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30cm였을 것이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그들 사이의 간격이. 차를 운전하지 못하는 백현진은 주로 남의 차 조수석에 앉아 있곤 했다. 1990년대에는 어어부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는 장영규의 차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방준석의 차 조수석에 자주 앉았다.
장영규는 말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서로 말이 없거나 백현진의 얘기를 장영규가 거의 듣는 편이었다면, 방준석과는 마치 탁구를 하는 것처럼 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일상의 이야기부터 과학 이야기까지 소재는 다양하고 무궁무진했다. 그 30cm의 간격을 두고 주고받은 이야기 가운데는 물론 음악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 이야기들은 한 장의 앨범이 되었다.
함께 음악 활동을 한 지는 꽤 오래됐다. 백현진의 배경이 되는 어어부 프로젝트의 기타 연주를 방준석이 도와왔고, 백현진의 솔로 활동에도 늘 함께해왔다. 백현진의 솔로 앨범 을 위해 주로 둘만 오르던 무대에선 새롭게 만들어진 노래들도 불리기 시작했다. ‘백현진(with 방준석)’이란 표기는 언제부턴가 ‘백현진·방준석’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이렇게 서로의 성을 딴 ‘방백’이란 이름으로 함께 앨범까지 만들게 됐다.
“가요에서, K팝에서, 남한 말로 이루어진 어떤 곡에서, 관습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서 작업을 해보자는 얘기를 굉장히 오랫동안 했다”는 백현진의 말은 의 성격과 방향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일 것이다. 프로듀서 역할을 한 방준석이 이를 이끌었다면 백현진은 갸우뚱하며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백현진이 앨범의 방향에 불안해하며 자꾸 ‘잠깐만’이라고 제동을 걸면 방준석은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 놓고 보자고 설득했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교집합을 찾아갔다.
가요의 관습적 요소들을 위해서는 스튜디오에서 잔뼈가 굵은 연주자들이 필요했다. 처음 서영도(베이스기타)가 합류했고, 이어서 신석철(드럼), 손성제(색소폰) 등 베테랑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윤석철(건반)이나 김오키(색소폰) 같은 젊은 연주자들의 이름도 보였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세션 활동을 하면서도 각자 자기의 작업을 병행하는 아티스트라는 것이다. 현악기 부분을 빼고 악보 없이 녹음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향은 관습적이었지만 연주는 그 어떤 작업보다 자유롭고 즐거웠다.
은 좋은 팝송이 담긴 앨범이다. 팝송은 낱말 뜻 그대로 대중적인 노래다. 좀더 풀어서 이야기를 하자면 어른이 부르는 팝송이고, 어른이 들어야 하는 팝송이다. 노랫말에 담긴 메시지, 소재, 그리고 노래에 담긴 정서가 그렇다. “이 노래가 혹시나 너에게 가서 조금은 힘이 된다면”()이라고 노래하는 백현진의 모습을 우리는 드디어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백현진은 어어부 프로젝트 시절의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 같은 노래를 새로이 만들지 않고 부르지 않는다. 이런 그의 변화와 이타심이라 불러도 좋을 그런 종류의 마음을 온전하게 앨범에 담아낸 건 프로듀서 방준석이었다. 백현진은 그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방준석은 “이 앨범이 불특정다수에게 잘 전달되고 유효하게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며 “이 시점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뭔가 좋은 기운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뜻을 전했다. 30cm의 간격을 두고 몇 년에 걸쳐 이야기한 결과였다. 백현진의 노래도, 선율도, 그 정도 간격처럼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듯 편하게 흘러간다. 수상한 시절에 만난 뜻밖의 위로다. 백현진의 말을 빌려 원고를 마무리한다. “어수선한 시장에 정성 들여 물건을 만들었으니 부디 잘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김학선 음악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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