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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바뀌면 인생이 바뀔까

집 고쳐주는 예능프로 ‘집방’… <렛미홈> <내 방의 품격>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
등록 2016-07-21 18:40 수정 2020-05-03 04:28
<헌집줄게 새집다오>의 한 장면. JTBC 제공

<헌집줄게 새집다오>의 한 장면. JTBC 제공

“빠라바바밤~.” 친구네 집들이에 가서 문을 여는데, 누군가 익숙한 음악을 콧노래로 부른다. 그러면 갑자기 조명이 화사해지고 집 안이 광각렌즈로 보는 세상처럼 넓어지는 환상을 본다. 2000년대 초반 (MBC)의 한 코너 ‘러브하우스’가 만들어낸 광채다. 생각해보라. 한국인들에겐 인생 고민의 팔 할이 ‘부동산’이다. 여러 식구가 복닥거리는 집이든, 혼자 외롭게 지내는 자취방이든, 낡고 불편해도 어쩔 수 없이 몸을 쑤셔넣고 지내야 한다. 그 문제투성이 집을 전문가의 솜씨로 개조해준다. 방송사의 시혜로 공사비도 한 푼 내지 않는다. 이보다 보편에 호소할 수 있는 꿈이 어디 있을까? 그 꿈이 ‘집방’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왔다.

(tvN)은 셀프 인테리어에 초점을 둔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고수들을 찾아내, 비교적 싸고 간편하게 집을 변신시키는 치트키를 알려준다. (JTBC)는 패션디자이너, 인테리어 블로거, 건축가 등 다양한 출연자들이 대결 형식으로 방을 개조한다. 같은 주제라도 각자의 주특기와 스타일이 다르게 적용되는 면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tvN)은 사연을 보낸 일반인의 집을 개조해준다. 가장 본격적인 프로그램으로, 30일 동안 집 전체를 뜯어고친다. (XTM)는 오직 남자의 입장에서 부인 몰래 집 안에 기상천외한 방을 만들어준다.

집을 바꾸면 인생이 바뀔까? 은 (tvN)의 ‘메이크오버 쇼’를 이어받는다. 얼굴과 몸매가 아니라, 집을 전신 성형시킨다. 또한 처럼 ‘애프터’의 찬란함을 위해 ‘비포’의 고통을 매우 자극적으로 소개한다. 못 버리는 물건이 점령한 집, 여러 세대가 사생활 없이 뒤엉켜 살아가는 집, 셀프 인테리어의 욕심으로 망가진 집…. 그 모습을 보면 의문이 떠오른다. 과연 집이 문제일까?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문제일까? 제작진도 이를 고려한 듯, 정리수납 전문가, 가족상담사 등의 조언을 더한다. 하지만 결국엔 집을 뜯어고치면 데우스엑스마키나처럼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이 보여준다.

는 더 작은 규모로, 시청자가 손수 해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훨씬 현실적으로 보인다. 처럼 핸디캡 속에 방 안을 변신시키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요리 한 그릇이 뚝딱 만들어지는 것과, 방 하나가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것은 분명 게임이 다르다. 짧은 시간에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이른바 MSG가 들어간 요소를 너무 많이 보여준다. 음식은 먹으면 그만이지만, 그 과한 장식은 유행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방 안 구석에서 우리를 노려볼 것이다.

분명 ‘집방’은 무시 못할 흐름을 만들고 있다. ‘먹방’ ‘쿡방’의 피로감이 분명한 가운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 것도 같다. 하지만 그 방 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뭔가 허술하다. 그 옛날 ‘러브하우스’와 요즘의 인기 예능프로에서 이것저것 잔뜩 빌려오기는 했다. 하지만 아귀가 맞지 않고 겉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거 불안정성’이라는 땅 밑 괴물이 계속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들여 고쳐놔봤자 언제 이사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인테리어 잘된 식당에서 외식이나 하자.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이명석 비평가의 TV 칼럼 연재를 마칩니다. 좋은 글 보내주신 이명석 비평가와 칼럼을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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