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공유주방 ‘심플키친’. 심플키친 제공
그는 자신이 주로 클릭하는 앱 ‘배달의 지구’ 소속 로봇이 싸움에 휩싸이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자칫 굶기 때문이다. 바로 클릭해 ‘버섯 포자로 만든 빵’과 ‘무궁화씨에서 채취한 세포로 만든 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주문했다. 밀가루와 소를 잡아 햄버거를 만들었다는 옛날 기록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미국 기업 비욘드미트 주식이나 사둘걸! 빌 게이츠 그 양반 눈이 보통이 아닐 텐데!’ 그는 우연히 스마트폰을 뒤지다 3살 생일에 연 파티 영상을 발견했다. 거기엔 신기한 풍경이 가득했다.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활짝 웃는 가족들 얼굴이 보였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어느 날 이런 상상을 했다. 발동한 장난기에 소름이 살짝 돋았다. 비욘드미트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식물성 고기’ 생산 기업이다. 빌 게이츠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투자해 화제가 된 푸드테크 기업이다. 비욘드미트가 만든 ‘식물성 고기’는 한국 소비자도 맛볼 수 있다. 동원에프앤드비(F&B)가 독점 수입해 판매한다.
전세계적으로 음식업계는 혁신의 바람이 거세다. 미국 푸드업체가 식탁 위에 올라가는 먹거리 ‘혁신’을 도모한다면, 한국은 서비스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푸드 오투오(O2O·온라인에서 상품을 주문해 오프라인으로 제공되는 것)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배달 앱, 마켓컬리 같은 총알 배송 플랫폼 등이 성업 중이다.
지난 주말 맥주 한 잔에 치킨 한 조각이 간절했다. 요즘 대세 배달 앱을 살폈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푸드플라이, 우버이츠 등 다양한 음식 배달 앱들이 경쟁하듯 여러 이벤트로 유혹했다. 배달의민족은 푸드테크 업계 강자답게 서비스가 촘촘하고 소비자 감성에 충실했다. 가입한 식당의 수도 다른 앱보다 월등히 많았다. 배달의민족으로 동네 치킨집 통닭 한 마리를 주문했다. 40여 분이 지나 ‘띵동’ 벨이 울렸고, 혼자 뜯어먹는 치킨 맛은 낯설지 않았다. 과거 한동안 주문해 먹었던 동네 치킨 프랜차이즈 메뉴다.
문득 먹다가 한 가지 의구심이 생겼다. 과거엔 전화로 주문했던 집이다. 같은 치킨, 만드는 이도, 먹는 이도 같은 사람. 그런데 가격은 예전보다 올랐다(물론 가격 상승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내가 땀 흘려 일해 번 돈이 누구 주머니를 배부르게 하는 걸까? 한 끼 먹는 과정에서 과거와 달리 얼굴을 내민 것은 배달 앱. 생산자도 소비자도 아닌 정보기술(IT) 플랫폼이 내 주머니를 터는 것은 아닐까? 그 업체들이 내세우는 가치는 ‘편리’ ‘간편함’ 등이다. 배달 속도도 이 범주에 든다.
‘함께 먹는 동물’에서 출발한 인간하지만 빨리 먹어 무엇하나? 무엇이 좋을까? 편리하면 식사의 즐거움이 배가될까?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김종덕 협회장 등 음식학자들은 ‘느리게 먹는 법’이 주는 식도락과 건강의 유익함을 강조해왔다. 그날 치킨 한 마리를 다 먹어치운 시간은 40여 분 남짓. 누군가와 나눠 먹었다면 더 길어졌을 식사 시간이다. 고작 몇 분 더 번 시간에 내가 한 짓이라고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 등 그리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제아무리 유명한 맛집이라도 배달 음식은 맛이 없다. 배달 기사는 여러 집을 돌면서 이동 동선을 짜는 편이다. 그러다보면 음식이 식는다. 맛에 영향을 미치는 온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음식 조리 과정이 안 보이는 식당배달 앱이 외식시장을 주도하면서 가속화한 현상 중에 하나는 ‘혼밥’이다. 이시게 나오미치의 (컬처그라퍼 펴냄)를 보면 음식 문화 연구는 ‘인간은 함께 먹는 동물’이란 점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함께 먹으면서 연대감이 생기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고 저자는 적었다. ‘함께 먹는 일’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 우리는 더 강퍅한 일상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편리함과 간편함만 찾다가 정작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기술 발전은 궁극적으로 우리 삶을 행복에 이르게 해야 한다는 점에 반론을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함께’를 내세운 ‘공유’ 가치가 요즘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다. 지금 한국 외식업계 화두도 ‘공유’다. 그중 선두는 ‘공유주방’이다. 우버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이 공유주방 ‘클라우드 키친’을 한국에서 연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택시나 숙박지를 공유하듯 ‘주방’을 빌려주고 빌리는 식이다. 부엌이 없는 사람도 밥을 해먹을 수 있다지만 주요한 고객은 식당 창업자다. 창업에 큰 비용이 드는 공간을 확보하지 않아도 식당을 차릴 수 있다. 배달앱으로 주문받고 공유주방에서 요리한 것을 배달 노동자가 전달하는 것이다. ‘우아한 형제들’ ‘심플프로젝트컴퍼니’ ‘에이치에이티컴퍼니’ 등 푸드테크 기업들이 공유주방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배달이 음식 먹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도록 했다면 이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공유’가 아니라 ‘혼자’다. 그래서 최근 몇 년 동안 불어닥친 ‘공유’ 개념이 사실은 양의 탈을 쓴 늑대가 아닐까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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