더 바람직하다고 하더라. 쉰 줄에 접어들고 보니 주변에선 루테인이니 비타민D니, 오메가3 등을 다들 챙겨 먹기 바쁘지만, 나는 모른 척한다.
내 밭에 농약은 물론이고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데엔 이런 외고집이 크게 작용한다. 모종 심은 뒤 질소비료를 팍팍 넣으면 어린 개체가 급성장하며 각종 해충의 도발을 이겨낸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작물은 본디 그리 크지 않는다. 그게 자연이다. 화학비료를 쓸 바엔 동네 마트에 가서 상업농가가 농약과 화학비료를 듬뿍 넣어 기른 싱싱한 채소를 돈 내고 사 먹는 게 차라리 경제적이다.
그렇다고 밭에 영양분을 주지 않고 작물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다. 갈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밭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상태를 유지하려면 밭 바깥에서 투입하는 에너지가 필수적이다. 우선 4월에 밭 갈기 전 썩은 닭똥과 톱밥 등이 듬뿍 든 퇴비를 사다 뿌려준다. 모종이 제자리에 뿌리를 잘 내렸다 싶으면 또 퇴비를 사다 뿌리 주위에 웃거름한다.
또 다른 비장의 무기가 있다. 칼슘 액비(액체비료)다. 얘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여럿 판다. 안 산다. 나는 내 손으로 만든다. 달걀껍데기에 칼슘이 얼마나 풍부한데 그걸 돈 주고 산단 말인가. 액비 제조법은 간단하다. ①한두 달 동안 달걀찜과 달걀프라이, 달걀말이에 흰자와 노른자를 빼앗기고 남은 껍데기를 버리지 않고 모아 잘 말린다. ②달걀껍데기를 잘게 부수거나 분쇄기에 간다. ③식초를 붓는다. 산 성분과 칼슘이 만나 첫눈에 반한 연인처럼 격렬하게 반응한다. ④하룻밤 지나면 달걀껍데기가 식초에 녹아 액화한다. ⑤물에 1:100 정도로 희석한 뒤 농업용 분무기에 넣어 살포한다.
칼슘 액비는 작물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성장을 촉진하며 장마철 물러 터지는 현상을 막아준단다. “뿌리에 주기보단 잎에 분무해야 훨씬 빨리 흡수된다”는 게 나보다 앞서 달걀 비료를 만들어 쓴 선각자들의 조언이다. 노년을 향해 달리는 내 뼈마디에서 칼슘 빠져나가는 건 몰라도 칼슘 액비에 젖은 작물이 지르는 즐거운 비명은 내 귀에 들린다. 해마다 써봤는데 나름 효과가 좋다.
글·사진 전종휘 <한겨레>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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