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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만나는 ‘아랍의 봄’

이재호 기자의 대한민국 난민 르포 <낯선 이웃>
등록 2019-12-06 11:16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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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를 관광지로만 아는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타이에는 한국의 1980년대처럼 민주화운동을 하는 대학생들이 있다.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이들이다. 타이의 민주주의 운동단체인 ‘새민주주의운동’ 설립자이자 대변인으로 일하던 차노끄난은 ‘왕실모독죄’로 기소된 사실을 알게 된 날 타이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차노끄난들이 있다. 카슈미르의 독립운동가 리즈완, 로힝야의 민주화운동가 이삭, 다르푸르 학살을 주도한 정부에 반대하는 활동을 한 수단의 아담, 쿠데타에 반대하다 체포 위기에 놓인 이집트의 오사마. 조국에서 쫓겨난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 1970~80년대 군사 독재 시절 한국의 민주화운동가와 똑같은 처지인 이들을, 누가 보호하고 있을까. 한국이다.

(이데아 펴냄)은 한국과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는 책이다. 스웨덴, 핀란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한국의 세계는 늘 한국 바깥에 있었다. 이재호 기자의 ‘대한민국 난민 르포’인 이 책이 발굴한 세계는 다르다. 카슈미르 내전, 로힝야 사태, 다르푸르 학살, 아랍의 봄은 한국 속에 존재한다. ‘난민’이라는 존재로 전쟁과 독재, 약탈과 지배가 끊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를 비로소 우리의 이야기로 만날 수 있다.

난민에게 한국은 어떤 곳일까? 시민들은 난민을 혐오하고, 정부는 바늘구멍 같은 난민 심사를 들이대는 야박한 곳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래도 한국은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이라는 국제법을 준수하는 나라다. 망명할 나라를 찾을 때 한국은 스웨덴,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처럼 난민에게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국가 중 하나로 고려된다.

로힝야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삭은 2006년 초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고,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인정돼 병원에서 진료받게 됐다. 이후 한국에 온 아내 파티마와 비정규직으로 일해 한 달에 150만원을 벌고, 그중 30만~40만원을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낸다. 예멘 난민 사태 때 분출한 소수자 혐오 정서, 여기에 편승한 정부가 보인 야박한 난민 행정에 쌓인 부채감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던 대목이다. ‘제발 어머니도 한국으로 모시고 왔으면 좋겠다’고 덩달아 간절해지는 것을 보면, 로힝야의 이삭은 어느새 옆집에 사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제주 예멘 난민 사태는 여러모로 이상했다. 예멘 난민 500여 명의 입국으로 난리가 났지만, 2015년 한 해에만 시리아인 200여 명이 한국에 왔다. 국내 체류 시리아인은 2017년 기준 1300여 명이다. 시리아 유학생이 한국에 세운 ‘헬프시리아’에 3억원 가까운 난민 지원 성금이 모인 소식은 보수 언론에서도 ‘미담’으로 보도했다. 2015년 9월 터키 해안가에서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의 세 살 소년 쿠르디의 사진 등으로 시리아 난민에 대한 세계의 동정 여론이 압도적일 때였다. 예멘 난민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보수 언론은 예멘 난민에 대해 의심과 불안, 혐오를 부추기는 기사를 쏟아냈다. 한국 사회 속 약자에게 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정말, 한국 사회에서 난민 혐오는 난민의 문제일까.

진명선 팀장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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