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빌리 빈,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애플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은? 바로 할리우드 최고의 극작가 에런 소킨의 각색으로 스크린에 되살아났다는 점이다. 빌리 빈 단장의 삶을 다룬 은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을,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창립 이야기를 담은 (아카데미 각색상 수상작)는 벤 메즈리치의 소설 를, 최근 개봉한 는 월터 아이작슨의 평전을 각색했다.
에런 소킨이 세 인물에서 뽑아낸 특성은 ‘성공 속의 실패와 실패 속의 성공’이다. 그는 실존 인물이 겪는 삶의 굴곡에서 성공과 실패의 명암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고교 최고 야구 유망주 빌리 빈(브래드 피트)은 주변의 칭찬에 우쭐해 스탠퍼드대학의 입학 제안을 뿌리치고 뉴욕 메츠로 향한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쓸쓸히 떠난 그는 스카우터를 거쳐 단장을 맡은 이후 이름값을 버리고 출루율과 장타율이 높은 선수로 팀을 구성하는 머니볼(저예산팀이 숨겨진 선수를 발굴해내는 효율적인 투자) 전략으로 메이저리그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단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는 당시 5억 명의 친구를 온라인에서 연결해주고도 소통력의 부재 때문에 정작 오프라인에선 친한 친구들을 잃었다. 스티브 잡스(마이클 패스벤더) 역시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주변 현실을 자기 뜻대로 변화시킴)으로 가족·부하직원과 소통 불화를 겪었다.
에런 소킨의 각색 기술 중 하나는 생략을 통한 선택과 집중이다. 그는 에서 1984년 매킨토시, 1988년 넥스트 큐브, 1998년 아이맥 론칭을 기준점으로 세워 역사를 뒤흔든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 시작 전 뒷이야기를 총 3막에 각 40분씩 보여주는 전략을 택했다.
그가 84년, 88년, 98년에 주목한 이유는 스티브 잡스의 실패와 성공의 이중주를 핵심적으로 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잡스는 84년 매킨토시 발표장에서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의 2절 가사를 읊었다. 그 노래의 마지막은 “지금의 패자는 훗날 승자가 되리.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니”라고 끝난다. 소킨 역시 각본에 이 부분을 넣었다. 잡스의 바람과 달리, 매킨토시는 느린 속도와 동력 부족으로 시장의 외면을 받고 추락했다. 애플에서 쫓겨난 뒤 88년 넥스트 큐브를 야심차게 내놓았지만, 이 역시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에런 소킨은 잡스 인생을 대표하는 두 번의 실패에 주목했다. 겉보기엔 화려했지만 내장 하드디스크와 냉각팬이 없는 매킨토시와 디자인은 신선했지만 빌 게이츠에게 “하찮다”라고 평가받은 넥스트 컴퓨터는 훗날 그가 인생 3막에서 성공을 거두는 밑거름이 됐다. 평전을 쓴 월터 아이작슨은 “인생 3막에서 빛나는 성공의 주인공이 되도록 그를 단련한 것은, 애플이라는 인생 1막에서 추방당한 사건이 아니라 바로 2막에서 경험한 화려한 실패였다”고 평가했다. 디자인에 대한 꺾을 수 없는 고집은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혁명으로 꽃을 피웠다.
밥 딜런의 노래처럼,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고 패자는 승자가 될 수 있다. 빌리 빈, 마크 저커버그, 스티브 잡스는 모두 인생의 어느 시기에 좌절을 경험했다. 이들은 잡스의 슬로건대로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를 통해 실패의 덫에서 빠져나왔다.
에런 소킨은 어떨까. 그의 3막 구조 각본은 평단의 지지를 얻었을지 몰라도, 대중을 설득하진 못했다. 3천만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한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2893만달러의 수익을 거둬 본전도 못 건졌다. 지난 1월10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받았지만, 2월28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각색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소킨도 자신이 각색한 인물들처럼, 성공과 실패의 어느 길모퉁이에서 서성이고 있다.
곽명동 객원기자· 기자※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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