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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읽으면 조크든요

저무는 종이잡지 시대에 등장한 ‘힙’한 잡지… 페미니즘·비건 등 한 주제 깊게 다뤄
등록 2021-04-11 09:00 수정 2021-04-14 01:54
최근 단행본 형태의 다양한 잡지가 잇따라 나왔다.

최근 단행본 형태의 다양한 잡지가 잇따라 나왔다.

2020년 1월, 민음사가 새롭게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이 출간 일주일 만에 정기구독자 1천 명을 돌파하고 초판 3천 부가 전량 매진되는 이례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한편>은 이후 정기구독자 5천 명을 확보했다.

<한편>의 성공이 출판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이유는 뭘까. 불과 1년 전만 해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잡지들이 구독자 수의 급감과 경영상 어려움으로 폐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2019년, 월간지 <인물과 사상>이 9월호를 끝으로 사실상 폐간했다. 같은 해 국내 최장수 월간 교양잡지 <샘터>는 경영 악화 등으로 폐간 위기를 맞았지만, 독자들의 기부로 겨우 살아났다. 젊은 여성층을 대상으로 한 <여성중앙> <쎄씨> <인스타일>도 잇따라 폐간했고, 공연·예술 전문잡지 <더 뮤지컬> <피아노음악> 등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종이매체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잡지는 더 이상 발행해서는 안 될 ‘유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2020년에는 폐간된 잡지 수 이상으로 새로운 잡지가 창간됐다. <한편> 창간 이후에도 사상 잡지 <다시 개벽>, 지식교양 잡지 <매거진 G>, 서평 잡지 <서울리뷰오브북스>, 비거니즘(동물 착취로 생산되는 제품·서비스를 거부한다는 신념으로 동물권을 옹호하고 종 차별에 반대하는 사상) 정치 잡지 <물결> 등이 잇따라 나왔다. 2010년대에 등장한 독립잡지도 여전히 흥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를 모금하는 방식으로, 페미니즘·비건 등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는 잡지는 물론 동네·취미·직업 등 다양한 분야의 잡지가 끊임없이 나온다.

한쪽에서는 잡지의 쇠락을 이야기하는데, 또 다른 쪽에선 새로운 잡지가 탄생한다. 각각은 다른 세계일까. 모든 정보를 온라인에서 얻고 종이매체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잡지는 왜 만들고, 왜 읽는 걸까.

잡지 매출 줄었는데, 등록 잡지 수는 늘어

문화체육관광부 ‘정기간행물등록현황’을 보면, 종별 구분이 ‘잡지’로 등록된 정기간행물은 2016년 4931종까지 감소했다가 2021년 5521종(3월30일 기준)으로 늘어났다. 반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잡지산업 실태조사’를 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잡지산업 매출액은 총 7775억원이다. 2012년 매출액 1조8625억원과 비교하면, 10년도 안 돼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셈이다. 잡지사당 평균 매출액은 4억3800만원으로, 2012년(12억5900만원)에 견줘 3분의 1 수준이다. 이처럼 매출이 줄었는데도 새로운 잡지가 계속 나온다는 건 제작비 대비 이익이 괜찮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판계는 2020년대 잡지가 ‘구독경제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넷플릭스나 왓챠,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를 구독하듯이 광고 수익이 아닌 잡지 구독만으로 수익 모델을 만든 것이다. 최근 팟캐스트 ‘팟빵’에서 오디오 매거진 형태로 <조용한 생활> <월말 김어준>을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종이매체는 아니지만 ‘잡지’라는 특성을 지니면서도 구독 모델을 도입했다.

잡지는 본래 구독하는 매체였다. 하지만 대부분 광고에 의존해 이익을 냈다. 그런데 저비용으로도 잡지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광고를 받지 않고 구독료만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게 됐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잡지는 1980년대 무크지(부정기 간행물), 1990년대 문화잡지, 2010년대 독립잡지의 흐름에서 이어나가 앞으로는 ‘구독경제’가 그 핵심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독경제가 과거의 잡지 구독과 다른 점에 대해, 장 대표는 “제작자 입장에선 광고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광고 수입보단 구독료에 의존한다는 점”이고 “독자가 잡지를 구독하는 목적도 정보가 한정된 상태에서 잡지를 통해 정보를 얻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정보가 너무 많은 상황에서 정제된 정보를 ‘큐레이션’(추천) 형태로 보기 위한 것이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이정연 기자

한겨레 이정연 기자

광고 대신 구독료로 수익 창출

정기구독자가 있는 잡지 비율은 2014년 76.2%에서 2019년 92.9%까지 늘었다. 잡지의 주요 수익원 비중에서 광고는 2014년 37.4%에서 2019년 34.2%로 다소 줄어든 반면, 구독료 수입은 같은 기간 38.5%에서 39.6%로 늘었다(‘2020 잡지산업 실태조사’). 전반적으로 잡지 광고 시장이 축소됐음에도, 정기구독자를 확보하고 잡지 판매 수입 비중을 늘리려 안간힘을 썼다는 뜻이다.

광고가 아예 없거나, 광고 수를 줄이고도 어떻게 이익이 날 수 있을까. 과거에 비해 저비용으로도 고품질의 잡지를 만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라이프스타일 잡지 에디터 출신인 박찬용 작가는 “어도비 포토샵과 맥북 프로, DSLR(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만 다룰 줄 알면 적은 인력과 적은 비용으로도 좋은 잡지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자신의 글을 올리는 창구도 다양해져서 글을 잘 쓰는 외부 필자를 구하기 쉬워졌고, 외국어만 할 줄 알면 외국 필자에게 글을 받는 것도 어렵지 않아 잡지를 만드는 데 많은 고정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여성주의 잡지 <우먼카인드>, 생활철학 잡지 <뉴필로소퍼>, 교양과학 잡지 <스켑틱> 등 잡지 3종을 펴내는 바다출판사의 김인호 대표는 “단행본 위주로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3개월에 한 번씩 각 분야의 팀장이 메인 편집자로 잡지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사진 전문 잡지 <보스토크>의 박지수 편집장은 “마케팅과 영업 사원을 따로 두지 않고도, 텀블벅(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 제작비를 마련해 온라인으로 홍보할 수 있다”며 “동인 5명과 함께 일하면서 실질적인 편집은 혼자 하고 있기 때문에 대량생산을 하지 않고 500∼1천 부만 찍어도 유지는 된다”고 말했다. 독립잡지 <계간 홀로>의 16호 출판을 앞둔 이진송 편집장도 “잡지의 많은 요소 중 오로지 글에만 초점을 맞춰 디자인 등 품이 많이 가는 일을 제외하고 단순하게 만들었다”며 “잡지의 정체성이 확실해서 만드는 데 부담이 덜하고 독자들도 투고의 폭이 넓다”고 말했다.

장은수 대표는 “규모에 따라 500부만 팔아도 이익을 내는 잡지가 있고, 출판사에서 내는 잡지도 3천 부만 팔아도 이익이 난다고들 한다”며 “잡지는 구독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광고 없이 고품질로 승부해 이익을 내는 구독 모델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단행본과 유사한 정기간행물

2010년대 이후 창간된 대부분 잡지는 단행본 형태를 취한다. ‘매거진’ ‘잡지’라는 이름으로 유통되지만, 과월호가 되더라도 내용을 읽는 데 상관없는 단행본에 가깝다. 내용도 한 주제를 깊게 다루고, 발행 주기도 계간이나 연 3회 정도가 주를 이룬다. 실제로 <매거진 B> <우먼카인드> <뉴필로소퍼> 등의 잡지에 붙은 국제표준 도서번호도 ISSN(정기간행물 바코드)이 아니라 ISBN(단행본 바코드)이다.

그렇다면 굳이 단행본이 아닌 잡지 형식으로 출판하는 이유는 뭘까. 김인호 대표는 “잡지라는 ‘브랜드성’을 가져가면서도 일회성인 단행본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행본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잡지는 그다음 호에서 지난호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잡지 이름은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

또 다른 속사정도 있다. 정기간행물은 과월호가 되면 서점에서 팔 수 없지만, 단행본은 계속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기간행물로 등록하고 다시 단행본으로 등록하는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박지수 편집장은 “과월호를 서점에서 구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 있어 <보스토크>의 경우, ISSN과 ISBN 둘 다 갖고 있다”며 “정기간행물(ISSN)은 한번 등록하면 별도의 절차가 필요 없지만, 단행본(ISBN)은 매번 새로운 심사를 받고 등록하는 절차가 필요함에도 이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한 잡지의 전직 에디터 ㄱ씨는 “단행본 형태로 출간하는 것을 과연 잡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잡지와 단행본의 장점만 결합한 하이브리드 출판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지수 편집장은 “잡지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스스로 정기적으로 출판물을 내겠다고 선언했다면 단행본 형태라도 잡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독자 정보를 분석해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잡지만의 장점으로 손꼽힌다. 김인호 대표는 “단행본은 누가 이 책을 볼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대상층을 예상하고 내지만, 잡지는 데이터베이스가 쌓일수록 독자층이 명확해짐에 따라 이를 다른 책이나 잡지 마케팅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만의 굿즈로, 정보 얻고 싶어서

2010년대부터 운영된 출판사의 북클럽도 새로운 잡지 창간에 버팀목이 됐다. 민음사와 김영사는 각각 북클럽을 운영하는데, 출판사를 신뢰하는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잡지를 창간하는 기반이 됐다. 민음사 쪽이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한편>의 정기구독자 가운데 ‘민음 북클럽’의 기존 가입자가 57%를 차지했다. 서울 압구정동의 음악 아카데미 풍월당이 만든 <풍월한담>과 부산 상지건축이 만든 <아크> 역시 아카데미 회원들이 기반이 됐다.

이처럼 잡지는 앞서 만들어진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형성되기도 하고, 잡지를 통해 새로운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출판사들이 잡지 구독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전시회 등을 열고, SNS를 통해 독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연애·비결혼을 지향하는 잡지 <계간 홀로>의 이진송 편집장은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독자들끼리 정서적 커뮤니티가 생겨나서, 실제 만난 적이 없어도 잡지 안에서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편이 돼준다고 믿는다”며 “독자들도 <계간 홀로>를 신뢰해 늘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독자가 잡지를 구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 자신에게 맞는 선별된 정보를 얻고 싶고,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지지하고 싶어서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살면서 주 3회 요가 수련을 하고, 채식을 지향하는 김승미(32)씨는 동네 잡지 <안녕망원>, 요가 잡지 <우드르바>, 비거니즘 잡지 <물결>을 구독한다. 김씨는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광고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만 가득해서 정제된 정보를 얻고 싶었다”며 “특히 비거니즘을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잡지 구독으로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떤 잡지를 읽는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편집자들도 이를 적극 활용해 잡지 외에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제작 상품을 ‘리워드’로 제공한다. 이상아(26)씨는 “아이돌 팬들이 ‘굿즈’를 사듯이, 잡지를 읽고 소장하는 행위는 내 자아를 드러내는 굿즈”라며 “SNS에 구독하는 잡지에 대한 글을 올리거나 잡지를 가방에 넣고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 나를 드러낼 수 있다”고 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현재 잡지는 팬덤 문화의 상징”이라며 “특정 분야의 취향을 공유하고 호응하는 커뮤니티 형성이 잡지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당신을 위한 잡지
엄마에겐 ‘포포포’, 아빠에겐 ‘볼드 저널’
수많은 잡지 가운데 무얼 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출판 관련 전문가들이 읽을 만하다고 추천한 잡지 중 비교적 최근 창간된 잡지를 추려 소개한다.

·엄마, 아빠, 청년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
<포포포>(위 왼쪽)는 엄마의 잠재력에 주목하는 잡지다. 엄마의 서사가 주를 이루지만, 엄마이기 전에 누군가의 딸인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잡지. 결혼을 고민하는 여성,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하는 아빠 등 다양한 서사가 담겨 있다. <볼드 저널>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며 창의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아빠들을 위한 잡지다. <병:맛>은 20~30대 청년의 질병에 대해 활짝 열어젖히고 말하는 콘텐츠가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잡지다. 아픔이 찾아온 그 시간을 그저 무겁고 우울하게만 그려내지 않는다.

·하나만 깊게 파자
<글리프>(아래 왼쪽)는 한 호에 한 작가만을 ‘덕질’하는 잡지다. 창간호 정세랑 작가를 시작으로 2호 구병모 작가, 3호 김금희 작가를 다뤘다. 같은 작가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많은 독자가 모였다. 한 호에 한 영화만 다루는 잡지 <프리즘오브>도 있다. 16호는 ‘비포 3부작’(<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을 다루는 식이다. 가장 최신호인 17호에선 <소공녀>를 다뤘다.

·문예지도 각양각색

문학잡지로는 홀수 달에 <악스트>와 짝수 달에 <릿터>가 나오기 때문에, 다달이 번갈아가며 읽으면 좋다. 특정 장르를 주로 다루는 잡지도 있다. <에픽>은 논픽션을, <미스테리아>(위 오른쪽)는 미스터리를 전문적으로 다룬다.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서평 전문지 <서울리뷰오브북스>도 있다.

·교양 있는 당신을 위해

인문잡지로는 <한편>(아래 오른쪽)과 <매거진 G>를 추천한다. 과학잡지 <스켑틱>과 생활철학 잡지 <뉴필로소퍼>까지 읽는다면 금상첨화! 여성의 언어로 말하고 여성의 눈으로 새로운 가치를 읽어내는 <우먼카인드>도 더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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