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사진)을 보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2003)가 떠올랐다. 의 워런 슈미트(잭 니컬슨)가 눈물을 닦고 얼굴에 미소를 띠면 의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로 변하지 않을까(아닌 게 아니라,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주인공 1순위로 2004년 에서 호흡을 맞췄던 잭 니컬슨을 꼽았다).
슈미트는 보험회사에서 잘나가는 중역이었다. 65살에 은퇴했다. 아내는 갑자기 뇌졸중으로 숨졌다. 친구가 아내와 연서를 주고받은 사실을 알고 분노를 터뜨린다. 게다가 딸은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을 준비 중이다. 그는 딸을 설득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가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온다.
대부분의 남자가 학습, 노동, 결혼, 성취, 은퇴의 사이클로 살아간다. 문제는 은퇴 이후의 삶을 펼쳐나갈 자신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 회사의 수직적 위계질서에 묶여 살다가 밖에 나오면 수평적 인간관계를 맺지 못해 방황하기 마련이다. 조직이 원하는 인생을 살다가 정작 자신이 원하는 인생이 뭔지 모른 채 은퇴를 맞는다. 슈미트가 고개를 떨구며 느끼는 회한은 스스로 만들어내고 완성해가는 개인 서사의 부재에서 나온다. 그는 탄식한다. “내 삶이 누군가의 삶에 조그만 변화라도 일으켰던가.”
가족과 세상에 버려진 채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고아 소년 엔두구의 그림편지를 받고 눈물을 쏟는다. 우연히 TV 광고를 보고 매달 22달러를 후원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썼던 편지에 답장을 받았다. 철저하게 외톨이로 전락한 순간에 찾아온 감동의 편지. 슈미트는 아이의 처지에 공감하고, 그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서사를 펼쳐나간다.
의 벤 휘태커는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에서 40년간 일하다 은퇴했다. 나이는 70살. 요가, 요리, 화초 재배, 중국어를 배웠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삶의 구멍을 메우고 싶었다.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그는 창업 1년6개월 만에 직원 220명의 성공 신화를 이룬 온라인 패션몰의 최고경영자(CEO) 줄스(앤 해서웨이)의 비서로 일하며 우정을 쌓아나간다.
70살 은퇴 노인과 30대 여성 CEO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터졌다. 미국에선 겨우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수준이었는데, 한국에선 입소문을 타고 흥행 역주행을 펼치더니 10월21일 현재 280만 관객을 넘어섰다. 여성 CEO의 자기 성취, 따뜻한 공감 등이 흥행 포인트다.
무엇보다 타인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벤 휘태커의 열린 마음이 관객을 움직였다. 그는 일과 가정 모두에서 어려움에 빠진 줄스뿐만 아니라 연애에 서투른 직원 등의 고민을 들어주고 인생의 연륜과 지혜를 전해준다(의 미국 포스터 타이틀은 ‘경험은 늙지 않는다’이다). 휘태커에겐 이른바 ‘맨스플레인’(Mansplain)이 없다. 남자가 (대체로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것을 일컫는 말인데, 나이가 들수록 더욱 권위적으로 변하는 남성들에게 흔히 이런 성향이 발견된다.
말하자면, 그는 ‘설명하는 남자’가 아니라 ‘듣는 남자’다. 휘태커는 경청을 통해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은퇴 이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그는 입사지원서에서 “뮤지션한테 은퇴란 없대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라고 말한다. 여전히 마음속에 있는 공감의 기타줄을 튕기고, 감동의 드럼을 치며, 소통의 노래를 부른다. 물론 타인의 마음속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을 잘 들어주는 배려의 헤드폰도 끼고 있다. 휘태커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인생 2막의 서사를 풀어나간다.
영화에서 사내 연애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 남자 직원은 마음에 둔 여직원이 울자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 쩔쩔맨다. 그때 휘태커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며 이렇게 말한다. “손수건은 누군가에게 건네주기 위해 갖고 다니는 거야.”
휘태커는 슈미트에게도 손수건을 건네줬을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삶에 조그만 변화가 일어난다.
곽명동 객원기자·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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