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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최전선에서 20년

스무 번째 행사 치른 전주국제영화제
등록 2019-05-11 17:27 수정 2020-05-03 04:29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고봉수 감독은 18살 연하의 은비와 사귀고 있다. 은비 친구들은 남자친구 욕을 해대고, 연애를 반대하기 위해 미국에 있던 언니가 들어오고, 베트남 참전 군인인 은비 아버지는 감독에게 주먹을 날린다. 5월2일부터 11일까지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 고봉수 감독이 들고 온 페이크다큐 의 줄거리다. 여러 가지를 들지만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하나다. 18년 차. 18년은 그렇게 긴 세월이다.

2000년에 시작한 전주영화제가 스무 번째가 되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극복 못할 나이 차도 아니겠지만, 현실은 상전벽해의 세월이다. 영화의 거리 고사동이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로 채워지고, (콩나물국밥) 삼백집 건물이 현대식으로 지어지고, 슬레이트 지붕이던 가게들은 일어·영어 이름을 내건 세련된 상점들로 바뀌었다. 그리고 바뀌지 않은 것들이 있다.

독립영화에 대한 지지

독립영화에 대한 지지다. 을 들고 올해 전주영화제를 찾은 고희영 감독은 ‘비빌 언덕’이라고 표현했다. “대부분 영화제가 극영화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전주는 꾸준히 극영화와 다큐를 대등하게 대접해왔다.” 은 지난해 장편영화 제작지원 프로젝트인 JCP(전주시네마프로젝트) 지원금을 받아서 2017년 중단된 작업을 재개했다. 영화는 일본으로 건너가 국보가 된 조선 막사발 ‘이도다완’을 재현하려는 도공의 집념을 담았다.

“영화가 미완의 그릇이 될 뻔했다.” 지원금을 받자마자 일본 교토행 티켓을 끊었다. 국보로 지정된 사발을 보기 위해서다. 천한봉 도예가가 꼭 보기를 부탁했고, 작품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4년간 계속 두드려도 꿈쩍 않던 문은 86살 도공의 간절한 눈빛에 열렸다. 제작비도 제작비지만 ‘개봉을 해야 하나, 관객이 적은데 무슨 의미란 말인가’라며 위축된 감독에게 보내준 지지가 소중했다고 고 감독은 회고했다. “지원금이 적극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이 과감함은 영화 퀄리티(질)에서 큰 차이를 만든다. 영화제만큼은 시장 질서와 상관없이 영화를 봐준다.”

극영화에서도 전주국제영화제는 많은 감독의 ‘처음’이 되어주었다. 의 최창환 감독은 첫 영화 으로 작년 ‘창작지원상’을 받고 금세 두 번째 작품을 만들어 관객을 만났다. 영화는 한국경쟁 부문에서 특별 언급되고 배우상(곽민규)을 받았다. 앞에 언급한 고봉수 감독 역시 첫 장편영화 가 2016년 ‘한국경쟁’ 대상을 받으며 독립영화계의 스타가 되었다.

류승완과 봉준호 감독도 전주에서 발견되었다.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16㎜ 영화 는 첫해 전주영화제에서 ‘한국에서 본 적 없는 새로운 액션을 선보이는 영화’로 입길에 올랐다. 이후 여러 세계 영화제에 초청되고, 35㎜로 블로업하며 확대 개봉되고 감독도 급성장했다. 봉준호 감독도 첫 장편 를 제1회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하며 영화제와 인연을 맺고, 2014년에는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했다.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요약한다. “떠오르는 감독들이 주를 이룬다. 미래에 주류가 될 전위다. 외국 감독도 마찬가지다. 현재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가 환영하는 영화들도 먼저 알아보고 상영했다.”

미래에 주류가 될 전위

‘미래에 주류가 될 전위’는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에도 해당된다. 1997년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최대 국제영화제로 성장하면서 세계 각국의 화제작을 쓸어담는 사이, 전주영화제는 ‘새로움’과 ‘미래’라는 화두를 붙들었다. ‘디지털 삼인삼색’은 첫해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영화제를 대표하는 브랜드였다. 세계와 한국을 망라해 촉망받는 감독 셋을 불러들여 당시에는 낯설었던 ‘디지털’로 영화를 찍게 했다. ‘첨단’에 있던 디지털은 20년 사이 ‘흔한 일상’이 되었다. 2014년부터는 시대에 맞게 장편영화 제작지원 프로젝트(JCP)로 바뀌었다.

5년간 전주국제영화제를 담당한 이주현 기자는 ‘새롭다’는 화두에 더해 대중성을 더하려는 노력을 전주영화제의 흐름으로 평가했다. “시네필(영화광)들이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실험예술 영화를 보러 왔다. 현재도 ‘익스팬디드 시네마’ 부문 등의 영화로 이어진다. 현대미술과 영화를 결합하는 시도도 팔복예술공장 사례로 엿볼 수 있다. 반면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도 보인다.” 올해는 20주년을 기념해 한국 영화의 흥행작을 대거 상영하고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실제 영화제가 ‘어렸던’ 시절, 영화광들에게는 ‘매진’이 되지 않는 영화제, 보고 싶은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는 영화제로 소문이 났지만, 최근 2~3년 사이 부쩍 매진작이 늘었다. 올해는 닷새간 362회 중 259회가 매진되는 등(5월6일까지) 최다 관객, 매진작 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전주영화제는 ‘표현의 자유’의 든든한 보루였다. 전주영화제는 20회를 맞으며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슬로건을 ‘영화, 표현의 해방구’로 쉼표를 찍어 살짝 바꿨다. 애초 슬로건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상영을 둘러싸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영화제 자율권을 위협한 이듬해 2017년부터 사용했다. ‘해방구’는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었다.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는 “다른 사람들이 외압이 없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없는데요, 하곤 했다. 내색 안 하고 버텼다”고 한다.

몇몇 문제작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가 오고, 공무원들은 경위서를 써야 했다. 2016년 최승호 피디(현 MBC 사장)의 때가 그렇다. 국가정보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에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단박 인터뷰’에 등장하기도 한다. 감독은 “한국에서 못 틀 것이다”라고 했지만 상영을 결정했다. 그만큼 ‘엄혹한’ 시절이었다. 2017년 상영된 는 극비 프로젝트였다. 2016년 JCP에 선정되고도 ‘N프로젝트’로 내용을 가리고 제목도 없이 만든 영화는 그해 최순실 게이트와 촛불 혁명을 거치면서 상황이 반전된 뒤 ‘백주’(환한 대낮)의 전주에 도착했다. 이창재 감독의 박진감 넘쳤던 상황 회고를, 많은 이가 듣고도 그저 허허 웃었던 것은 ‘끝이 좋으면 다 좋은 희극’이다.

만들어진 해방구

쉼표를 찍은 ‘해방구’는 올해에도 유효했다. 4대강을 12년간 취재한 김병기 감독의 과 일본군 ‘위안부’ 증언에 나선 김복동 할머니의 27년을 담은 송원근 감독의 이 상영됐다. 텔레비전도 잡지도 못하는 ‘롱텀 저널리즘’이다.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는 “경계 없는 표현의 자유를 지향한다”고 말한다. 실험영화와 정치영화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이렇게 해서 가능하다.

전주=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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