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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블랙은 돌아오지 못했다

관습적 키스와 시한부 인생 설정… 원작 순정만화 존중 않는 드라마들
등록 2016-05-03 20:55 수정 2020-05-02 04:28
MBC 홈페이지

MBC 홈페이지

(tvN)에서 덕선(혜리)은 만화책을 잘 보지 않는다. 하이틴로맨스는 열렬히 읽지만, 순정만화는 김영숙의 처럼 소품으로나 잠시 스쳐갈 뿐이다. 그 시절 대중문화를 꼼꼼하게 재현하기로 유명한 시리즈가 1980년대부터 르네상스를 맞이한 순정만화를 크게 조명하지 않았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쌍문동이라는 배경에서 드러나는 에 대한 헌사, 정환(류준열)을 비롯한 남자아이들이 해적판 을 열심히 읽는 장면 등 소년만화에 대한 재현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생각해보면 전작 에서도 같은 작품은 쓰레기(정우)가 열독하는 모습으로 비중 있게 소개된 반면, 이미라의 같은 인기 순정만화는 소품으로 비추는 데 그쳤다. 여성주의 대중문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순정만화는 여성들이 즐기는 장르라는 바로 그 이유로 아직도 충분히 복권되지 않은 듯하다. 시리즈는 그러한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

최근에는 (MBC)을 보며 비슷한 아쉬움을 느낀다. 추억의 순정만화 팬이라면 제목만 들어도 설레지 않을 수 없는 전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지만, 두 작품의 공통점은 딱 그 제목만이다. 원작은 거장 황미나 작가가 1983년에 출간한 작품으로, ‘순정만화 최초의 블록버스터’라 불리기도 한다. 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야기에 세포이 항쟁, 남북전쟁 등 굵직한 세계사적 사건들을 새겨넣은 대서사시로 순정만화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복수, 출생의 비밀, 원수와의 사랑 등 자극적인 갈등 요소도 종합선물세트처럼 모여 있으나, 순정만화 특유의 섬세한 연출미학과 심리 묘사가 단순한 자극을 넘어선 몰입을 이끌어낸다.

안타깝게도 드라마는 원작의 특징 가운데 외적 갈등 요소만을 끌어온데다 자극성을 더 배가했다. 악역의 악행은 더욱 악랄해졌고, 주인공 차지원(이진욱)에게는 몇 번이고 죽음에서 살아 돌아오는 불사조 설정에 그와 모순되는 시한부 설정까지 더해졌다. 차지원의 복수보다 악역들의 살해 시도와 미수의 반복이 큰 비중을 차지하느라 원작에서처럼 독자를 울리는 인물들의 우수와 내적 갈등은 끼어들 틈이 없다. 순정만화적 감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연출은 더 문제다. 멜로의 진전은 인물들의 감정 묘사가 아니라 ‘탈출 키스’ ‘수갑 키스’ ‘생수 키스’ 등 죽음의 위협 사이사이 관습처럼 배치된 스킨십을 통해서나 이뤄진다. 순정만화 장르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존중이 없는 관습적 연출이 낳은 참사다.

이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최근 (tvN) 논란도 맥락은 유사하다. 동명 원작 웹툰은 남녀 주인공 캐릭터의 신선한 설정과 인물 간 권력관계의 현실적 묘사로 순정만화 장르 전통 안에서 새로운 공식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으나, 드라마는 진부한 삼각관계 로맨스에 그쳤다. 남다른 감수성으로 호평받아온 이윤정 감독이었음에도 연출에서는 원작 존중을 찾기 어려워 아쉬움의 목소리가 더 컸다. 그리하여 순정만화는 여전히 변방의 장르로 남아 있다. ‘미스터 블랙’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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