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지브리 스튜디오가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2013년 은퇴를 선언하면서 현재는 개점휴업 상태지만, 1985년 이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지브리는 세계 애니메이션계를 주름잡았다.
미국의 영화매체 는 얼마 전 지브리의 베스트10을 선정했다. 10위 (2009), 9위 (1989), 8위 (1986), 7위 (1988), 6위 (2004), 5위 (1997), 4위 (1995), 3위 (1991), 2위 (2001) 그리고 1위는 (1988)였다.
의 선정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베스트10이 있다. 누군가는 를 꼽으며 푸른 창공을 떠올릴 것이고, 에 뭉클해질 것이며, 에 감응할 것이다.
내가 꼽는 베스트는 이다. 지난봄 서울 신촌의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이 영화를 텍스트 삼아 강연한 인연이 있어서 더 애착이 갔는지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일상적 자아 치히로가 카니발적인 마법의 공간으로 들어가 신화적 자아 센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환상적인 필치로 그려냈다. “모든 사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결국 일상과 신화가 서로 통하는 세계라는 점을 10살 소녀 치히로를 통해 보여준다.
나이를 먹고 이 영화를 다시 보니, 어느새 ‘치히로의 아버지처럼 변한 것이 아닌가’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탐욕에 눈멀어 주인 없는 식당에서 음식을 마구 먹다가 결국 돼지가 된 아버지는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가. 치히로의 아버지처럼 4륜구동의 아우디 자동차를 끌고 다니는 헛된 욕망(물론, 그럴 만한 돈도 없지만)이 없었는지 자문했다. 센으로 이름이 바뀐 치히로가 온갖 쓰레기가 들어 있는 오물신을 씻겨 ‘강의 신’의 본모습을 찾아주는 대목에선 나도 자연을 더럽힌 가해자 중 한 명일 수 있다고 반성했다. 흉측하게 변해버린 4대강의 신음 소리에 나는 떳떳할 수 있는가. 어느덧 정화와 재생이 필요한 나이를 먹어버렸다.
될 수만 있다면 의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 언제나 든든하게 두 딸을 지켜주고, 두 딸과 함께 숲의 정령에게 경의를 표해 머리 숙여 인사하는 아버지. 그는 마쿠로 쿠로스케(검댕 도깨비)나 토토로를 보았다는 아이들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인정해준다. 자연의 신비와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줄 나이가 됐다.
1995년 픽사의 이후 세계 애니메이션은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재편됐고, 셀 애니메이션을 고집하던 지브리의 영광도 서서히 저물었다. 신기술의 혁명 앞에서 구시대의 전통은 힘을 쓰지 못했다. 지브리의 정감 있는 애니메이션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런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스크린이 아니라 현실에 숲을 짓기로 했다. 일본 오키나와현 구메지마 삼림공원 내에 약 1만 평(약 3만3058㎡) 규모의 공원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공원의 이름은 ‘바람이 돌아오는 숲’이다. 치히로가 터널로 들어가기 직전에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의 사츠키와 메이 자매가 고양이 버스를 탔을 때도 바람이 지나갔다.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이 영화의 OST 제목 역시 이다.
숲의 어딘가에 토토로가 숨을 쉬고, 고양이 버스가 내달리고, 마쿠로 쿠로스케가 돌아다니겠지. 어둠이 내리면 다양한 토속신들이 몰려드는 온천장이 문을 열겠지. 와 을 본 아이들의 손을 잡고 숲을 거닐고 싶다. 바람이 돌아올 것이다.
곽명동 객원기자·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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