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월화극 은 2012년 , 2013년 에 이은 손영목 작가의 2010년대 통속극 3부작을 완성하는 작품이다. 자기 복제 논란을 빚었던 과 의 유사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역시 전작과 흡사한 점이 많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작품들을 관통하는 핵심 갈등 구도다. 3부작 모두 부패한 기성 권력을 상징하는 아버지 세대 남성과 불굴의 의지를 지닌 젊은 여성들의 대립을 그려낸다. 에서는 부모를 잃은 천해주(한지혜)와 악의 화신인 재벌 회장 장도현(이덕화), 에서는 고아 출신 김백원(유이)과 탐욕스러운 재벌 후계자 서진기(조민기)의 대립이 펼쳐졌다. 은 “악마의 길을 서슴지 않고 걸어온” 전 국무총리 강석현(정진영)과 악연으로 뒤얽히는 신은수(최강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보다 중요한 특징은 악의 축을 담당하는 인물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점이다. 그들은 이른바 개천에서 용 된 남자, 즉 ‘개룡남’이다. 장도현은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업계를 주름잡는 천지그룹 회장직에까지 올랐고, 서진기는 고아원에서 자라나 피나는 노력으로 재벌가에 입성했으며, 강석현은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전쟁과 기아의 세월을 지나 자수성가”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본격 진행될수록 이들의 자수성가 신화는 허구임이 드러난다. 그 성공 뒤에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배신하는 행위는 기본이고 납치, 감금에 살인까지 저지르는 패륜이 있다.
특히 이 패륜은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범죄를 넘어선다. 장도현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근무하다 과거 중앙정보부가 숨겨놓았던 비자금의 실체를 알아낸 이들을 살해하고 이를 발판으로 회사를 세워 승승장구한다. 강석현은 장군이었던 장인과 함께 쿠데타에 가담해 정치에 들어선 뒤 자본과 결탁한 천문학적 비자금의 힘으로 더욱 가파른 “권력의 정점”에 오른다. 다시 말해 이들 성공 신화의 허구성은 우리 사회의 고도성장기가 은폐해온 비리와 탐욕의 역사에 대한 은유적 성격을 띤다.
이들과 대립하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을 지닌다. 그들의 비극은 그 시대의 탐욕이 저지른 범죄에 근원이 있다. 천해주의 비극은 비자금의 진실을 알게 된 부친이 살해당한 사건에서 시작되고, 김백원의 시련은 서진기가 비자금 의혹을 회피하기 위해 그녀를 납치한 사건에서 출발했다. 에서도 신은수의 비극은 강석현의 비자금 문서에서 비롯된다. 이들이 비극의 근원을 파헤치고 악한 권력을 응징하는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부패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백원이 돈을 지칭하는 이름을 버리고 본명을 되찾는 것이나 신은수의 딸 이름이 ‘미래’인 것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다. 요컨대 이 통속 3부작은 우리 시대의 탐욕을 노골적으로 비추는 동시에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주제가 시청률 지상주의 풍토에서 탄생한 막장드라마의 형식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사실 손영목 작가는 데뷔작인 KBS 을 비롯해 많은 작품에서 기성세대 질서로부터 벗어나려는 청춘의 이야기를 그려왔다. 운동권 출신다운 비판의식이 발휘된 KBS 나, 1970년대를 배경으로 시대의 억압과 부조리를 그린 KBS 에서는 통속 3부작 문제의식의 뿌리를 보여준 바 있다.
이런 과거와 달리 최근작을 보면, 선악으로 유형화된 인물들과 복수, 재벌, 출생의 비밀 같은 진부한 소재, 자극적이고 개연성 부족한 극 전개 등 막장드라마적 특징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출생의 비밀에 의존하지 않고 미스터리 구도로 좀더 치밀한 전개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은수가 계급의식으로 똘똘 뭉친 강석현 일가의 병리적 행태를 엿보는 장면에서는 마치 2015년판 가 연상되기도 한다. 부디 이 작품에서는 ‘막장’ 논란보다 과거의 문제의식이 더 빛나길 바랄 뿐이다.
김선영 TV평론가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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