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체 게바라를 존경하고 소비한다. 축구장에 대형 초상 사진으로 등장하고, 티셔츠에 프린트된 이미지로도 사랑받는다. 록 페스티벌의 관람객도, 서울과 미국 뉴욕 거리의 젊은이들도 체 게바라 옷을 입고 활보한다. 스타벅스의 머그잔에도 있다. 무한복제되는 이미지로 굳어진 지 오래다. 시대는 변했다.
박칼린은 2011년 에 출연해 이상형을 체 게바라라고 밝혔는데, 그 이유는 “고집 센 아웃사이더, 어둠이 있는 외톨이 같은 모습”이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 전 한 외식업체의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장관 할 때는 벤츠를 타고, 그만두고 나서는 또 노동자와 어울리고 그렇게 파격적으로 살았”던 체 게바라를 존경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자유로운 영혼을 동경하고, 누군가는 아웃사이더의 삶을 추종하고, 또 누군가는 파격적인 인생에 매료된다. 체 게바라가 그저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소비되는 현실을, 세금 포탈 혐의로 벌금을 선고받은 자본가가 혁명가를 존경하는 모순을 지금 이 시대에 문제 삼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러나 체 게바라의 진실만큼은 기억해야 한다.
체 게바라를 이미지로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바우테르 살리스 감독의 를 추천하고 싶다(2004년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으로, 11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지만 지난 7월2일부터 IPTV·디지털케이블·인터넷·모바일로 감상할 수 있다).
체 게바라(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가 그의 친구 알베르토(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와 함께 장장 8천km의 남미 여행을 통해 세상의 모순을 깨닫는 과정을 로드무비로 그린 이 영화는 훗날 ‘그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사르트르)으로 불리게 될 혁명가의 삶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체 게바라가 자신의 생일 파티 도중에 강을 건너 나환자촌의 환자들과 포옹을 하는 대목이다. 2살 때부터 천식을 앓아 평생을 고생했던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강을 건넜다.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나환자들을 진심으로 끌어안으려는 체 게바라의 모습은 훗날 세계시민으로서 민중 해방을 위해 쿠바 국립은행 총재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다시 볼리비아 게릴라전에 뛰어드는 그의 삶을 예고하고 있다. 20대 초반 남미 여행을 통해 민중의 처참한 삶에 눈을 뜨고 20대 후반에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뒤 30대 후반에 볼리비아 게릴라전에서 죽을 때까지 그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서 싸웠다.
그는 ‘새로운 인간형의 완성’을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일했다. (장 코르미에 지음, 실천문학사, 2000)은 그가 게릴라전을 벌일 때 부하들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생생하게 기록했다. “인간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신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체 게바라는 글자를 모르면 왜 총을 잡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며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고, 자신보다 더 배고픈 부하들을 위해 식사를 거절하기도 했다. 체 게바라는 노동과 학문, 이 세계 모든 민중과의 부단한 연대를 통해 정제된 인간상을 꿈꿨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가 아니라, 민중을 위해 살았다.
체 게바라가 죽은 지도 48년의 세월이 흘렀다. 쿠바의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그의 유적지에는 젊은이가 아니라 노인들이 디카를 들고 오가는 모습만 보인다. 박세열 기자와 시사만화가 손문상은 체 게바라의 여행길을 70여 일 동안 고스란히 따라간 뒤 (텍스트, 2010)을 펴내며 이렇게 썼다. “이제 체 게바라는 젊음의 상징으로 소비되고 있다. 그저 아무런 의미도 없고 티셔츠의 모델로만 인식될 뿐이다. 체 게바라가 꿈꿨던 평등한 세계는 결코 오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온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고 외쳤던 체 게바라가 꿈꾸고 실천했던 혁명의 정신과 열정은 이제 흔적 없이 사라졌다. 실체 없는 이미지만이 그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 게바라의 휴머니즘은 영원히 잊지 않아야 한다. “모든 진실된 인간은 다른 사람의 뺨이 자신의 뺨에 닿는 것을 느껴야 한다.”
곽명동 객원기자·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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