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래닛 제공
“이미 걸작을 보유한 래퍼 화지”. 화지의 두 번째 앨범 'ZISSOU'의 보도자료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이미 걸작’은 화지의 첫 앨범 'EAT'를 말한다. 이 문장에 거짓은 없다. 'EAT'는 발표와 함께 힙합 마니아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냈고,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힙합 음반’ 상을 받으며 한국 힙합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화지는 지금 한국 힙합 동네의 일반적인 흐름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래퍼다. 로 대표되는 기형적인 시스템을 거스르는 노선에 서 있고, 상당수의 래퍼들이 라임을 맞추겠다고 이야기의 전달을 방해하는 한·영 혼용 가사를 택하는 것과 반대로 (오히려 미국에서 성장했음에도) 한국말을 어떻게 힙합에 잘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래퍼다. “래퍼라면, 그리고 힙합을 문화로 느낀다면, 자국의 언어를 사랑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태도다.
그는 자신의 데뷔 앨범 'EAT'를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했다. “발라드 래퍼들이 싼 똥, 내가 치울 것”이라는 다소 과격한 출사표와 함께 화지는 자신이 생각하는 힙합의 멋과 태도를 보여주려 애썼다. 소중한 첫 앨범을 무료로 공개한 것 역시 그런 힙합의 멋과 태도를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서였다. 'EAT'에 담긴 일관되게 어두운 비트, 묵직한 랩과 은유가 담긴 가사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듣고 좋아해온 ‘힙합’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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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SSOU'는 영화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에서 동기를 얻은 앨범이다. 영화는 프랑스의 해양탐험가이자 잠수 장비 개발에 많은 공을 들였던 자크 쿠스토의 삶을 그리고 있다. 쿠스토는 화지가 꾸는 꿈의 완전체 같은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 화지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시간, 현실 등 인간이 겪어야 할 어쩔 수 없는 굴레로부터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안고 앨범 작업을 했다.
아마 서울일 것이다. 앨범 커버(사진)에는 사방이 불타고 폭발하는 도시가 그려져 있다. 그 위를 유유히 날고 있는 비행기 안에는 이런 모습을 영화 보듯 팝콘을 먹으며 구경하는 화지가 있다. 화지는 이번 앨범에서 자신을 ‘21세기 히피’라 정의한다. 한량이라 해도 좋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사회의 부조리함과 우스꽝스러움을 특유의 냉소와 은유에 담아 랩을 한다. 온전히 한국말 가사를 가지고 이처럼 일관된 주제를 풀어갈 수 있는 래퍼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불바다가 된 도시의 불구경을 편하게 하기 위해 각자 상아탑을 짓자는 첫 곡 의 첫인상은 강렬하다. “울고 짜는 발라드 랩은 죽어도 만들 생각 없다”고 했던 화지는 곱씹을수록 더 깊게 의미와 이미지가 다가오는 가사와 랩으로 그 약속을 지켰다. 이야기 역시 처음부터 흐름을 갖고 설계됐음은 물론이고, 랩뿐 아니라 아트워크부터 비트까지 모든 것이 연결된 작품 하나를 만들어냈다.
앨범의 모든 비트는 그의 오랜 음악 동료인 영소울이 전담했다. 영소울은 화지의 주제에 맞춰 드럼 비트로 어둡고 비틀린 세상을 묘사한다. 짙고 깊게 울리는 드럼 비트와 적절한 소스 사용은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어진다. 그래서 앨범의 전체 사운드 프로덕션은 듣는 이에 따라 일관성과 지루함으로 나뉠 수 있겠지만, 화지 특유의 ‘훅 메이킹’(후렴)과 '나르시시스트' 'UGK'처럼 처음부터 귀를 사로잡는 트랙들은 그 일관성을 마냥 지루함으로 만들지 않는다. 화지는 또 한 번, 멋진 걸작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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