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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로 인생역전?

<오 마이 비너스>의 의심스러운 ‘힐링’의 진의 , 드라마판 <렛미인>의 함정
등록 2015-12-03 21:51 수정 2020-05-03 04:28
KBS

KBS

KBS 월화드라마 는 ‘헬스 힐링 로맨스’라는 독특한 장르를 표방한다. 왕년에 ‘대구의 비너스’라 불릴 정도로 꽃미녀였으나 현재는 과체중으로 고생하는 변호사 강주은(신민아)이 세계적인 헬스트레이너 존킴(소지섭)을 만나 비밀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두 주인공이 가까워지는 극의 주요 공간이 피트니스룸인 점이나 남주인공 직업이 트레이너라는 점 등은 확실히 기존 로맨스에서 흔히 볼 수 없던 설정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결코 낯설지 않다. 극과 극의 두 남녀가 만나서 티격태격 다투다 사랑에 빠지는 큰 설정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여기에 한국 드라마 특유의 클리셰도 더해진다. 특이했던 남주인공의 진짜 신분은 역시나 재벌 3세였고, 능력 있는 변호사인 여주인공도 그 실상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집 대출금도 13개월분이나 남아 있는 생계형 신데렐라다. 걸핏하면 위기에 빠지는 강주은을 매번 ‘살려주는’ 존킴은 현대판 백마 탄 왕자님 그 자체다.

그뿐만 아니다. 전형적인 로맨스보다 더 친숙한 내용은 따로 있다. 이야기의 또 다른 중심축인, 이른바 ‘헬스 힐링’ 서사다. 드라마는 주은의 다이어트 도전기가 단지 왕년의 몸매를 되찾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 깊숙한 상처까지 치유하게 되는 과정이라며 ‘힐링’이라는 수사를 덧붙인다. 익숙한 이야기다.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메이크오버’ 서사들은 이미 외적 변신에 자존감 회복이나 새로운 자아 발견과 같은 내적 치유 개념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 치유법을 인생 모든 시련의 해결책처럼 말하기까지 한다. 대표적 사례로, 미모를 인생역전의 지름길로 제시하다가 외모지상주의와 성형 조장 논란 속에 폐지된 tvN 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가 이야기하는 ‘힐링’의 진의가 의심스러워지는 것도 이 부분이다. 극 중에서 주은은 할리우드의 이른바 ‘뷰티아이콘’ 제니퍼 앤더슨을 이상적 모델로 삼는데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준 가상의 ‘스텔라 쇼’가 바로 과 같은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이다.

결혼 실패 뒤 약과 술에 찌들어 살았던 제니퍼가 미모를 되찾고 “새로 태어났다”고 표현하는 ‘스텔라 쇼’는 외모를 모든 문제의 해답처럼 강조하는 의 주장을 고스란히 반복한다. “당신은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시겠습니까?”라는 인사말로, 외모가 곧 여성성의 전부인 양 이야기하는 점도 똑같다.

문제는 주은의 과체중이 제니퍼의 사례처럼 개인사적 시련의 결과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동안 주은이 수많은 다이어트 시도에서 모조리 실패한 까닭은 “꾸준한 운동과 충분한 수면, 그리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환경”이라는 기본 조건이 애초에 불가능한 현실 탓이 컸다. 그 현실은 주은과 같은 고소득 전문직조차 상사의 눈치를 보며 과로에 시달리는 월급쟁이로 살아가야 하는 이곳의 열악한 노동조건이다. “밤낮 없는 카페인 섭취”로 인한 소화불량과 갑상선기능저하증이라는 질환 역시 그러한 환경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에서는 이 현실을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주은의 초인적 의지와 슈퍼 트레이너 존킴의 지도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난, 관계의 폭력, 가족 해체 등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관련된 문제와 비극까지도 미모를 통해 해피엔딩의 결말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설교했던 의 한계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대로라면 드라마판 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 정말 기획 의도처럼 외모지상주의에 비판을 가하려면 ‘힐링 성형’과 ‘헬스 힐링’ 사이에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좀더 명확히 보여줘야 할 것 같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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